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걷는 무샤라프 대통령 '위기의 여름'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반정부 투쟁 격화… 우방 미국과 갈등도 깊어져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위기의 여름을 맞고 있다. 안으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반정부 투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고, 밖으로는 최대의 우군 미국과 대 테러 전략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올해 말 임기 만료와 함께 재선을 노리던 대권 구도는 안팎에서 옥죄어 오는 악재들로 일거에 무너질 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성 있게 제기되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현재 최대의 난제는 극렬해지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반정부 무장투쟁이다. 그가 미국의 대 테러전에 적극 협력할 때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던 이슬람 세력의 불만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최근 잇단 강압조치와 맞물려 폭발 일보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7월 11일 파키스탄 정부의 ‘붉은 사원(랄 마스지드 사원)’ 강제 유혈진압 이후 연일 정부군에 대한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와 무장공격이 계속돼 지금까지 300여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로켓포까지 동원한 양측의 치열한 교전은 그럼에도 전혀 수그러들 태세가 아니어서 반정부 투쟁이 정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측하기 힘들다.

정부는 순수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붉은 사원을 점거한 극단주의 세력을 무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더 큰 폭력을 자초한 셈이다.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북와지리스탄 부족사회는 정부의 유혈진압에 강력히 반발해 지난해 9월 체결한 정부와의 평화협정을 공식 파기했다.

파키스탄 야당지도자 마울란 파잘레만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접경마을 차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차만=로이터 연합뉴스>

진압과정에서 숨진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부족 출신이라는 점이 일차적 이유였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부족으로서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친미정책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문제는 북와지리스탄 지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의 본거지라는 점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슈툰족은 미국에 대항해 알 카에다와 탈레반 세력을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이 부족사회가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경우 파키스탄 정정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짐작조차 쉽지 않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불안정한 동거를 선택한 것도 이 지역이 갖는 엄청난 정치적 폭발력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아슬아슬한 이슬람 세력과의 동거에 뇌관을 제공한 것이 무샤라프 대통령과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과의 정면대결이다.

무샤라프는 초드리 대법원장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판결을 계속하자 그를 직무정지시키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무샤라프 자신에게 향하는 부메랑이 됐다.

당초 조용히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초드리 대법원장은 “대통령이든 군 최고사령관이든 대법원장을 해임할 헌법적 권한이 없다”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파키스탄 여성들이 파키스탄 북서쪽 마타지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사건으로 희생된 11명의 군인과 3명의 민간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마타=AP연합뉴스>

1999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초법적으로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에 이처럼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군부에 도전하면서 초드리 대법원장은 일약 파키스탄 민주세력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장 직무정지 이틀만에 변호사들이 재판 참여를 거부하면 전국적 시위를 벌였고, 여기에 야당과 민주세력까지 동참했다. 5월 9일에는 그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무샤라프 지지자 간 충돌로 41명이 숨지기도 했다.

마침내 7월 20일 대법원이 “무샤라프 대통령의 조치는 위법”이라고 초드리 대법원장을 손을 들어주면서 무샤라프는 권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변호사들은 이날을 ‘사법부 독립기념일’로 제정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보였다.

주목되는 것은 군부의 반응이다. 이번 대법원장 파문으로 실추된 명예에 대해 군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무샤라프 정권의 명운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헌법이 금지한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의 겸직해 논란의 대상이 돼왔던 마당에 군부마저 돌아선다면 무샤라프가 더 이상 초법적 권력을 계속할 명분은 사라지는 셈이다.

무샤라프 정권의 든든한 대외 버팀목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은 균열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북와지리스탄 지역의 테러집단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군사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날린 것이다.

미국 정보당국 총책임자인 마이크 매코널 국가정보국장(DNI)이 “빈 라덴이 살아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파키스탄 국경지대가 은신처”라고 포문을 열자 프랜시스 타운센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술 더 떠 “미국인 생명 보호라는 최우선 과제 앞에서는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해 군사공격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중앙정보국(CIA)은 이 지역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알 카에다의 ‘해방구’가 됐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굴욕적인 협정을 맺으면서까지 화친을 도모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은 곧 무샤라프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파키스탄 정부가 강력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키스탄 국경 내 빈 라덴이 있다는 물증이 있다면 즉각 공개하라”는 반박 성명을 냈지만 파키스탄 정부 역시 미국의 주장을 100% 부인할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속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물론 미국 정부도 이 지역을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 내 알 카에다 세력을 소탕할 수 있는 군사적 방법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이용한 대대적인 공격, 공군력을 이용한 정밀폭격, 그리고 소규모 정예요원을 동원한 비밀작전 등 세가지 정도를 예상할 수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다는 데 미국도 딜레마가 있다.

우선 대규모 공격은 이라크전쟁에 따른 병력의 한계, 서남아 지역의 반미정서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감행하기 어렵다.

족집게 폭격이나 비밀작전도 실효를 거두려면 최소한 이들의 동태와 관련된 분 단위의 생생한 정보가 필수적인데, 이들의 근거지가 첩보활동이 불가능한 산악오지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당장은 미국의 군사공격의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 무샤라프 대통령의 위안거리이지만 문제는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믿음과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상황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조금이라도 지지를 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샤라프 대통령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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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