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루아얄, 내달 6일 결선투표 박빙 예고… 대역전극도 가능1차 3위 중도파 후보 바이루 680만 표가 승패 좌우… 양진영서 구애

프랑스 중도우파 집권당 UMP(대중운동연합) 대통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의 지지자들이 22일 대선 1차 투표 비공식 집계 발표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도파를 잡아라.’

5월 6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가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 후보와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ㆍ여) 후보의 한판 승부로 좁혀지면서 중도파 유권자들이 두 후보의 운명을 가를 승부처로 부상하고 있다.

4월 22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사르코지 후보와 루아얄 후보는 각각 31.1%와 25.8%를 얻어 1위와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1, 2위만으로 다시 맞대결을 벌여 최종 승자를 가리게 하는 선거법에 따른 것이다.

1차 투표에서 두 후보의 득표차는 5% 포인트 정도였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사르코지 후보와 루아얄 후보가 51% 대 49%의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조사돼 현재로서는 누구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

과거 프랑스 대선을 보면 1차 투표에서 2위로 결선에 진출한 후보가 최종 승부에서 역전승한 사례도 적지 않아 더욱 피말리는 승부가 예상된다.

1981년 대선 당시 중도파인 프랑스민주동맹(UDF)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후보가 1차 투표에서는 최다 득표를 올렸지만, 결선에서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에게 패배했다.

95년 대선도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결선에서는 공화국연합(RPR)의 자크 시라크 후보에게 무릎을 꿇은 전례가 있다. 따라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번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중도파 UDF의 프랑수아 바이루(55) 후보의 지지표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판세를 모를 리 없는 사르코지와 루아얄 두 후보는 바이루 후보에게 모아졌던 680만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중도파 유권자들을 향한 노골적인 구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사르코지가 집권할 경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장-루이 보를루 고용장관은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되면 (바이루가 당수로 있는) UDF 사람들이 대규모로 정부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루아얄 진영도 “UDF와 제도개혁이나 교육ㆍ실업 문제에 대한 연대가 가능하다”며 이를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바이루의 중도파에 보다 ‘공세적으로’ 구애를 펼치는 쪽은 사르코지 측이다.

사르코지 후보는 바이루 후보가 자신을 지지한다면 집권당은 UDF 후보들이 6월 실시되는 총선에서 자신들의 지역구에 단독 출마할 수 있도록 해 당선되게 한다는 약속을 지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약속을 폐기해 집권당 후보를 상대로 내세워 UDF의 의회 진출을 저지하겠다는, 보다 노골적인 입장이다.

바이루의 태도에 따라 채찍과 당근을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후보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바이루 후보는 25일 “사르코지와 루아얄 모두 프랑스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하며 “결선투표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에 대해 어떤 지침도 내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발 더 나가 총선에 대비해 민주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루는 이날 ‘독립’을 선언하면서 두 후보에 대한 뼈 있는 한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협박 취미가 있는 사르코지는 재계, 언론계 등 권력과 가까워 전례 없이 권력을 집중시킬 것”이라며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사회갈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사르코지에게 협박 취미가 있다고 한 것은 ‘협조’하면 당근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채찍을 휘두르겠다고 한 것을 비꼰 것임은 물론이다. 루아얄에 대해서는 “사르코지보다 민주주의와 사회구조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그의 정책은 국가 개입으로 가득하다”며 “이것은 프랑스가 필요로 하는 것에 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바이루의 중립 선언과 1차 투표에서 모두 10% 정도를 득표한 군소 극좌파 후보들의 루아얄 지지 선언으로 루아얄 후보가 유리해진 듯 보인다. 그러나 범좌파의 득표율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고, 10.5%로 4위를 한 극우파 장_마리 르펜의 지지표는 대부분 사르코지에 향할 것으로 예상돼 결국 중도파와 부동표의 향배가 열쇠임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지지층이 확연히 구별되는 만큼 두 후보의 공약도 판이하다.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모토를 내세운 사르코지는 우파답게 ‘경쟁력’을 화두로 삼고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감세,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및 근로시간 연장,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체제 적극 도입 등 친기업·친시장 공약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자유시장 경제노선은 전통적인 드골주의자와 좌파들로부터 거부감을 사는 원인이다. 또 강력한 법집행을 통해 치안을 유지하고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겠다는 민족주의 성향도 숨기지 않는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반대, EU 확대 반대, 유럽헌법 반대 등은 그의 민족주의 성향이 대외정책에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반면 루아얄은 ‘더 공정하면 프랑스는 더 강해진다’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사회보장과 복지를 우선하는 좌파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주 35시간 근로제를 강화하고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 사르코지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대외정책에서도 더 강한 EU,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대미관계 등을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범법 청소년을 군대식 훈련캠프에 보내 교육받도록 하자는 제안 같은 것은 전통 좌파들의 반발을 사는 요인이다. 좌파 내부에서 그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누가 이기든 2차 대전 전후세대가 처음 엘리제궁에 입성하게 된다는 점과 좌우파의 성 대결이라는 점, 헝가리 이민 2세(사르코지)와 여성이라는 프랑스 정치의 아웃사이더가 주류로 등장했다는 점, 루아얄이 승리한다면 프랑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 등이다.

내년 미국 대선의 가장 강력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어떤 심판을 받느냐는 대서양 너머 같은 여성인 루아얄의 선전에 달려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르코지-바이루-루아얄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