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인사들 잇단 방북·회동으로 설왕설래… 이해찬 5월 방북이 분수령 될 듯

노무현 대통령이 4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마추어들의 서툰 행동과 대북 사업가의 한계에서 빚어진 비극으로 보입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대북 비밀 접촉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북 소식통 K씨는 그렇게 평했다.

안 씨와 열린우리당 이회영 의원 등이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이호남 참사를 만난 과정이나 내용이 아마추어 수준이고 이들에게 이 참사와의 비밀 접촉을 주선한 대북 사업가 권오홍 씨 역시 주변국의 움직임과 남북정상회담의 요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안 씨를 비롯한 노 대통령 측근들의 대북 비밀 접촉은 권 씨가 그러한 내용을 담은 ‘비망록’을 주간지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논란의 핵심은 안 씨 등이 대북 비선인 이호남 참사와 밀실에서 만나 남북 특사 교환 및 정상회담의 거래를 논의했다는 것. 권 씨는“지난 3월 이해찬 전 총리의 평양 방문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공식 라인이 가동되면서 ‘팽(烹)’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반면 안 씨 등은“북한의 진의파악을 위해 이 참사를 만난 것일 뿐 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면서 “이 전 총리의 방북도 순전히 개인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최근 권 씨와 안 씨 간의 공방은 ‘진실 게임’으로 비화한 양상이다. 야당은 안 씨의 대북 접촉에 대한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 씨와 이 참사의 접촉, 이 전 총리의 방북의 실체는 무엇이며 향후 남북관계 및 정상회담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에 대한 상징적인 실마리는 이 전 총리 일행이 3월 북한을 방문한 것과 5월로 예정된 2차 방북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안 씨가 이 참사를 만난 지난해 10월 20일을 전후한 국내외 사정과 지난 3월 이 전 총리의 방북, 4월 2일 한미 지유무역협정(FTA) 타결까지의 국내외 움직임에서 단서를 추정케 한다.

안 씨와 이 참사의 접촉이 있기 전인 지난해 7월 5일에 단행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의 한반도 정책에 일대 변화를 촉발시켰다. 한반도에는 냉기류가 흘렀고 남북한의 공식 라인의 대화가 중단된 것. 이때 권 씨와 이 참사가 비선을 가동했고 9월 20일 베이징에서 만나 남북대화의 창구를 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남한과 북한은 각각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정상외교를 펼쳤다. 북한은 7ㆍ5 미사일 발사 후 중국과 갈등이 고조되자 장성택 제1 부부장이 8월 말에서 9월 초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과의 균열을 메우고 중국으로부터 물적 지원을 받기 위해 북ㆍ중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3월 8일 북한을 방문한 이해찬 전 총리가 김영남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 핵문제(핵실험 중지 요청 등) 및 내정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하면서 양국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그와 비슷한 시기 노무현 대통령은 9월 10~1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고, 14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그리스를 국빈방문하는 도중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 측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10ㆍ9 핵실험은 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한국은 물론 주변국을 직접 행동에 나서게 했다. 권 씨가 비선을 통한 남북대화 재개를 타진할 때만 해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청와대는 북한 핵실험 이후에는 안희정 씨에게 10월 20일 베이징에서 이 참사를 만나 진의를 파악해보라는 적극성을 띠었다.

미국은 중국을 통한 대북 핵억제가 2005년 2ㆍ10 핵보유 선언, 2006년 7ㆍ5 미사일 발사, 10ㆍ9 핵실험 등에서 나타나듯 한계가 있다고 보고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북한이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 참석해 핵시설 폐쇄 등에 합의한 데는 정부도 인정하듯 러시아의 역할이 컸다.

이 후 미국은 대북 식량지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북한과 신경전을 벌이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북한계좌 동결을 해제하는 등 유연하게 대응했다.

