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등 에너지 안정적 확보위해 아프리카에 잇단 구애 발길수뇌부 지난 1년 동안 22개국 방문… 유럽·미국 바짝 긴장

아프리카 7개국 순방길에 오른 라오자싱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31일 첫 방문국인 베냉에서 보니 알라지(Boni Aladji)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마침내 유럽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국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007년 세계 정세를 전망하는 세밑 기사에서 ‘아프리카가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것인가’를 화두로 제시했다. 그리고 FT는 자답했다.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을 케이크 자르듯 분할, 식민통치했던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자신의 ‘뒤뜰’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이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뒤뜰에 중국의 그림자가 날로 짙어지니 비명을 지를 수밖에. 케이크의 가장 큰 몫을 차지했던 영국에서 신음소리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도 이해할 만하다.

지난달 31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아프리카 7개국 순방 길에 올랐다. 중국의 외교부장이 아프리카 국가를 두루 방문하는 것은 90년대 이래 정착된 연례행사다. 이번이 16번째다. 지난해에는 6개국 방문이었는데 올해는 1개국이 늘어 7개국이 되었다. 지난해 경우 중국에서 새해를 보내고 1월 11월에 방문길에 올랐으나 금년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새해를 맞았다. 리자오싱은 이 인상적인 행보를 통해 FT가 스스로 내린 답안에 동그라미를 친 격이다.

2006년 1월 이후 중국의 대(對) 아프리카 외교를 라운드업 해보면 FT의 자문자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리자오싱이 올해 방문하는 아프리카 7개국은 베닝, 적도기니, 기니비사우, 차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에리트레아, 보츠와나다. 지역적으로 동, 서, 중, 남부 등 골고루다. 이 중 차드는 지난해 8월 5일 중국과 복교했다. 차드의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던 대만의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은 출발 당일에 방문을 취소하고 단교를 발표하는 ‘굴욕 해프닝’을 연출했다.

전번 순방 6개국은 케이프 베르데, 세네갈, 말리, 리베리아, 나이지리아, 리비아다. 리자오싱의 순방에 뒤이어 4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모로코, 나이지리아와 케냐 3개국을 방문했고 2개월 뒤인 6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집트, 가나, 콩고공화국, 앙골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 7개국을 돌았다.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중국의 국가주석과 총리, 그리고 외교부장이 순방한 아프리카 국가는 모두 22개국이다(아프리카 산유국 나이지리아는 리자오싱과 후진타오가 모두 방문했다). 중국의 아프리카 수교국가 48개국(나머지 5개국은 대만과 수교)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어 11월에는 아프리카 수교국 48개국 정상들을 모두 베이징에 초청,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아프리카 정상의 이 같은 결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 언론이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기념비적 사건’이다.

중국이 이처럼 아프리카 외교에 공을 들이는 것은 에너지, 특히 석유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양극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흔히들 전망한다. 하지만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예측은 아직까진 성급하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석유소비국에 올라섰다. 중국 역시 산유국이기는 하지만 1993년 이래 석유 수입국으로 전환되었으며 수입량은 날로 늘어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다가서고 있다. 2005년 중국은 1억7,000만 톤의 석유를 생산하고 1억2,000만 톤의 석유를 수입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로부터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구미에 맞는 지역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중동은 미국이 자신의 텃밭으로 간주하고 있는 곳이라 그곳에 너무 의존하다가는 전략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이 미국의 석유 기득권에 도전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2차례나 전쟁을 벌이고 결국 사담마저 교수대로 보내 완전 제거한 사실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이란 등은 중동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지만 안정적 공급지가 되기에는 위태로운 요소가 너무 많다. 동중국해는 일본과의 분쟁이 불안 요소이다.

현재 중국은 50% 안팎에 달하는 중동에 대한 석유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아프리카에서 수입을 늘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 중동으로부터 3,310만 배럴의 원유를 도입했으며 아프리카에선 2,340만 배럴을 들여왔다. 하지만 전년비 수입 증가율은 중동이 5.8%인데 비해 아프리카는 22%였다. 이렇게 아프리카로 수입선을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친 결과 중국의 최대 원유공급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앙골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상반기 앙골라로부터1,500만 톤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여온 것보다 13%가 많은 양이다. 일본의 중동에 대한 석유수입 의존도는 90%에 달한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서도 발견된다.

중국의 아프리카 접근은 다각적이며 주고받기식이다. 석유자원 확보에 최우선을 두지만 다른 자원에 대한 투자도 소홀하지 않는다. 앙골라, 나이지리아, 수단이 석유자원 개발 중점 대상국이다. 콩고의 목재, 남아공의 철광석, 잠비아의 구리도 중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표적 자원이다. 인프라 건설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11월 베이징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 직후 나이지리아와 83억 달러 규모의 철도 건설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는 중국의 해외건설 프로젝트 중 사상 최대 규모이다.

중국의 접근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적극 호응하고 있는 것은 부채 탕감 등 절실한 ‘선물’을 받을 뿐만 아니라 끈 달리지 않은 차관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탕감해 준 대 아프리카 차관은 156건에 14억 달러에 달한다. 리자오싱이 이번 순방 7개국의 첫 방문국인 베냉에서 기존 채무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차관 제공에 있어 인권과 민주 등의 조건과 연계하지 않는다. 원칙이 있다면 윈-윈 게임의 기브 앤 테이크가 있을 뿐이다. 부패, 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차관을 얻지 못하는 아프리카 국가들로서는 중국의 이러한 자세는 가뭄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3년 안에 2배로 늘이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중국의 아프리카 접근 공세에 미국과 서방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이들은 중국의 묻지마 지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원 약탈에 있으며 따라서 신식민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회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차관 제공은 장지적으로 국제금융질서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은 지난 연말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차관 공여국으로 중국, 쿠웨이트, 브라질, 인도, 한국,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 6개국을 들었으며 중국을 가장 많은 차관 공여국으로 추정했다. 이들 기관은 이들이 제공한 차관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서방측의 비난과 우려는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오늘날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 성공적 진출이 수십 년 간에 걸친 공들임의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은 1956년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처음 이집트와 수교한 이래 2006년 11월까지 장관급 이상 고위급 인사가 838회 아프리카를 찾았으며 162회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같은 기간 아프리카에서도 524명의 장관급 인사가 중국을 방문했다.

세계 경제2위국가인 일본의 총리가 지난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를 최초로 방문한 사실을 상기하면 중국의 그간 얼마나 정성스레 아프리카에 공들여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이 약탈하고 방치한 뒤뜰을 중국이 정성스레 가꾸어,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은 명나라 초기 정화(鄭和)가 이끄는 대함대가 아프리카를 찾은 적이 있었다. 이 항해는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최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아프리카 러시는 제2차 정화의 항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접근이 유럽이 그랬듯이 또 유럽이 전망하듯이 약탈과 착취의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차례 항해로 멈춘 정화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의 중국 러시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해 11월 초 베이징의 한 여성이 우산을 쓴 채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 개최를 알리는 대형 입간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재준 객원기자 중국문제 전문가 hufs8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