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튼 유엔대사 낙마로 공화당 네오콘 세력 급속하게 퇴조민주당은 온건 보수 '네오뎀' 대거 의회진출로 진보 중화

존 볼튼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재지명이 철회됐다. 11ㆍ7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 참패 이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경질된 이후 두 번째 공화당 거물의 퇴진이다. 볼튼 대사는 폴 월포위츠가 지난해 3월 국방부 부장관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옮긴 이후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실질적인 좌장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퇴진을 네오콘 쇠락의 결정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네오콘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들의 강력한 후견인 중 하나였던 럼스펠드 장관마저 물러남으로써 부시 행정부에서 네오콘을 두둔해 줄 수 있는 방어막은 딕 체니 부통령 한 사람으로 좁아졌다. 체니 부통령 외에 미국 주류 정치권에 살아남은 핵심 네오콘은 엘리엇 에이브럼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정도다.

6년 전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했던 네오콘의 위세를 생각하면 지금의 네오콘은 그야말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느끼게 한다. 네오콘 몰락의 전조는 공교롭게도 이들의 전성시대를 연 이라크전이었다. ‘힘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적 도덕을 세계에 이식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네오콘에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설은 절호의 구실이었다.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제국주의란 비난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던 네오콘은 대량살상무기 의혹이 애초부터 조작된 것이었음에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이슬람권은 물론, 앵글로 색슨의 다른 축인 영국을 제외한 서방 대부분은 미국의 근거없는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다. 일방주의 부시 외교의 절정판이었고, 네오콘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꺼지기 직전 가장 불꽃을 발하는 촛불처럼 네오콘도 스스로 벌인 이라크전 때문에 운명을 재촉한 꼴이 됐다. 전 세계의 반미 물결과 하나둘 드러나는 정보조작, 분노한 여론과 이에 따른 부시 정부 내 분열로 네오콘은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라크전의 기획자’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세계은행 총재로 영전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부시 대통령의 고육책이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네오콘의 두뇌’를 자처했던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낙마했고, ‘네오콘의 정보통’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은 이른바 ‘리크게이트’로 역시 지난해 정계에서 물러났다. 지난 2일에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최측근인 스티븐 캠본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이 보스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했다.

네오콘은 부시 정부 들어 만개했지만 뿌리는 깊다. 1930년대 중반 ‘가난한 학생을 위한 하버드’로 불렸던 뉴욕의 시티대학에서 공부한 어빙 하우 등 일단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네오콘의 모태이다. 네오콘의 대부로 꼽히는 어빙 크리스톨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어빙 하우이다. 이들은 60년대 미국을 휩쓴 진보적 자유주의 가치에 회의를 품고 지미 카터 행정부가 출범한 77년을 계기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180도 변신했다.

트로츠키 좌파로 시작했던 네오콘이 신보수의 전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97년 6월 3일 워싱턴 미국기업연구소(AEI) 건물에서 열린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결성식은 네오콘의 등장을 세상을 알리는 무대였다. 이후 월포위츠를 정점으로 리처드 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리비 등이 상층부 그룹을 형성했고 학맥과 인맥으로 얽힌 네오콘 수십 명이 국방부와 국무부, 백악관에 포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힘이 컸다.

네오콘의 급속한 퇴조로 백악관을 포함한 부시 행정부는 일단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실용적 보수주의자들이 네오콘의 빈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럼스펠드 장관이 재임 당시 라이스 장관의 리턴 콜 요청조차 거부할 정도로 둘 사이가 냉랭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럼스펠드 없는 라이스 장관의 보폭이 넓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라이스 장관 외에 조슈아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 헨리 폴슨 재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신임 국방장관 등 협상과 타협을 중시하는 이들을 가르켜 ‘네오 리얼리스트(신 현실주의자)’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라크전 실패와 중간선거 참패로 공화당의 노선이 네오콘의 강경 보수에서 네오 리얼리스트의 온건 보수로 바뀌었다면 민주당에도 이번 중간선거를 계기로 보수적 가치를 표방하는 인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이념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점차 가운데로 몰리는 중도파의 파워가 커진 것이다. 민주당 내 보수주의자를 뜻하는 이른바 ‘네오뎀(neo_Dems)’은 이라크전에는 반대하지만 낙태 반대, 총기소유 찬성,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반대, 공공지출 축소 등 공화당의 정책과 유사한 노선을 주창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간선거를 통해 의회 입성에 성공한 네오뎀은 무려 20명이 넘는다.

새로 당선된 민주당 하원의원 41명 중 절반이 넘는 숫자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복음교의 지지를 받았던 히스 슐러 하원의원(노스 캐롤라이나),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밥 케이시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 등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특히 슐러 하원의원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느라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정도로 종교적 신념이 투철하다.

이들 네오뎀은 당내 중도파 모임인 '블루독(Blue Dog)연합’이나 ‘신민주당원연합’과 연대해 당내 강력한 보수세력을 형성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낙태 옹호, 총기 규제 찬성 등 당의 전통적인 가치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네오뎀’의 대거 등장은 민주당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다. 진보성향의 색채를 일정 부분 지우고 보수층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네오뎀의 존재가 고맙지만, 자칫 당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오뎀이 전통 가치로 무장한 당 지도부와 충돌한다면 노선을 둘러싼 당내 분열상이 노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낸시 펠로시 차기 하원의장이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리더십 확립이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에는 네오뎀의 등장이 한 요인이 되고 있다. 2008년 차기 대선이 중도 유권자의 장악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은 이 같은 양당의 중도화 경향과도 맥이 닿아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