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결정 앞두고 강대국 갈등 심화, 자체 독립선언 가능성도

코소보 독립 여부를 결정할 유엔안보리 희의장
8년 전인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세르비아 폭격으로 절정에 달했던 20세기 마지막 인종학살의 현장 코소보가 민족의 숙원인 독립을 앞둔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코소보의 독립 여부를 결정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열릴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코소보 독립 지지와 독립 반대라는 정반대의 카드를 갖고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당사자인 세르비아 정부는 세르비아 영토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외세 개입도 배격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코소보의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는 독립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이번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맞서고 있다.

최악의 경우 안보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알바니아계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에 다시 무력개입 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유엔 관리체제하에 있는 코소보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독립승인이 나오는 대로 독립을 공식 선언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독립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고, 영국도 이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독립을 선포하면 유럽연합(EU)의 지지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제사회의 승인도 안보리의 합법적 독립승인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코소보로서는 러시아의 안보리 거부권 행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속셈 다른 미·러, '지지' '반대' 대립

반면 세르비아 정부는 정반대이다. 세르비아 정교의 성지이기도 한 코소보는 분리될 수 없는 세르비아의 영토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만 코소보가 현재 유엔의 관할 하에 있고 인구 구성이 세르비아계는 10% 미만인 반면 알바니아계는 90%가 넘는다는 현실을 감안해 ‘독립에 근접하는 광범위한 자치’는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내걸고 타협에 나서고 있다.

이런 광범위한 자치권 카드만이 알바니아계에는 미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세르비아계에는 영토를 보존케 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이런 타협안을 코소보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과거 세르비아의 전신인 신유고연방 내에서 자치권을 빼앗긴 경험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흐름이 독립에 우호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코소보의 완전한 독립 열망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유엔의 코소보 특사인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은 최근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1년여에 걸친 회담 중재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코소보가 자체 헌법과 국기, 국가를 갖는 내용의 독립을 허용하는 코소보 미래 지위에 관한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안보리의 토론이 시작되면 이 보고서가 근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은 발칸의 안정, 나아가 유럽의 통합을 위해서도 코소보의 독립은 불가피하다는 주장하고 있다.

자치만으로는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간의 뿌리깊은 구원을 해소할 수 없고, 또 다시 인종 간 유혈충돌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니콜러스 번스 미국 국무부 차관은 “앞으로 수주 동안 안보리가 코소보 독립을 위한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러시아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만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럼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세르비아가 정치, 역사, 종교적인 면에서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이라는 점,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발칸반도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코소보 문제를 통해 잃어버린 유럽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러시아 주변의 분리주의 움직임에 대한 명분을 얻는 일거양득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즉 그루지야의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아, 몰도바의 틀란스드니에스트르 등의 분리운동을 암암리에 지원해온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을 이들 지역의 분리독립 인정과 연계시키는 카드로 이용하기 위해 미국과 날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반대는 결국 반대급부를 충분히 얻기 위한 준비공작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안보리에서의 코소보 독립 승인은 절차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시나리오를 의식하고 있는 세르비아 정부는 서방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코소보 문제에 대한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코소보를 세르비아 영토로 규정한 새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연방을 이루던 몬테네그로 공화국이 독립했다는 것이 헌법 개정을 추진하게 된 1차적 배경이지만 실제로는 코소보 문제를 의식해 신헌법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 1월에는 코소보 문제에 가장 비타협적인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세르비아급진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제1당의 자리를 지켰다. 세르비아의 일련의 정치적 행보는 유엔에 어떤 구속력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리에서 독립이 승인됐을 경우 세르비아 내부의 엄청난 반발을 부를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새로운 인종갈등 조짐으로 긴장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주민들 간 폭력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세르비아계 주민이 대거 코소보를 떠나는 새로운 인종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 이후 유엔의 감시 하에 지탱해 오던 두 인종 간의 불안한 동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까지 부른 코소보 사태는 1998년 세르비아군과 코소보해방군(KLA)의 유혈충돌로 알바니아 주민 1만여 명이 학살되면서 촉발됐다.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에 둘러싸인 코소보는 구 유고연방 시절이던 1945년부터 자치를 실시해왔으나 89년 자치권을 빼앗겼다. 나토는 세르비아군이 분리주의 운동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학살하자 99년 3월 코소보와 세르비아를 폭격, 3개월여 만에 세르비아군의 철군을 끌어냈다.

전쟁 와중에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주민이 고향을 떠나 난민으로 전락했고, 전쟁 후에는 소수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역보복을 우려해 역시 코소보를 떠나는 비극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현재 35개국에서 파견된 1만7,000여 명의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이 코소보 북부도시 미트로비차를 동서로 가르는 이바르강(江)을 경계로 코소보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무조건 독립’과 ‘독립 절대 불가’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코소보 독립 문제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결국 국제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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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바니아계 코소보 여성이 지난 1999년에 세르비아군에 납치돼 살해된 88명의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들이 묻혀있는 '순교자 무덤'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