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틀 바꾼 인사시스템… 일하는 공무원상 계기될 지 주목

서울시의 ‘퇴출후보 공무원 3% 선정’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울산시에서 시작된 공무원 퇴출 바람은 지방정부의 수장격인 서울시로 북상,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태풍이 됐다.

특히 서울시의 ‘공무원 철밥통 깨기’는 울산시가 직원 4명을 선정해 단순업무에 배치한 것과 달리 260여 명을 퇴출후보로 선정, 규모와 강도면에서도 ‘제대로 된’ 시험이 되고 있다.

당연히 공무원노조의 반발도 격렬하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퇴출후보 선정은 또 다른 줄서기를 강요할 뿐이라는 논리다. 지난 3월 13일 반대집회와 촛불시위로 행동에 나선 노조는 15일 삭발시위 등으로 투쟁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15일 38개의 국ㆍ실ㆍ본부와 사업소에서 ‘퇴출 후보 3%’를 제출받는 등 예정대로 4월 10일 현장시정추진단 구성을 강행하고 있다.

신감사ㆍ신인사 시스템

오 시장의 이번 인사개혁은 공식적으로 수십 년간 공무원 사회에 관행으로 내려와 고착된 ‘무사안일 인사시스템’의 파괴를 겨냥하고 있다.

형식적인 실적평가를 토대로 연공서열에 따라 일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승진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열심히 아이디어 내고 이를 실행하려는 열정이 평가되는 경쟁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인 경쟁틀을 이루는 두 축은 사람의 배치(인사)와 평가(감사)다. 서울시의 A국장은 “인사개혁에 앞서 개인의 업무추진 과정을 중시하는 새 감사제도를 봐야 한다”며 “결과만을 평가해 징계하던 기존 감사가 아닌 과정을 평가하는 새 감사는 공무원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효율을 높이는 ‘창의시정’의 중심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조직개편에서 직원들의 업무 과정을 평가하는 ‘평가담당관’을 경영기획실에서 감사과로 옮겨 주무 부서로 만들었고, 오 시장은 자신의 첫 비서실장을 감사관에 임명해 힘을 실었다.

새 인사제도의 핵심은 노력하는 공무원에게는 보상을, 태만한 직원에게는 페널티를 주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강화다. 서울시는 이미 ‘성과포인트제’를 도입해 일하는 공무원에 대한 대가(신상ㆍ信賞)를 약속했다. 성과포인트제는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1년에 2차례 업무를 평가해 SㆍAㆍBㆍCㆍD등급으로 나눠 5~1점을 부여하는데 이 점수는 특별승진이나 승진 심사, 전보 우대 등에 활용된다.

이 평가포인트제를 통해 기존에 9급에서 5급까지 승진하는 데 걸리던 기간이 20년5개월에서 11년5개월로 9년이 단축할 수 있다. 9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29년9개월에서 16년으로 13년9개월이 단축된다.

이번 ‘퇴출 후보 3%’선정은 비리나 부패가 아닌 태만하고 무능력한 공무원을 겨냥한 것이란 점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오 시장은 무사안일한 공무원에 대해 ‘모두의 피와 땀을 좀먹는 극소수의 부적격한 사람’이라고 원색적으로 표현할 정도로 경계하고 있다.

부패ㆍ비리 직원에 대해서도 ‘기존의 처벌보다 한 단계 높여 문책’할 것임을 강조했다. 새 인사제도는 부패한 직원과 게으른 직원이 똑같이 ‘필벌’의 대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B과장은 “출ㆍ퇴근이 정확해 근무평가는 잘 받고, 하는 일이 없어 실적은 없지만 그래서 감사받는 일도 없이 ‘무사히’ 세월을 보내다 때가 되면 승진하는 사람을 솎아내는 것이 3% 퇴출후보 선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의 승부수

오 시장의 인사혁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세운상가 개발 등 도심 재활성화, 동대문운동장공원화 및 디자인중심 육성, 한강르네상스, 1,200만 관광객 유치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준비해 오던 그가 이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기에 앞선 ‘조직 장악’ 의도라는 것이다. 그동안 행정경험이 없는 오 시장의 공무원 조직 장악력에 대한 의심도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3% 퇴출후보를 선정했지만 실제 현장시정추진단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퇴출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라며 “조직 전체에 긴장을 줄 뿐 아니라 ‘생산과 실적’의 논리로 실ㆍ국장에 대한 강한 압박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퇴출후보 선정은 철저히 각 국.실장의 책임 하에 이뤄지도록 해 “퇴출후보 3% 선정은 고위 간부들의 리더십이나 역량을 평가하는 기회로 하위 공무원보다는 오히려 고위간부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번 시도가 오 시장 특유의 승부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입은 있지만 퇴출은 없는’ 공무원 조직에 퇴출을 구조화하겠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장벽을 오 시장의 특장인 뚝심으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3% 퇴출후보 선정은 ‘오세훈 선거법’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거의 후보자 혼자 치르도록 만들고 정치자금을 대폭 축소한 선거법ㆍ정치자금법 개정을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출마를 포기하고 주도해 관철시켰다.

그래서 오 시장 주변에선 ‘3% 퇴출후보 선정’이 울산시를 따라간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 “억울하다”고 말한다. 공무원 조직 변화는 오 시장이 후보시절부터 구상한 것이고 최근 새 감사와 성과포인트 등 인센티브 중심의 새 인사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실행하면서 구체화했다는 주장이다. 오 시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성과포인트 중심의 새 인사시스템 구상을 밝혔다.

C국장은 “인사혁신은 ‘오세훈식 서울시정’을 사실상 처음으로 안팎에 깊게 각인시켜줄 절호의 기회”라며 “인사혁신이 제대로 성공하면 ‘청계천 복원’에 버금가는 충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가 관건

그러나 대다수 직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점은 서울시 인사혁신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객관적 기준 결여와 이로 인해 새로운 줄서기 풍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노조 반발의 핵심논리가 되고 있다.

때문에 서울시청 주변에선 치밀한 오 시장의 스타일에 비춰 ‘3% 퇴출후보 선정’이 예정보다 일찍 터져 나왔다는 관측도 유력하게 돌고 있다. 정밀한 기준을 만들어 발표하려던 오 시장의 구상이 적어도 3, 4개월 먼저 타의에 의해 돌출됐다는 것이다.

이제 서울시 인사개혁의 성공 여부는 3% 퇴출후보 선정의 결과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4월 10일 출범하는 ‘현장시정추진단’에 대부분이 인정할 만한 사람들로 구성되느냐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서울시 한국영 인사과장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치적으로 객관화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170명의 국ㆍ실장 및 과장 등 3% 퇴출후보를 선정한 사람들의 판단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3%에 든 직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현장시정추진단에 선정된 과장이 사표를 던지는 등의 부작용과 수위를 높여가는 노조의 반발도 ‘공무원 조직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의 대의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77.9%가 시의 인사혁신에 찬성했다.

하지만 엉뚱한 사람이 희생이 되는 결과가 나왔을 경우 노조의 반발은 현실적인 힘을 가지면서 인사혁신에 결정적으로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결과의 객관성이 받아들여진다면 인사혁신은 시스템으로 착근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D본부장은 “이번 인사혁신은 태만한 공무원을 한 차례 내쫓는 한시적인 것이 아닌 공무원 조직 운영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며 “3%의 수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퇴출시스템’으로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무능공무원' 3% 대상자선정 마감일인 15일 오후 시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다. 원유헌 기자

김동국 기자 dk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