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쇄신안은 보신책에 불과… 李·朴 두 대선주자에도 "후보답게 행동하라" 일침

“이 당은 박근혜당도, 이명박당도 아닌 한나라당이다. 이명박ㆍ박근혜 두 주자는 한나라당 후보일 뿐인데 왜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나. 두 주자 눈치만 보다 당을 참담하게 만든 강재섭 대표는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지난 4월 30일 강재섭 대표가 쇄신안을 내놓고 대표직을 유지하겠다고 하자 강도 높게 강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주자에게도 “후보답게 행동하라”며 일침을 가했다.

4ㆍ25 재·보선 참패와 이ㆍ박 진영의 대결로 당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홍 의원은 가장 신랄한 비판론을 폈다.

보름 전에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길’이란 장문의 글로 당 안팎의 눈길을 끌었던 홍 의원을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에서 만나 한나라당의 좌표와 대선구도 등에 대해 들어봤다.

- 강재섭 대표의 쇄신안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했는데.

“이번 강 대표의 쇄신안은 자신의 보신책에 불과하다. 당 쇄신안의 내용을 보면 부패 청산, 윤리위원회 강화, 당 재건 등을 언급했는데 이것은 당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로 지난 10개월 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자인한 것과 다름없다.

이는 강 대표가 이명박ㆍ박근혜 두 주자의 눈치를 보느라 대표로서 처신을 못했기 때문인데 다시 두 주자에 기대 대표직을 유지하는 것은 당이나 12월 대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 강 대표는 당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도부까지 사퇴하면 당이 깨질 수도 있다고 했다.

“강 대표가 안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본인이 물러나면 당은 나름대로 정리할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강 대표는 그동안 두 대선주자에 ‘중립’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 사태로 박근혜 사람으로 인식되게 됐다. 두 대선주자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공평무사한 당 운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강 대표는 쇄신안에서 '이제는 후보의 당이 아닌 당이 중심이 되는 당 중심체제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취임 후 여태껏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선언만으로 달라질 게 없다고 본다. 더구나 두 대선주자의 신임을 얻어서 연명하는 처지인데 당을 당 중심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이명박 전 시장이 이재오 최고위원을 설득해 강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떻게 보는가.

“도로한나라당이 됐다. 한나라당답게 수습한, 아니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이 전 시장 진영의 굴복은 이 전 시장답게 정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easy going’ 하자는 2002년 이회창식 정치를 연상시킨다.

당 개혁이나 혁신을 통하지 않고 이대로 가도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당을 끌고 갈 것이다.

- 한나라당을 세탁기 안에 넣고 한 번 돌려야 한다고 했는데 세탁기에 넣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을 망치는 한나라당 구악들이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으나 박 전 대표 등 지도부가 연수원을 헌납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런 인상을 불식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공천헌금, 후보 매수, 당 구성원이 부정한 사람으로 몰리는 등 부패 정당 이미지가 되살아났다. 당 내부가 부패한데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부패가 만연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한나라당 구악들은 전면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

- 4ㆍ25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12월 대선과의 관련성은.

“이번 4ㆍ25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의 재·보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으나 이번은 여당이 거의 출마하지 않아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12월 대선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각성해야 할 것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정부를 장악했는데 국민의 견제 심리가 발동한다고 볼 때 중앙정부도 한나라당에 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이것이 허상이란 것을 뚜렷이 보고 냉철하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선거 참패가 집권으로 가는 보약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4ㆍ25 재·보선 참패와 현재 한나라당의 혼란에 이ㆍ박 두 대선주자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당연히 책임이 있다. 강 대표 체제는 두 주자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렸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이 크다.

이 당이 박근혜당인가, 아니면 이명박당인가. 오직 한나라당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후보에 불과한 두 주자가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버려야했던 사당화로 당을 몰고 가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사욕을 위해 경선에서 이기면 본선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식의 망상으로 당 지도부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대리인을 통해서 당을 간접 통치하려고 하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적어도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 잘 사는 국민을 만들겠다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둬야지 당내에서 땅따먹기나 하고, 국회의원 제로섬게임이나 하는 졸렬한 행동을 해야겠는가.

그러니까 4ㆍ25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이 아닌가. 지도체제 개편론이 제기되는 판에 경선 룰을 조정하자고 주장하는 이명박 측이나 지도력을 상실하고 부패에 휩싸인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박근혜 측 모두 문제가 있다.”

- 이ㆍ박 진영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어 당이 깨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한나라당이 분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별하면 공멸하기 때문이다. 지금 범여권의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기 때문에 분당해도 지금의 지지율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범여권 후보가 나오는 순간 이ㆍ박의 지지율은 하락한다. 분당은 공멸로 가는 독약이다.”

- 그렇다면 현재 한나라당의 총체적인 혼란을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땜질식 미봉책으로는 금년 말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당은 안으로 썩고 있는데 연고를 바른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필요하다. 먼저 당 혼란에 대해 두 대선주자가 사죄해야 한다.

둘째는 지도체제 혁신을 통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당 원로가 중심이 돼 두 주자 눈치를 안 보고 당을 비상체제로 끌고 가야 한다고 본다. 비대위원장엔 박관용 전 의장이나 최병렬 전 대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 비대위체제로 가면 경선과 전당대회는.

“비대위체제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고 10월쯤 가서 대선 필승 전진대회 겸 전당대회를 열어 경선 중에 떨어진 분을 대표로 추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선 후유증도 치유되고 당권ㆍ대권 분리라는 당헌에도 맞을 뿐 아니라 대표ㆍ후보가 협력할 수 있어 대선 승리의 길이 보이게 된다.”

- 이ㆍ박 두 진영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경선에 출마하나.

“두 주자 캠프에는 가지 않겠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면 국민은 중간지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런 국민적 요구가 있을 때 독자경선 출마를 검토해보겠다.”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손학규 전 지사가 주목받고 있다. 손 전 지사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정 전 총장은 애초부터 치어리더로 봤는데 그분께서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것 같다. 현실 정치에 들어오면 참으로 힘들고 참아야 할 것도 많고, 그래서 학자적 양심을 가지신 분들이 정진하기 어려운 판이다. 정 전 총장이 물러나면서 범여권의 힘은 손 전 지사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인데 손 전 지사가 그 기회를 잘 살린다면 범여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