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축 경부운하, 동서축 경원(서울-원산)운하로 물류혁명 기대"

강원도 강릉의 최모 씨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청천강 모래를 수입하는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다. 청천강 모래를 함경남도 흥남을 거쳐 동해까지 강을 따라 바지선을 이용할 경우 운반비가 저렴하고 모래의 품질이 좋아 서울 등 대도시에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동해에서 서울까지 트럭으로 운반하는 비용은 인천 등지를 통해 들여오는 수입모래보다 5배나 더 들었다. 최 씨는 모래 가격의 경쟁력에 밀려 결국 청천강 모래사업을 접어야 했다. 물류비가 유망한 사업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최 씨는 요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제기한 내륙운하에 관심이 많다. 남한의 내륙운하가 북한까지 이어질 경우 북한산 모래사업을 재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선 등선 반발 커

이 전 시장이 대선 카드로 내놓은 내륙운하 프로젝트는 최 씨뿐 아니라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시장이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데도 내륙운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청계천 효과가 이 전 시장의 전반기 고공행진을 이끌었다면 내륙운하는 후반기 고공행진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

반면 내륙운하 프로젝트는 전모가 공개되지 않아 검증을 남겨두고 있고 환경단체를 비롯한 일각에선 내륙운하의 비경제성과 환경문제를 지적하며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내륙운하 논란의 가장 큰 쟁점은 ‘경제성(효율성)’여부다. 이 전 시장측은 운하가 물류비 절감과 생산ㆍ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을 기준으로 국가물류 비용은 총 92조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 수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웃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의 11.9%에 해당한다. 이중 교통혼잡 비용은 22조8,000억원(GDP의 3.2%, 2003년 12월 말 기준)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서울·부산 등 7대 도시의 교통혼잡 비용은 13조6,000억 원에 이른다. 물류비는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최대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연구원’은 내륙운하를 건설할 경우 생산증대 효과가 3조4000억원, 부가가치 증대효과가 1조2,332억원, 수출 증대효과가 1조8,588억원, 수송비 절감효과는 4,496억원, 교통혼잡비용 절감효과는 3,663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환경연합 염형철 활동처장은 “운하가 물류혁명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전국화물물동량조사 결과(<한국의 교통>, 건교부, 2003)에 따르면, 수도권과 영남권 사이를 오가는 물류 통행량은 전국의 3%에도 미치지 못하고(전국 125만7,098통행/일 중 3만6,288통행/일). 컨테이너 물동량도 전국의 12.3% 정도라는 것.(전국 1,000만 TEU 중 123만 TEU, 전국 화물량의 0.2% 수준). 경부운하가 이 정도 수준의 컨테이너 화물 20%, 벌크 화물 40%를 흡수한다고 해도 물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3면이 바다라서 해운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운하 건설을 하면 환경파괴는 물론, 댐이나 보(洑)를 건설하기 위한 비용, 기존 도로ㆍ다리를 없애고 새로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 등이 천문학적이라는 설명이다.

북한 기관지 '민주노선' (2005년 7월 29일)의 '북남경제협력법'보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도 내륙운송은 기존 도로와 철도를 활용하면 되고 한ㆍ중 열차페리, 남북철도, 한ㆍ러 TSR(시베리아철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국가 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경부운하를 둘러싼 논란은 북한운하와 연계될 경우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경부운하’(한강~낙동강), ‘호남운하’(금강~영산강), ‘북한운하’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 전 시장은 1단계 경부운하의 경제성에 따라 2,3단계로 호남, 북한 운하를 차례로 건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운하를 경부운하와 연결해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통일운하’를 만들겠다는 포부이다.

이 전 시장이 ‘북한운하’를 구상한 것은 15대 국회의원이던 1996년 7월 국회 본회의에서 운하에 대한 제안을 할 때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운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검토가 이뤄진 것은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에서 퇴임할 무렵인 것으로 전해진다.

