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 참패로 의장직 상실·지지도 추락… 아베 총리 퇴진론도미일 군사동맹 상징 '특조법' 연장 발등의 불… 정국 난맥상 불가피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일본 자민당의 선거 후폭풍이 거세다.

선거 패배는 예견된 것이었고, 또 참패에 따른 정국 난맥상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진폭이 예상외로 크다는 게 문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개헌 등 개혁입법 작업은 참의원에서의 주도권 상실로 물 건너갔다는 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우선 참의원 의장이 바뀌었다. 제1당에서 의장직을 맡는다는 관례에 따라 민주당 소속의 에다 사쓰키(江田五月ㆍ66) 전 과학기술청 장관이 7일 선거 후 첫 소집된 임시의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됐다.

선거 패배에 따른 당연한 결과지만 참의원 의장이 자민당 밖에서 나오기는 1955년 자민당 결성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자민당이 느끼는 상실감은 적지 않았다.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 민주당 간의 정당지지도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취임한 2001년 4월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역전됐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단기간 내에 바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민당으로서는 아베 총리의 거취 문제 뿐 아니라 당 자체가 무너질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의장직 상실이나 지지도 하락이 표면적, 장기적인 것이라면 국내외 정책과 관련된 파열음은 당장 발 밑에 떨어진 불이다. 대표적인 것이 테러대책특별조치법(특조법) 연장 문제다.

참의원 선거 참패 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베신조(왼쪽) 총리와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 는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사무총장.

특조법은 해상자위대의 자위함을 파견해 미군 등 다국적군 함선의 급유를 지원하는 근거가 되는 것으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일본의 의지를 보여주는 미일동맹의 상징이다.

지금까지 3차례 연장된 이 법의 만료시한인 11월1일까지 연장법안이 재차 통과되지 않는다면 자위대 파견의 법적 근거는 없어지고 자위대는 철수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미일관계에 미치는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대 테러전도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 같이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함의를 띠고 있는 특조법 연장 법안을 이번에는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자세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전쟁’이라며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시작한 것”이라며 “일본과 직접 관계가 없는 곳에서 미국 등 다른 나라와 공동작전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그간 일관되게 특조법 연장 반대를 고수해왔고, 오자와 대표 역시 특조법 연장 저지를 정권 탈환의 교두보로 여길 정도로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민당 정권이 제시할 수 있는 타협의 여지도 별로 없다. 물론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된다고 해서 수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의원 우위의 의회 제도에 따라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중의원에서 3분의 2의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다.

참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끈‘선거의 천재’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끈'선거의 천재'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하는 논란 많은 법안이 중의원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을 얻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다시 처리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결국 참의원이 특조법의 연장 여부, 나아가 미일동맹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일본 참의원 선거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았던 미국은 불똥이 당장 미일 군사동맹에까지 미치자 민주당을 다독이기 위해 정부 고위층을 부랴부랴 일본에 보내는 등 다급해졌다.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 대사가 특조법 연장 문제와 관련, 오자와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거부되는 이례적인 일까지 발생했다.

주일 미국대사가 일본 야당 대표에게 면담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인데, 거기에 더해 면담을 거절당하는 수모까지 당한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8일 면담이 성사됐으나 시퍼 대사는 “연장 불가”라는 오자와 대표의 의지만 거듭 확인했을 뿐이었다.

집단적 자위권을 재해석해 인정받겠다는 계획도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선거패배를 계기로 당론을 ‘평화노선 중시’로 선회하면서 관련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선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직간접적으로 개헌과 연관돼 있어 집단적 자위권 해석이 무산되면 개헌 가도에도 심각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사면초가에 몰린 자민당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아베 신조 총리와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사무총장이 선거참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총리를 퇴진시켜 국면을 정면돌파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민심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고강도 처방이 불가피할 수 있다. 과거 참의원 참패로 총리가 물러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명분도 있다.

문제 아베 총리 자신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 참패 후 당내에서 쏟아지는 퇴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총리는 참의원 선거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식물총리’라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로 아베 총리의 장악력은 땅에 떨어진 상태여서 그가 과연 총리직 고수를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자민당내에서는 아베 총리의 고집이 ‘중의원 해산→정권 탈환’이라는 오자와 민주당 대표를 돕는 이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단을 머뭇거려 때를 놓치면 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차기 총리 후임자들은 이미 거론되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ㆍ66) 외무성 장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ㆍ71) 전 관방장관,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ㆍ62) 전 재무성 장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ㆍ55) 전 방위성 장관 등이다.

이중 조만간 있을 내각 개편에서 자민당 간사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강경 보수파 아소 장관이 후임 총리 1순위이다.

그는 전후 최고의 일본 총리로 꼽히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외손자로 아베 총리 못지 않은 정치 귀족가문 출신이다. 그러나 군소파벌 수장으로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 선거유세 과정에서의 잇단 설화로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 흠이다.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을 지낸 중도온건파의 후쿠다 전 장관도 유력한 대안이다. 비교적 균형잡힌 외교적 식견이 장점인 그는 한국, 중국 등에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가 낮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게 걸림돌이다.

다니가키, 고이케 두 전 장관은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치경험이 일천하다는 점 때문에 앞의 두 인물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선거의 천재’로 불리는 오자와 대표의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오자와의 부상과 아베 총리의 몰락은 현재 일본 정국의 동전의 양면이다. 막판까지 온 최후의 결투에서 살아 남는 자가 누구일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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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