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정운찬, 정치권 진입 저울질… 박원순, 문국현도 물망에당 출신으로는 한명숙, 천정배, 강금실 등 잠룡들 타천자천 꿈틀꿈틀

2007년 대선의 해가 막이 오르면서 큰 꿈을 가진 잠룡(潛龍)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아직까지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데다 대선 지형마저 불리해 기존의 허약한 주자를 대신할 다크호스들이 서서히 몸을 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ㆍ박근혜ㆍ손학규 ‘빅3’의 구도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최근 386세대 개혁파 정치인들이 도전장을 내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에서도 잠룡들이 나서고 있다.

이들이 여야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경선 구도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여당발(發) 정계개편이 가시화하는 상태고 잠룡들의 경쟁력에 따라 대선 판도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잠룡 후보군 가운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3의 대선후보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 전 총장은 최근 “정치를 안 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달 26일 재경 공주향우회 송년 모임에서 “충청권이 나라의 중심”이라며 ‘충청권 역할론’을 강조해 대권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 천 총장이 주목받는 것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충청권을 결집할 수 있고 기존 정치에 몸담지 않은 참신함을 지니고 있고, 그리고 경제학자 출신의 ‘경제전문가’이미지가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인 ‘경제’와 부합돼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정 전 총장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통합신당파로부터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후보로, 당 사수파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줄 것으로 기대돼 양측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김헌태)가 12월 21일 정치분야 오피니언 리더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범여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정 전 총장이 26%의 지지율로 고건 전 총리(23%)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김근태 의장 10%, 박원순 변호사 6%, 정동영 전의장 4%, 천정배 의원 4%, 강금실 전 법무장관 4%, 한명숙 총리 1% 순)

우리당의 전략통인 한 중진은 “지난 두 번의 대선은 호남+충청 결합구도의 승리였다. 정 전 총장이 여권의 후보가 되면 호남ㆍ충청 지역은 걱정이 없다”며 “영남에서 일정 부분 득표하고 수도권에서 참신성과 경제전문가 이미지로 승부하면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당 밖 다른 인사로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외부 선장’으로 거론된다. 김근태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도덕성이 높은 두 분이 통합신당에 참여해 준다면 국민적 참여와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며 구애를 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시민사회 진영의 명망가인 데다 영남 출신(경남 창녕)이란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중앙대 법대 교수)는 “내년 대선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가운데 한 사람과 고건, 박원순의 3자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옹립될 후보와 고건 전 총리가 연합해 최대의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또 한번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국현 사장은 참신한 CEO(최고경영자) 이미지에다 ‘경제’이슈에 부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 인사로는 한명숙 총리,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장관,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잠룡으로 거론된다. 한 총리는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상징성을 갖고 국정 운영을 무난하게 하고 있는 점 등이 높게 평가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연구소 소장은 “한 총리는 진보ㆍ개혁 세력,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의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녔고 같은 여성인 박근혜 대표와 구별되는 포용력과 후덕한 이미지가 장점”이라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 이어 12월 조사에서도 대선주자가 아님에도 여당 인사 중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온 것은 한 총리의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장관은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과 함께 당 의장 시절 보여준 ‘합리적 리더십’이 통합신당파, 당 사수파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산업부 장관으로 1년여의 짧은 기간에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고 한국형 자원외교의 선례를 남기는 등 국정운영의 경험을 갖췄다는 평가도 일부에서 나온다.

당내에서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천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당에 복귀해 전국을 돌며 사실상 대선행보에 나선 뒤 ‘민생ㆍ개혁 세력 대통합’을 가장 먼저 주창했다. 천 전 장관은 목포 출신으로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있고 법무장관 때 보인 개혁적 리더십이 국민에게 인상을 남겼다는 평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김대중정부 탄생에서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교욱부 장관, 국무총리 등 국정 경험이 풍부하고 충청 출신(충남 청양)이란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물망에 오른다. 강 전 장관은 초대 여성 법무장관으로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준 데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나름대로 선전, ‘강풍(康風, 강금실 바람)’이 재연될 경우 박근혜 전 대표에 필적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진대제 전 장관은 삼성전자 CEO 출신으로 경제전문가이고 영남 출신(경남 의령)이어서 경기지사 출마 때부터 잠룡으로 꼽혔다. 여권에서는 진 전 장관이 경기지사에 당선됐다면 유력한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않다. 특히 ‘경제’, ‘영남’등의 측면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에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다.

당 사수파의 중핵을 이루는 친노그룹은 ‘영남 후보’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한 386 의원은 “영남후보여야 승산이 있다. 한나라당의 아성인 영남이 분열되지 않고는 호남ㆍ충청이 100% 지지해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동업자’라고까지 말한 측근 안희정 씨가 “한강 아닌 낙동강서 용이 나온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친노그룹이 선호하는 영남후보로는 김혁규 의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과 앞서 업급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진대제 전 장관 등이 거명된다.

김혁규 의원은 잠룡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국무총리 기용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는 유 장관과 김 전 장관은 정계개편과 그후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추미애 전 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2년여의 공백(미국 유학)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고 영남 출신(대구) 여성이란 점, 국제 감각, 개혁 성향 등 장점이 범여권 후보로 거론된다.

정동영 전 의장은 지난해 8월 추 전 의원의 변호사 개소식에 참석해 “통합의 리더십으로 희망의 등불이 될 정치인”이라며 추 전 의원을 치켜세웠고, 노 대통령의 부산인맥인 조경태 의원은 영호남 통합후보로 ‘추미애-천정배’ 카드를 제시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개혁성향의 소장파인 원희룡ㆍ고진화 의원이 지난해 12월 잇따라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최근 권오을 의원이 대선행보에 나서는 등 잠룡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외 박진ㆍ권영세 의원, 김태호 경남지사 등이 자천타천의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들의 출사표가 ‘빅3’중심의 경선 구도를 당장 바꾸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원희룡ㆍ고진화 의원의 지지율과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율 합계가 이명박-박근혜 2강 구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한나라당 대선구도에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들의 지지율이 ‘개혁 블록’을 형성할 경우 외견상 이 전 시장에 유리할 듯하지만 박 전 대표와 지분을 매개로 한 ‘빅딜’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대선구도의 위협적인 변수는 오히려 이회창 전 총재의 복귀 여부다.이 전 총재가 ‘대권 도전 3수’를 선언한다면 지지층이 유사한 박 전 대표가 가장 타격을 받겠지만 대선구도가 ‘수구 대 반수구’로 형성돼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중도성향 집단이 이탈할 수 있다. 나아가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지지도 하락까지 연결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선 두 차례 대선에 출마했던 권영길 의원단 대표가 유력한 가운데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이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성현 대표의 출마도 거론된다.

민노당의 대선 후보는 선출 방식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당 안팎에선 지금처럼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줄 땐 노회찬 의원이, 국민경선을 치를 땐 권영길 의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민노당은 후보 선출 방식과 경선 일정을 2월 말 전당대회에서 확정짓기로 했다.

6국민중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반노비한(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반대하는세력)의 신당 창당과 대선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공표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