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先 발전·後 환경' 노선 재검토 이끌어낸 환경전문가

직위가 사람을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 직책을 빛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의 판웨(潘岳) 국가환경보호총국 부국장이 바로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환경보호총국은 17개 국무원 직속기구 중 해관(海關, 세관)총서, 세무총국에 이은 서열 3 번째의 중요 부서다. 환경문제 중시에 따라 위상이 높아졌다.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 준비로 주가가 한창 오르고 있는 국가체육총국도 서열 6위로 환경총국에 3단계 아래다. 하지만 환경총국이 오늘날 괄목상대의 부서가 된 데는 판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판웨는 부장(장관)급 부서인 환경보호총국의 상무 부국장으로 부부장(차관)급이다. 하지만 그는 언론노출 빈도와 지명도에 있어 중국 스타급 지도자와 어깨를 겨룬다. 2005년 6월 주간지 ‘요망동방주간(暸望東方週刊)’이 개성적인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판웨를 선정했다.

함께 선정된 인물이 다름아닌 보시라이(薄熙來) 상무부장, 시진핑(習近平) 저장(浙江)성 서기,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 왕치산(王岐山) 베이징(北京) 시장이다. 중국에 환경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 잡지가 밝힌 선정 이유다. 같은 해 9월 신화통신은 언론노출 빈도가 높은 정치인들을 선정했는데 여기에도 판웨가 포함됐다.

같이 뽑힌 이는 보시라이 상무부장,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 가오창(高强) 위생부장, 리진화(李金華) 심계서장, 리이중(李毅中)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안전감독)총국장, 장바오칭(張寶慶) 교육부 부부장 등이었다. 신화통신은 이들의 이름을 검색 사이트에 올리면 적게는 수만 건에서 많게는 수십 만 건의 기사가 뜬다고 소개했다. 부부장으로 판웨와 함께 선정된 장바오칭은 너무 튄 탓인지 2006년 초 면직됐다.

2003년 5월 환경총국 부국장에 임명된 판웨는 중국판 ‘미스터 쓴소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환경문제와 관련, 수많은 경고를 해왔다. 그의 어조는 격하고 거칠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의 대외 이미지를 구기는 ‘벼랑 끝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005년 3월 독일 슈피겔지와의 회견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해 환경난민이 1억5,000만 명이라고 밝혔는가 하면 2004년 9월 뉴욕 타임스와 BBC와의 회견에서는 중국 토지 가운데 3분의 2가 산성비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공개했다. 13억 인구 중 4분의 1이 위생 처리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한 것도 판웨였다. 그가 인터뷰한 기사들을 훑다 보면 중국의 미래는 전혀 장밋빛이 아니다. 회색빛을 넘어 잿빛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판웨는 쓴소리만 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최고 지도부를 설득,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대형 프로젝트들을 무더기로 중단시키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05년 2월 13개 성 자치구가 추진하던 30개의 대형사업을 스톱시켰다. 여기에는 53억 달러 규모의 양쯔강 상류 진사(金沙)강 시뤄두(溪洛渡) 수력발전소 등 싼샤(三峽)공정총공사가 진행시키던 3개 수력발전소 공사가 포함되어 있다.

싼샤 총공사는 국책사업을 빌미로 공사를 강행했으나 끝내는 벌금까지 물고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선(先)발전 후(後)환경’ 노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시사로 받아 들여졌다. 판웨는 환경문제를 더이상 늦출 수 없는 핵심 과제로 올려 놓은 일등공신이다.

판웨는 1960년 4월생으로 올해 47세다.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출신인 그는 태자당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의 단파(團派)이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 고위간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16세가 되던 76년 소년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류화칭(劉華淸) 전 상무위원의 사위가 되었으나 이혼했다. 대학 진학 기회를 놓쳐 방송통신대학을 나왔지만 주경야독, 역사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82년 군 제대 후 경제일보의 자료원을 거쳐 중국 환경보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의 경력에서 언론계 활동이 두드러진다. 중국기술감독보사 부총편집을 거친 뒤 89년부터 93년까지 공청단 기관지 중국청년보의 부총편집을 지냈다. 이후 공청단 중국청년연구중심 주임, 국가국유자산관리국 부국장, 국가질량감독국 부국장을 거쳐 2000년에 국무원 경제체제개혁판공실 부주임에 임명되었다.

당시 주임으로 그의 직속 상관이던 이가 왕치산 현 베이징 시장이다. 판웨는 이곳에 재직할 때 과감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글 등을 발표, 파문을 일으켰다. 리펑(李鵬)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그의 해직을 요청했고 결국 2002년 11월 제16차 당대회(16대)에서 중앙위에 진입하지 못하는 좌절을 맛봤다.

중화권 언론들은 그를 ‘중국의 옐친’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판웨의 환경재앙에 대한 지속적이며 거친 발언에서 그의 별명을 ‘중국의 카산드라’로 바꾸는 게 더 합당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이재준 객원기자 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newsi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