"정국주도 회복" 노림수 분석 속 친노계·통합신당파 갈등 확산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판을 흔들었다.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정치적 자산”, 즉 대통령직과 당적 카드를 모두 내건 승부수를 던졌다. 술렁이는 정치권과 여론은 앞으로 상당 시간을 이 문제에 매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이 실제로 하야할 것이냐 아니냐, 열린우리당 당적을 정리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매우 간단하지만, 노 대통령의 선택 여하에 따라선 메가톤급 파장이 벌어지는 문제다.

정치권의 반응을 살펴보면 ‘하야’ 문제는 “최근 정치상황에 대한 심경의 토로”라고 보는 시각이 일단 많다. 야당의 압박과 여당의 무기력에 의해 ‘전효숙 카드’를 접어야 했던 인사권자의 자괴감의 발로라는 것이다. 대통령 권한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인사권이 무산된 데 대한 항변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윤태영 대변인은 “하야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중 “임기를 못 채우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던 말에 방점을 찍은 것.

열린우리당 쪽에서도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하면서도 엇비슷한 반응이 주조다. 노 대통령의 하야 및 탈당 시사 발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가 연일 “당이 국정운영을 책임지겠다”고 강조한 대목은 하야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려의 확산’을 막으려는 중의적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엄연히 존재한다. 우선 친노계 의원들이다. 친노 그룹인 의정연구센터 소속의 이화영 의원은 “노 대통령이 하야 수준까지 논의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대통령 고민의 강도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지만 지금처럼 식물대통령 상태가 지속되면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거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식의 말을 내던졌을 때와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노계가 적극적으로 ‘하야’ 발언에 기름을 붓는 형국은 어딘가 괴이하다는 의구심이 있다. 이들이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노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연막을 피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심경의 토로’에서 ‘정치적 노림수’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이는 공학적인 해석에 기반해 ‘하야’를 한나라당에 대한 최후의 압박수단으로 보는 시각과 맞물려 일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병두 의원은 “노 대통령이 하야하면 길어야 30일 이내에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야하는 한나라당이 내분에 빠질 것”이라며 “(이를 노린 노 대통령이) 각종 현안은 물론 토지공개념, 선거법 개정까지 요구할 경우 한나라당은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단히 모호한 하야 문제에 비해 노 대통령의 당적 정리는 기정사실화된 듯한 분위기이다. 문제는 어떤 식의 당적 정리냐다. 당초 “가급적 그런 일(당적 포기)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11월 28일)고 ‘탈당’을 시사했던 노 대통령은 이틀 뒤에는 통합신당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열린우리당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절(열린우리당)이 싫으면 중(통합신당파)이 나가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당적을 포기해주기를 바랐던, 탈당해주면 고맙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던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직전까지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 스스로 당적을 정리할 수는 있다”고 밝혔었다. 노 대통령이 탈당 결심을 굳힌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뜻이었지만, 노 대통령의 공격적 태도 변화로 인해 상황은 급반전됐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선 자신감이 물씬 묻어났다. 노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때에도, 1995년 통합민주당 분당(새정치국민회의) 때에도 나는 지역당을 반대했다. 그리고 지역당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역사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는 뜻이다.

이런 자신감은 단순한 호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열린우리당 상황을 꿰뚫은 치밀한 계산이 작동했다는 얘기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까지 우리당은 정계개편 논의를 공식적으로는 미뤄뒀다.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비대위가 당의 중지를 모으기로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비대위 내부에 정계개편 논의를 이끌 만한 동력이 없다는 점, 각 세력마다 정계개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요컨대 노 대통령의 승부수는 정계개편을 코앞에 두고서도 아무런 의견 통일이 없는 우리당을 더욱 큰 혼란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또한 노 대통령은 ‘신당 창당=지역당으로의 회귀’라는 등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통합신당파의 명분을 깎아내렸다. 여론전에서도 승산이 섰다는 의미이다.

결국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에 대한 최종 결론은 열린우리당의 몫으로 돌아왔다. 친노계의 반발은 ‘상수’다. 통합신당을 불가피한 수순으로 보면서도 명분상 '노 대통령을 끌어안고 가야한다'는 입장이던 김근태계와 정동영계를 비롯해 천정배 의원까지 전면적으로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처지다.

핵심적인 문제는 ‘어떻게’다. 노 대통령을 남겨두고 당을 떠나느냐, 노 대통령을 내쫓느냐의 문제로 압축됐지만 간단히 결론이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필연적인 내분을 수반한다. 후자는 정치 도의적으로나, 명분으로나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아노미 상태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대통령직과 당적 카드를 모두 빼든 승부를 던진 이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열인우리당의 최고위원회의(위)와 청와대의 정치협상 제의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모습. 신상순 기자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