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분열' 열쇠 쥔 전 열린우리당 의장

얄린우리당의 진로가 안개속인 가운데 당내 최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일단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이면서도 신중하고 단호하다. 의원들의 탈당 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힘을 모으겠다”고 관망하면서 “소수 고립주의자들이 통합신당을 방해하면 ‘결행’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 전 의장을 지지하는 모임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의 21일 출범식에서는 ‘정동영 정치를 보여주겠다“며 앞으로 그의 광폭 행보를 예상케 했다.

정 전 의장은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에 따른 지지도 상승으로 대선정국은 물론 불투명한 정계개편으로 혼탁한 정국의 중심에 서있다. 정 전 의장은 “우선 대통합에 밀알이 되겠다”며 대선과 거리를 두면서 현안에 올인하는 중이다.

그의 밀알이 어떤 싹을 틔울 지, 그래서 대선과 정국 지형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지를 가늠하기 위해 24일 서울 여의도 ‘나라비전 연구소’ 사무실에서 정동영 전 의장을 만나봤다.

- 열린우리당의 진로가 초미의 관심사다. 의원들의 탈당이 잇따르고 개혁신당, 범여권 중도신당 등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당 사수파가 기초당원제로의 당헌 개정을 시사해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진로를 결정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에대한 정 전 의장의 입장은.

▶지금은 제세력이 어떻게 대통합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선도 탈당이나 개별 신당 창당은 대통합의 한 절차(과정)일 수 있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본다. 국민의 눈 높이에 맞춰, 국민의 뜻에 따르는 방향으로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동지로서의 예의이기도 하다.

- 오는 29일 열린우리당 중앙위와 2월 14일 전당대회가 당 진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 전 의장은 "당의 소수 고립주의자들이 통합신당을 방해하면 '결단'을 내리겠다"고 했는데 탈당을 의미하는 것인가.

▶당 의원들의 80% 가량이 통합신당에 찬선하고 있다. 일부 소수 기득권자들이 국민의 변화 요구를 끝내 외면한다면 통합신당을 향한 결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그(결행) 방식은 대통합의 고민과 논의 과정에서 나올 것이다.

- 통합신당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열린우리당과 어떤 차이가 있나.

▶통합신당은 잡탕식 이합집산이 아니라 ‘원칙있는 대통합’을 의미한다. 여기서 ‘원칙’이란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장기적ㆍ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현대사 100년에서 3ㆍ1독립운동, 4ㆍ19 혁명, 5월 광주, 6월 항쟁으로 표상되는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어온 세력, 단기적으로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만든 정통적 개혁세력의 대통합을 뜻한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4년 동안 추구해온 가치 중에 성과도 있고 한계도 있다.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극복은 열린우리당의 성과물이다. 돈과 정치를 끊어 차떼기 정치문화를 없앤 것은 혁명적 변화다. 반면 실생활의 개선과 개혁은 못해 냈다. 일자리, 교육, 부동산 등에 한계를 보였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사회적 통합에 실패했고 갈등을 재생산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린우리당이 변해야 하는데 소수 개혁모험주의자들의 지분정치, 기득권 지키기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통합신당은 그러한 모습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창조적 파괴’인 셈이다.

- 통합신당의 깃발에 대해 불리한 정치구도, 특히 대선지형을 바꾸기 위한 여권의 전략이며 대선주자들이 앞장서는 것도 그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3단계 정치 시기를 거치는데 첫째는 정권교체를 통한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위해 기자에서 정치에 입문했고 둘째는 ‘정당 민주화’를 위해 정통 야당의 구질서인 3김 정치질서를 혁파하는데 헌신했으며 이제 3기를 맞아 민족문제(한반도 평화 문제)와 신소외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해 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한다. 통합신당은 그러한 차원의 출발이다.

또한 역사적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온 세력, 두번의 민주정부를 세운 개혁세력의 역사성과 가치가 부정되고 개발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이 물거품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현재의 정치구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소명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것이고 대선은 다음다음 문제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역사의 주체세력이 위기를 맞고 있는데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통합신당, 대통합에 동참할 세력과 관련해 당 사수파, 민주당과의 관계는.

▶통합신당은 정체성과 노선을 중심으로 좌우의 양 극단을 배제하고 가운데로 힘을 모아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범여권을 하나로 묶어내겠다는 것이다. 극좌, 극우 편향성을 가진 분, 그리고 당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함께 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과도 정체성과 노선을 공유하는 분들은 동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신년 특별연설에서 열린우리당의 분당 움직임에 대해 지역주의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면서 부정적인 의식을 내비쳤고 일각에서는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 '도로 민주당', 과거 지역주의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열린우리당은 변해야 하고, 달라질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지금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열린우리당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차별점이다.