안희정 씨와 대북접촉을 주선한 권오홍 씨.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권오홍-이호남 비선라인의 힘을 잃게 했다. 11월 안희정-이화영-이호철 라인 가동, 이화영 의원의 12월 16~19일 평양 방문 등 숨가쁘게 전개되던 국내 비선은 12월 말부터 탄력을 잃었다. 그러한 데는 국정원, 통일부 등 공식 라인이 제동을 건 측면도 있지만 북·미관계의 변화와 2ㆍ13 합의가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북한은 2ㆍ13 합의 다음날 장관급회담을 재개한다는 합의를 발표하고 3월 2일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쌀, 비료 등 대북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이 전 총리 일행은 3월 7~10일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승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김영대 민화협 위원장 등을 면담했다.

북한이 이 전 총리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한 것은 앞으로 남이 풀어놓을 ‘선물’때문이었다. 이는 이른 시일에 효과를 볼 수 있고 포괄적인 지원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판 마샬플랜’이다. 청와대가 4일 “남북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주고 하는 형태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전 총리가 5월 재차 방북하는 것은 민족상생을 위한‘한국판 마샬플랜’의 진척상황을 북측에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북한의 호응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으로 갈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할 수도 있다.

마샬플랜의 구체적인 진행은 이후 남북 총리급 회담을 추진해 논의될 예정이며 남북한 간 임가공무역 등 대규모 경협이 주된 내용이 될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 K씨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5월 이 전 총리 방북→ 6ㆍ15 남북정상회담 발표→ 총리급 회담→ 8ㆍ15 정상회담’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이다.

대선정국에서 급박하게 전개되는 남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이 전 총리의 5월 방북이 1차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안희정 접촉 北 이호남은

본명 이철, 1990년대부터 남북경협 관여한 경제통
이효리-北무용수 광고제작 관여, 97년 북풍사건 때 흑금성과 개입

북한 이호남 참사가 주목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인물로 최근 남북 특사 교환 및 정상회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권오홍 씨는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이 이호남이라는 북측 비선라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안 씨 등은 “(이호남이) 대화할 상대가 아니었다”며 정상회담 추진을 부인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에서 대남사업과 관련해 알려진 ‘이호남’은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1990년대 초반 북한 통전부(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삼천리총공사의 대남 일꾼 이호남이다. 그는 심천리총공사 박 모 대표 밑에서 심부름을 하다 박 대표가 남측 기업의 대북송금 일부를 횡령, 평양으로 소환돼 교화소로 보내지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또 다른 이호남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이철(54) 참사다. 이 참사는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90년대 중반부터 남북 경협 현장을 누빈 북한의 경제전문가로 이철운이라는 가명으로 주로 활동해왔다.

권 씨의 대북 비선으로 안 씨 등이 만난 이호남은 바로 이철이다. 이 참사는 97년 북풍사건 때 국가안전기획부 대북 공작원으로 알려진 박채서(암호명 흑금성) 문건에도 등장한다.

당시 그는 신한국당 정재문 의원이 북한의 안병수(일명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고 김병식 북한 부주석의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연락책 등의 역할을 하였다.

2005년에는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 제작에도 관여했다. 이 일로 이 참사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흑금성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참사는 86년 김일성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를 지내다가 91년쯤 대외경제합영총국으로 옮긴 뒤 대외경제위원회를 거쳐 베이징에서 남북 경협 일을 해왔다.

이 참사의 김일성대 1년 후배인 대외경제정책연구소 조명철 박사는 “이 참사와는 1980년대 후반 김일성대 교수로 함께 지냈는데 얼마 안돼 대외경제 일을 하는 곳으로 옮겨 갔다”며 “성격이 활달하고 똑똑하며 사교성이 좋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이 참사의 부친은 군 출신이고 장인은 이길송 중앙검찰소장으로 배경이 좋은데 항간에서 알려진 것처럼 장성택(김정일 매제) 조선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라인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북사업가 장석중 씨가 98년 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문제를 타진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처음 접촉한 사람이 이철(당시 이철훈이라는 가명 씀)이었다. 그해 이철은 대남사업을 잘한 공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