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다크호스' 될지 여부 주목… 권력의지·추진력이 관건

대선 정국에 ‘정운찬 바람’이 뜨겁다. 범여권에서는 ‘정운찬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정운찬 경계령’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정치권이 1% 안팎의 낮은 지지율에 대선 출마마저 불투명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놓고 극한 대립을 보이는 형국이다.

정 전 총장이 범여권의 ‘제3 후보’로 최근 급부상한 것은 여야의 상반된 대선 지형을 반영한 것이다. 여권이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ㆍ박근혜ㆍ손학규에 필적할 만한 대항마가 없다는 ‘대안부재론’에 시달리는 반면 한나라당은 ‘빅3’의 지지율이 무려 70%를 넘어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2월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정 전 총장의 대선주자로서의 잠재력에 대한 평가와 대선 출마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최근 행보도 ‘정풍(鄭風)’을 솔솔 부채질하고 있다.

범여권 인사들은 정 전 총장이 이번 대선의 핵심 콘텐츠인 경제ㆍ교육 전문가 이미지에다 정치공학적으로 충청(충남 공주) 출신이어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

정 전 총장도 지난해 말까지 “대선에서 내 이름은 빼달라”며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오다 올해 초부터 “(대선에)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출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치권, 출마 가능성에 무게

정치권은 정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 전 총장의 가까운 지인들도 “대선에 거리를 두고 있지만 출마할 뜻이 있다”고 말한다. 정 전 총장과 서울대 동기인 한 교수는 “적정한 무대가 마련되면 오를 것이다. 아직 시기를 보고 있는 중이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선 정국에서 ‘정운찬 카드’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는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낙관론, ‘거품’에 불과하다는 비관론, 정국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상황론으로 나뉜다.

정치컨설팅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정 전 총장은 경제ㆍ교육ㆍ지역(충청)이라는 자기 아젠다를 갖추고 있다”면서 “어떻게 ‘이륙(take off)’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범여권에서 ‘대안부재론’은 기존 정치인들(정동영, 김근태 등)이 검증을 받았다는 의미로 정운찬 카드는 대선 정국에서 충분히 통할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명박 지지율의 핵심은 청계천ㆍ현대 신화로 상징되는 ‘추진력’에 있다”면서 “정 전 총장의 앞날은 서울대 총장, 경제학자에서 연상되는 교육, 경제라는 시대적 아젠다를 결단력 있게 추진하느냐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최근 이명박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3~4% 하락했으나 핵심지지층이자 여론선도층은 10% 가량 떨어져 나갔다”면서 “그것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새 대안을 찾고 있다는 방증으로 고건 전 총리 사퇴 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으로 옮겨 갔던 고건 지지표가 정운찬 전 총장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몇몇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 충청 출신인 정 전 총장이 ‘충청에 기여하고 싶다’는 말은 충청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충청표 10%가 범여권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는 데 1차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김근태(서울), 정동영ㆍ천정배(호남), 김혁규(영남), 강금실(제주) 등 대선주자들이 지역 맹주로 나서야 국민적 ‘축제’가 되고 그런 가운데 정 전 총장이 대선후보가 되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게 돼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사연)의 김헌태 소장은 “정운찬 카드는 제3의 대선후보가 갖춰야 할 대중성ㆍ리더십ㆍ인지도가 결여돼 있다”면서 “최근의 ‘정운찬 신드롬’은 범여권 정치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격”이라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정치권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가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면서 특정 정치세력에 업혀서, ‘안 되니까 꾸어 오는’ 식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경우 실패율이 그만큼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 전 총장의 강점으로 거론되는 충청 출신, 경제ㆍ교육 전문가라는 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정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서 취약한데다 ‘충청’ 출신이라는 점이 대선이라는 큰 흐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경제전문가라는 것도 ‘기업인 이명박’이 이미지를 선점해 ‘지식인 정운찬’으로는 역부족이고, 서울대 총장에서 비롯된 교육전문가라는 점 역시 이론적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

한귀영 한사연 연구실장은 “인지도가 낮은 정 전 총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이 높다)’의 추진력으로 국민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low risk high return)’의 소극적인 행보로 대선 지형이 바뀌기만을 기대하고 있다”며 “그렇게 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팩트·상품성 부복"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한국의 현대정치 흐름에서 대선구도가 한나라당에 유리한데다 정 전 총장은 대선후보로서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1997년 대선에서 산업화세력이 긴장을 늦춘 탓에 김대중 정부로 상징되는 민주화세력이 집권해 10년간 권력을 유지했지만 2007년 대선은 다시 산업화세력에 양보해야 할 상황”이라며 “그런 대선 흐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정운찬 카드의 영향력도 크게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 전 총장처럼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오히려 한나라당에 가까운 성향을 띤 인물이 집권하기는 어렵고 전례도 없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정 전 총장이 노무현 대통령, 강금실 전 법무장관 같은 ‘임팩트(충격)’가 없고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 같은 ‘상품성’도 부족하다고 평했다.

충청 출신이라는 점도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고향인 예산을 제외하고 충남에서 전패한데서 알 수 있듯 대선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이사는 정 전 총장의 향후 행보에 따라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력의지’를 갖고 적극 나서야 주변 조직이 움직이고 세력이 형성되나 현재와 같은 행보로는 ‘만들어진’후보라는 인상 때문에 지지율이 상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정 전 총장의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은 한나라당 손학규 전 지사의 행보와 맞물려 유동적이라고 분석한다. 만일 손 전 지사가 탈당해 여권 후보로 나서면 관심이 쏠리게 되고 정 전 총장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지만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머물면 여권의 대안부재론에 따라 정 전 총장이 자의반타의반으로 대선주자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

김 이사는 “4월 말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정 전 총장은 대선에 뜻이 있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전 총장이 충청 출신이지만 ‘맹주’가 아닌 이상 충청권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본다. 또 경제교수이지만 이명박 전 시장과 비교해 실물경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 교육전문가라는 점도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이미지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 전 총장이 대선정국의 ‘다크호스’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범여권의 ‘들러리’로 추락하느냐는 정 전 총장 자신의 정치의지와 정치력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