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로 본격 스타트침례교 목사 출신 허커비의 남부 대약진에 가톨릭 줄리아니·몰몬교 롬니 움찔부시에 염증 느낀 개신교도 부동층 늘어…민주당 후보들도 보수층에 러브콜

내년 11월 실시되는 미국 대선이 본격적인 레이스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공화 민주 양당의 경선이 새해 벽두부터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미국 대선은 과거보다 경선을 앞당겨 실시하는 주(州)가 많아져 경선 초반 승부가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유력한 후보라 할지라도 초반 세몰이에 실패한다면 ‘대세론’에 밀려 의외의 고배를 마실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빠른 1월 3일 코커스(당원대회)를 실시하는 아이오와를 시작으로 1월 8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그리고 1월 19일 남부에서는 첫 프라이머리가 실시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유권자들의 성향을 가늠할 수 있고, 또 역으로 남은 유권자들이 표심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 주의 초반 판세는 ‘기선제압’의 차원을 넘어 경선 후보로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판가름짓는 ‘생사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선을 목전에 둔 지금 미국 대선의 키워드는 ‘종교’이다.

‘정교분리’라는 서구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에서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각 후보가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고, 유권자가 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표심을 가르는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보수의 가치를 종교와 공유하는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종교를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을 금기시했던 민주당에도 공통된 현상이다. 종교에서 유권자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공화당 후보이건, 민주당 후보이건 버텨내기 어려운 게 지금의 미국 대선 분위기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공화당 후보들은 말 그대로 ‘종교전쟁’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테러를 합리화하기 위해 명분으로 내세우는 ‘성전(聖戰)’이라는 용어까지 거론하며 지금의 선거판을 비유하기도 한다.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후보들은 앞다퉈 ‘신앙고백’을 하고, 상대 후보들의 종교적 흠을 들춰내느라 여념이 없다.

공화당 종교전쟁의 불씨를 지핀 후보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이다. 지난 9월만해도 지지율 3%의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던 허커비 전 주지사는 마땅한 지지후보를 찾지 못해 공중을 떠다니던 복음주의자들의 낙점을 받은 뒤 수직상승, 아이오와에서 1위를 지키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추월했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아이오와 뿐 아니라 이른바 남부 ‘바이블 벨트(Bible Belt)’의 첫 관문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메이저급인 플로리다에서도 1위에 올라서 그의 돌풍이 일과성이 아님을 입증했다. 바이블 벨트는 보수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한 남부 주들을 가리킨다.

중앙정치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허커비 전 주지사가 이렇게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전국적 지지도에서 공화당 선두주자는 9 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서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며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루돌프 줄리아니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두차례 이혼 경력에다 낙태와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등 보수적 가치와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인 줄리아니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이 믿음을 철회하면서 공화당 경선판도는 대변화를 예고했다. 이 때 12년간 침례교 목사를 한 허커비 전 주지사의 등장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정말 복음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던 복음주의자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해 줄 후보를 찾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허커비 전 주지사의 등장으로 다급해진 것은 아이오와에서 1위 자리를 내주고, 아이오와 바로 다음 경선이 치러지는 뉴햄프셔에서도 선두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롬니 전 주지사이다.

종교적 소수파인 몰몬교 신자이면서 초반 돌풍의 주인공이었던 롬니 전 주지사는 주류인 개신교 세력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몰몬교가 이단임을 은근히 부각시키는 허커비 전 주지사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 지는 미지수이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라는 TV 광고까지 제작, 노골적으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선 주자가 공적 광고에서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은 허커비 전 주지사가 처음이다.

공화당 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당 후보들도 자신이 ‘종교인’임을 자처하느라 여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감리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며 종교의 힘을 강조하는가 하면 “신앙을 가졌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개신교의 한 교파인 그리스도 연합교회 소속의 오바마 의원도 “공공생활에서 종교를 버리라는 세속주의자들의 요구는 황당한 것”이라며 종교가 정치에 앞서는 가치임을 내세웠다. 이들과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1996년 교통사고로 10대 아들을 잃은 어려운 시기에 종교가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민주당 후보들이 전통적으로 비 지지층인 보수 종교계에 구애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공화당에 염증을 느낀 개신교도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보수적 종교계에 ‘부동층’이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다 지구온난화, 성경의 창조적 해석 등에서 진보적 성향을 띤 개신교도들이 늘어난 것도 민주당 후보들이 종교를 공략 대상으로 삼게 된 배경이다.

9 11 테러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으면서 미국 국민은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지난 대선 때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부시 대통령에 패한 것은 유권자들의 종교적 표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개신교도들과 퇴역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경선은 민주당의 강세지역은 아니지만, 공화당 후보와 맞서는 민주당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는 상징적인 관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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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