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사형 판결 4일 만에 전격 집행 이라크 종파 분쟁 격화美는 책임전가 급급… 이란, 중동의 시아파 맹주로 영향력 커져

31일 후세인 처형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전격 집행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처형이 몰고 온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행과정에서의 온갖 불미스러운 일로 국제사회가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핵심은 사형 집행장에서 교도관들이 죽기 직전의 후세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건네고, 일부 교도관은 법으로 금지된 카메라 휴대폰을 반입해 처형 과정을 촬영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공개한 부분이다. 후세인이 저지른 범죄만큼이나 반인륜적인 이 같은 행위는 후세인에 사형 판결을 내린 이라크 법정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의심케 할 뿐 아니라 수니파의 분노를 촉발해 종파 간 분쟁을 더욱 극심하게 몰고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인터넷에 공개된 후세인에 대한 교수형 사형 장면 동영상에는 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후세인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교도관 2명은 후세인 면전에다 후세인의 정적이자 자신들이 추종하는 반미 급진성향의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옥에나 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후세인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남자다운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등 사형 집행이 마치 사적인 복수인 것처럼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욕설을 한 교도관 2명과 이를 동영상으로 유포시킨 다른 교도관 1명 등 3명은 모두 이라크 당국에 체포됐다.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불상사가 발생한 데는 사형 확정 판결이 난 지 불과 나흘 만에 서둘러 집행을 강행한 탓이 크다. 후세인의 신병을 관리하던 미군은 법원의 최종 판결 이후 후세인을 이라크 당국에 넘기면서 적법한 절차 보장을 요구했으나 조기 집행하겠다는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이런 절차가 상당부분 충족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사형이 집행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란은 이라크 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재판이고 승전국인 미국이 설립한 법정에 의한 것이라는, 전형적인 ‘승자의 재판’이었다는 사실이다. 후세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것은 이라크 재판관들이었지만, 유죄입증 과정에는 미국의 변호사와 보좌진, 조사관 수백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후세인 체포 이후 3년 동안 미국 법무부와 국무부 관리들이 수백만쪽에 달하는 이라크 문서 뿐 아니라 후세인 집권 24년 동안 자행된 대량학살 현장도 조사했다. 특히 사형제에 반대하는 인권단체와 유럽 정부, 그리고 이라크 법정이 아닌 과거 전례대로 국제재판소를 설치하자는 미국 민주당 등은 참여가 철저히 배제돼 후세인 재판은 애초부터 편파적 법정이란 비난을 받아왔다.

후세인 처형 후 수니파의 분노가 고조되고 시위가 과격양상으로 치닫자 미국 정부가 후세인 집행과 미국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법정의 정통성 결여와 같은 맥락이다. 후세인 처형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해 사형집행에 관한 미국 정부와 이라크 정부 사이의 막후 스토리를 슬그머니 흘리면서 말리키 총리 책임론을 공공연하게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인 윌리엄 칼드웰 소장은 “미군이 후세인의 교수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만약 관여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라크 정부를 비판하는가 하면,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처형의 절차와 시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이라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혀 이번 집행은 온전히 이라크 당국의 ‘독자행동’임을 거듭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미국 고위층의 이 같은 잇단 발언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정 협상과 함께 알 말리키 총리 정권을 교체하려는 수순의 한 단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국이 후세인 조기 처형을 내세워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세인 사형 집행이 완료되면서 후세인이 집권 당시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규모의 재산의 행방도 관심사로 부각됐다. 미국 의회는 후세인 정권이 유엔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피해 2000~2003년 시리아와 체결한 석유무역협정을 통해 22억 파운드(약 4조원)를 불법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후세인은 유엔 경제제재가 내려진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불법적인 수단으로” 109억 달러를 모았고 이를 스위스와 일본, 독일의 계좌에 숨기고 일부는 다이아몬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형집행을 계기로 후세인의 수감생활도 일부가 공개됐다. 후세인의 의료담당관으로 일했던 로버트 엘리스 상사는 후세인이 시작(詩作)을 했으며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던 일들을 회상하는가 하면, 가끔 운동하러 감방에서 나올 때 남겨뒀던 빵조각을 새들에게 먹이는 등 잔악한 독재자와 달리 다감한 면모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엘리스 상사에 따르면 후세인은 2004년 1월부터 2005년 8월까지 바그다드의 한 미군기지 내 가로 2m, 세로 2.4m의 독방에 수감됐다. 후세인은 담배와 커피가 혈압을 낮추는 데 좋다고 생각해 이를 즐겼으며 엘리스 상사에게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권하기도 했다. 또 식사를 문 밑 틈새로 밀어넣자 동물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식하다 감방문을 열고 식사를 넣어주자 바로 단식을 풀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후세인의 죽음은 수니파의 완전한 청산이면서 동시에 중동지역의 시아파 득세의 신호탄이란 분석도 있다. 후세인 단죄는 미국과 이라크 정부의 작품인데, 이에 따른 과실은 이란이 즐기고 있다는 분석은 이런 시각에서다.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지도층의 상당수가 친이란파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리아, 레바논도 시아파가 정권을 갖고 있다. 지난해 이란-이라크-시리아가 이른바 ‘3국 동맹’ 결성에 나서 중동패권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슬람의 소수파로 밀려나 있던 시아파가 활짝 날개를 펴는 형국이 됐다.

후세인이 처형된 지 3시간 만인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이란의 다우드 자파리 경제ㆍ제정부 장관이 이라크 재건을 위해 이란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 달러 지원책을 발표한 것은 상징적이다. 핵개발을 문제삼아 이란에 대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후세인 제거로 이란의 배만 불려줘 오히려 중동정세를 더욱 불투명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도하는 이라크 여인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