또 통합신당이 민주당과 함께 하는 것을 과거 지역주의로의 회귀로 보는 것은 호남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영남 출신인 노무현 후보를 김대중 후보보다 더 많이 지지했다.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를 다른 퇴행적 지역주의와 동급으로 봐서는 안된다.

- 천정배 의원은 탈당 의원들과 개혁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가 있고 김근태 의장은 전대를 통한 신당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도 통합신당에 동참하나.

▶당이 쉽게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2월 전대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근태 의장이나 천정배 의원도 결국은 함께 할 분들이다.

- 통합신당에서 정 전 의장의 역할은.

▶흩어져 있는 여권의 전열을 대통합하는데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밀알이 될 생각이다. 밀알이 싹을 틔울 수도 있고 밀알로 썩을 수도 있지만 역사에 대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온몸을 던질 각오다.

- 통합신당이나 다른 신당이 나오더라도 나중에 제3지대에서 만날 가능성은. 한나라당은 '대선용 기획탈당'이라고 비판하는데.

▶그런 방법론과 흐름은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당장 주어져 있는 문제에 대한 정직한 고만과 행동이 중요하다. 열린우리당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데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부정을 통해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해내는 것이 시급하다. 한나라당의 시각은 권력 도그마에서 비롯된 옹졸한 해석에 불과하다.

- 통합신당으로 나갈 경우 기존 당 사수파의 열린우리당이나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참여정부 남은 임기가 1년인데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어제 노 대통령은 신년 특별연설에서 임기 마지막날까지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되길 기대한다. 한나라당은 이 정권을 실패시킴으로써 반사 이익을 얻어 집권하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잔여임기 1년을 도와줄리 없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남은 1년을 도와줘야 한다.

-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민생문제를 통감하지만 스스로 만든 책임은 없다. 과거 문민정부나 국민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는데 이 발언에 대한 생각은.

▶집권 할 때의 사실관계는 명확히 설명했다고 본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오늘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 문제, 일자리ㆍ교육ㆍ부동산 등에 대해서 대통령의 설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민은 삶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 여당이 (노력을)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한나라당 이명박ㆍ박근혜 주자에 크게 뒤지고 있다. 지지도 회복방안은.

▶야당 두 후보의 지지율은 이미지다. 내용을 보면 보수적 사고방식이 개발독재에 닿아 있고 냉전의식이 강하다. 이런 토건(土建)세력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지지율은 민심의 체온계인데 지금 같은 우리당과 우리당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겠는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곳을 정성을 다해 치유하고 진정성과 대안을 갖고 다가가면 (지지도가)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 다른 대선주자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나는 26~43까지 국내외 현장에서 기자를 했다. 기자는 본질적으로 말하는 사람 아니라 듣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치인 중 10% 말하고 90% 듣는 사람이 됐다. 국민 눈높이는 기자의 눈높이다, 국민이 억울할 때 억울함의 현장에서 그것을 고발하는 게 기자정신. 언론 정신이 정치인 정동영의 모태이다. 한국사회의 현장을 발로 뛰면서 서민의 삶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50여개 국을 누비며 세계속의 한국을 봤고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됐다.

- 지난 21일 지지자 모임에서 "정동영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정동영의 목소리로 정동영의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 내가 꿈꾸는 미래, 내가 살아온 궤적에 대해 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염치 때문에 침묵했지만 앞으로는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겠다. 정동영의 말과 글과 행동으로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겠다.

-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를 생각하는데 하나는 평화와 부국(富國)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문제 해소와 신소외계층의 문제 해결이다. 평화ㆍ부국은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 삶의 질이 높아지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사회를 말한다. 민족문제는 한반도 평화문제임과 동시에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과제이다. 신소외계층은 소득소외, 지역소외 문제를 해결해 내야 한다는 것을 주문한다.

-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남북정상회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3, 4월을 넘기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올해 정상회담 가능성은.

▶지난해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다면 남북정싱회담의 여지가 컸는데 야당이 5ㆍ31 지방선거와 연계해 반대, 무산시킴으로써 기회를 잃었다. 남북관계를 민족문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논리를 앞세운 결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은 워싱턴에 열쇠가 있는 셈인데 현실적으로 6자 회담과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지금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문제를 둘러싸고 미북간에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그래서 6자 회담 재개를 앞둔 상황이어서 이것이 시간이 걸리게 되면 현실적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이)어려워지는 국면이다. 3, 4월이 지나면 대선국면에 접어들게 돼 사실상 남북정상회담은 물건너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