내륙운하 프로젝트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2년 전부터 북한운하에 대한 구상안을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장 전 부시장은 “아직 검토단계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북한에 대한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여러 구상안을 갖고 타당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검토 단계 수준의 ‘북한운하’ 3가지 구상 방안으로는 ▲서해안 연안을 따라 한강과 평안북도 신의주를 연결 ▲예성강, 임진강, 대동강, 청천강 등을 연결 ▲임진강과 원산을 통해 동해안으로 연결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지리 및 지형에 대한 정보력의 부재로 현재로서는 실질적인 구상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북한운하와 경부운하가 연계될 경우 물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경제교류를 넘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고 러시아,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한다. 베이징의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관계자와 10년 이상 북한과 무역을 해온 대북사업가는 “남북 운하가 연계하면 양측이 ‘윈(win)-윈(win)’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북한운하 방안으로 ▲북한강 수계를 통한 원산-동해 연결(경원운하) ▲예성강-임진강-대동강-청천강 연결 ▲한강-임진강-대동강-(서해)-청진강-(서해)-신의주 연결 등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북한강 수계를 활용한 경원운하(서울~원산)운하는 한강-북한강(팔당-청평-의암-춘천-화천-평화의 댐)을 거쳐 북한의 금강산댐-원산-동해로 이어진다. 북한에 정통한 대북사업가는 “북한강 수계는 처음부터 댐을 위해 설계돼 경부운하처럼 다리나 도로를 제거해야 하는 부담도 없다”며 “도크(갑문)만 설치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금강산댐 뒤에는 터널이 있지만 작기 때문에 남북운하가 활성화하기 위해 금강군-안변군의 터널을 바지선의 크기에 맞게 넓혀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화천댐 부근에서 한탄강 쪽으로 수로터널을 만들면 임진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동강-청천강 수계로 연결할 수 있어 경원운하의 활용도가 높다고 전망했다.

앞서 강릉 최씨의 경우 청천강 모래를 흥남-원산-금강산 댐을 거쳐 북한강 수계를 통해 서울 등 대도시에 공급할 경우 물류 비용이 저렴해 중국, 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모래와 비교해 경쟁력이 충분하게 된다.

‘예성강-임진강-대동강-청천강’수계는 북한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동강과 청천강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하천의 수량을 조절할 댐이나 보(洑)가 필요하다. 이 운하는 동쪽의 원산을 통해 남한이나 북한의 동북부, 러시아로 연결되거나 대동강, 청천강에서 서해를 통해 신의주까지 갈 수 있다.

‘한강-임진강-대동강-청진강, 신의주’코스는 한강-임진강 수계 활용과 서해를 이용하는 빈도가 높다. 국내에서 수입하는 북한모래의 대부분은 임진강 지류가 있는 개성 부근에서 채취해 도라산까지 트럭으로 이동한 후 국내로 반입된다. 만일 바지선으로 임진강-한강 운하를 이용해 서울, 인천까지 직접 운송하면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남북-중국-러시아 무역 활성화 가능"

북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운하가 중요하지만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거래 품목 내역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래 품목에 따라 북한운하의 코스가 달라지고 철도와의 연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남한 입장에선 FTA 체결로 위기에 처한 농촌과 중국의 저가품 공세로 침체에 놓인 중소기업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남북 관계에서는 남한에서 잉여 농산물, 공산품(생활필수품), 재활용품, 식량, 비료, 수산가공품 등을 보내고 북한으로부터는 지하자원, 특산물(송이버섯, 고사리 등), 모래ㆍ자갈 등을 싣고 오는 방식이 권고된다. 베이징의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관계자는 “원산의 왕사모래는 최고품으로 친다. 남한이 운하를 통해 농산물이나 생필품을 가져오고 모래를 싣고 가면 서로에게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북한운하가 활성화되면 해마다 반복되는 남한 농촌의 농산물 폭락사태가 상당 부분 해소될 뿐 아니라 경부, 호남 운하에 인접한 지역에 생필품 같은 남북교역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존폐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되살릴 수 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언급한 ‘산업단지활성화 방안’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경남 창녕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조합 관계자는 “마늘농사를 짓다 중국산 마늘 때문에 망한 뒤 양파를 재배하고 있는데 매년 양파값이 요동을 쳐 불안하다”면서 “운하가 생겨 운송비 적게 들이고 (북한에)안정적으로 팔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운하는 물품에 따라 철도와 연계되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예컨대 남한의 생필품이 북한 동북지역에 공급할 경우 경원운하를 통해 원산까지 이동한 후 바지선이 동해연안을 따라 전달하면 되고 극동러시아, 나아가 중앙아시아까지 TSR(시베리아철도) 통해 이송하려면 원산에서 평라선(평양~원산~나진)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아울러 38선 접경지역에 남북 가공품 공단을 조성하면 개성공단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지역을 남북 내륙운송로로 활용, 북한운하와 연결하는 방안도 있다.

그밖에 운하와 철도를 활용하게 되면 중국의 생필품이 한강, 임진강을 거쳐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까지 전달될 수 있고 북한은 중국보다 값싼 가공품을 운하를 통해 중국에 수출할 수 있다. 북한운하로 남ㆍ북-중국-러시아의 4개국 무역이 활성화할 여지가 크다.

한편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2005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이자 실세인 장성택 조선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이 마련한 ‘북남경제협력법’에 근거해 남한과의 경제교류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북한의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 남한을 최고의 경협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

이는 북한운하의 현실화에 긍정적인 신호로 실제 경부운하와 북한운하가 연계된다면 남북교류는 일대 전환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에 개성공단 하나도 여러 가지 난제가 많은 실정에서 북한운하가 제대로 협의될지는 불투명하다. 아마도 먼 훗날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