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교수 채용-동국대 비리 수사 축소-금호, 대우건설 인수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비화되고 있는 '신정아 사건'에서 2005년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해다. 그 해 9월 신씨는 동국대 예술대학에 특별채용돼 인턴 큐레이터에서 출발한 그의 비상(飛翔)이 정점을 이뤘다.

그 해 신씨가 지인들에게 자랑스레 떠벌렸다는 말 한마디.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오라고 했지만 동국대 가기로 했어."당시 신씨가 권력 실세들과 가깝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국대 미술학과가 제각각 신씨를 교수로 채용, 국고 및 재계의 지원을 받아내려 한다는 풍문이 뒤따랐다.

그 무렵 서울대 일부 교수들은 신씨가 예일대와는 무관한 가짜 학력 소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서울대가 신씨 채용을 놓고 동국대와 힘겨루기를 했다는 소문이 오르내린 것은 그만큼 신씨가 권력층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한 셈이다.

최근 신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밝혀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씨의 동국대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신씨의 권력밀착설은 사실로 확인됐다.

2005년은 신씨를 교수로 채용한 동국대에도 특별한 해다. 동국대 비리 의혹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 순간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다.

지난 7월 4일 제7회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신정아(왼쪽)씨가 한갑수 이사장(가운데), 오쿠이 엔위저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대 학장과 함께 비엔날레 회의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동국대 교수회는 학교 총장과 일부 이사를 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사건은 조계종단 내 갈등과도 얽혀 있어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학내 및 종단 갈등으로 치닫던 동국대 사태는 그 해 10월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변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사건은 2년 째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을 뿐 진척이 없다.

당시 검찰의 수사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난무했지만 동국대 출신 정치인 K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검찰과 학교 주변의 지배적인 관측이었다.

그런데 최근 신씨의 동국대 교수 채용에 변 전 실장의 입김이 작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각에선 동국대 비리수사 중단에 신씨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동국대가 검찰의 수사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중학교 동창인 교내 직원 S씨를 직급까지 올려주며 활용하려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권력층과 가까운 신씨를 교수로 채용해 검찰 수사를 무마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신씨가 직접, 또는 변 전 실장을 통해 권력실세와 닿아 검찰을 움직였다는 해석이다.

2005년은 신씨가 큐레이터로 입문한 금호(금호미술관)가 대우건설 인수전에 본격 뛰어든 해이기도 하다. 당시 재계에서는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알짜기업 대우건설을 낚기 위해 10여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오른쪽 사진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듬해인 1월 20일 마감된 대우건설 예비입찰에는 두산, 금호아시아나, 한화,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 프라임그룹, 유진그룹, 대주그룹, 삼환그룹, 경남기업, CVC아시아퍼시픽 등 총 10개의 컨소시엄이 참여, 이중 두산 금호 유진 프라임 삼환 한화 등 여섯 군데 컨소시엄이 최종입찰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두산, 한화 등이 중도에 빠지고 같은 해 6월 금호아시아나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권력개입설이 불거졌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금호에 투자계획을 밝혔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이를 철회했는가 하면, 인수자 선정 과정에서 금호에 출자총액제한제 예외규정을 첫 적용토록 하고, 입찰가격 사전 유출 의혹이 이는 등 금호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 예외규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으로 당시 재경부 출신 열린우리당 K 의원이 거론돼 금호 밀어주기설은 절정에 달했다.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예일대 한국동문회장을 하면서 같은 예일대 후배이면서 미술에 조예가 깊은 변 전 실장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박 명예회장의 동생들도 변 전 실장과 잘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에 변 전 실장과 그 이상의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금호가 대우건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2005년 6월 서울대에 거액을 기부한 것도 신정아씨 사건 이후 논란이 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건넨 금호예술기금 50억원의 배경을 놓고 이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

당시 금호가 서울대에 거액을 전달한 것은 문화계에 화재가 됐고, 정 총장의 인사말처럼 '이례적'이었다. 기금은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에 절반씩 지원됐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한국메세나협회장을 맡으면서 금호의 문화지원 사업이 대규모로 이뤄졌지만 미술 쪽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미술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권력실세와 가까운 신정아씨가 동국대 교수가 될 경우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배정될 수 있는 국고 및 기업의 지원이 동국대 미술학과로 바뀔 것을 우려한 서울대가 신씨의 가짜 학력을 문제 삼으려 하자 신씨의 배후에 있는 권력실세가 힘을 쓴 결과라는 설이 있었다. 즉 금호의 대우인수를 밀어준 권력실세의 요청에 따라 신씨를 보호하기 위해 금호가 서울대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기부했다는 추정이다.

2005~2006년 학계, 재계, 사회에서 주목을 끌었던 동국대의 신정아 교수 채용, 검찰의 동국대사건 수사 완화,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는 당시만해도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신정아 게이트'가 정ㆍ재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앞서 세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연대 정기표 대표는 13일 "신정아 사건의 몸통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며 이해찬 의원 관련성을 압박해 의혹에 불씨를 당겼다. 장 대표는 또 "신정아씨가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신정아 사건의 배후로 이해찬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이해찬 의원은 "대답할 가치도 없는 악의적 상상" "바르지 못한 정치공작" 등으로 일축했고 금호 역시 "사실 무근"이라며 반박했다.

그런데 최근 신씨의 지인, 해당 학교 관계자, 정ㆍ재계 정보통의 소식을 종합하면 근거없는 소문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먼저 검찰의 동국대 수사가 감속된 부분이다. 당시 정치인 K씨는 직접 힘을 발휘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검찰에 영향을 미치려면 검찰총장 이상의 권력이 작용해야 한다. 그래서 K씨와 오랜기간 정치적 인연을 맺어 온 당시 실세 총리였던 이해찬 의원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거론된다. 더구나 이 의원이 신정아씨의 동국대 고수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한 변 전 실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증폭되는 상황이다.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 부분도 의혹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금호에게 유리하게 진행된 대우건설 인수가 단순히 해당 기관장의 힘만으로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당시 금호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K의원과 재경부장관 이상을 전제한다면 남는 파워맨은 이해찬 전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뿐이다.

한나라당은 변 전 실장이 승승장구한 배후로 이해찬 의원을 거론했다. 이 의원이 2000년 10월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정책위의장일 때 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인 변 전 실장을 처음 만난 이후 변 전 실장을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변 전 실장이 가까운 신씨를 이 의원에게 소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신정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우연히 전시나 모임에서 지나쳤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가에서도 "자기관리가 철저한 이 의원이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살만한 일을 했겠느냐"는 견해가 다수다.

'신정아 게이트'의 파장이 2005년 사회의 주목을 끌었던 대형 사건의 언저리를 다시 들춰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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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