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영남 물갈이'론 나와 전운 감돌아… 심사위 구성부터 뜨거운 신경전MB측 좌장 이재오 의원 진두지휘로 '이명박당' 만들기 총력박근혜측은 '당권마저 빼앗기면 존립 근거 사라진다' 배수진 대응

남권 K의원은 요즘 지역구를 챙기는 일 외에 서울 나들이가 잦다.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의 일정을 꼼꼼히 챙겨 행사에 동행, 눈도장을 찍는가 하면 ‘MB맨’으로 통하는 실세 의원들을 찾아 MB와의 인연이나 대선에서의 공(功)을 알리는데 전력한다.

K의원은 친이명박계로 분류됨에도 총선을 앞두고 ‘인적 쇄신’‘물갈이’설 등이 횡행하면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영남 40% 물갈이’얘기를 꺼낸데다 공천 혁명을 위해 친이명박 의원들을 더 많이 교체한다고 하니 신경 쓸 수밖에 없죠.”

친(親)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영남권 L의원의 두려움은 더하다. 이명박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의 출마가 점쳐지는데다 중진인 전 의원까지 나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 L의원은 지역구 관리는 물론, 박근혜 전 대표가 방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도 이 당선인쪽 의원들의 시선을 의식해 친박(親朴) 행보를 자제하고 있다.

수도권의 A의원은 불미스러운 자금 수수로 당에 피해를 준 전력이 있어 공천이 불투명했으나 정몽준 의원 영입에 공을 세운 것을 앞세워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최근 행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인사가 지역구에 사무실을 열고 총선에 뛰어들면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이 인사가 강재섭 대표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A의원이 적극 방어에 나서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4ㆍ9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전시상황’이다. 대선의 압도적 승리에다 범여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이어서 ‘공천=당선’이라는 분위기가 팽배, 그 어느 때보다 공천 전쟁이 뜨겁다.

이번 총선은 일반 의원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양대 축인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사활이 걸린데다 이명박 정부가 순항할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기에 한나라당의 모든 관심과 전력은 총선에 집중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은 원만한 국정수행을 위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환치시키는 것을 총선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한 ‘이심(李心)’은 이명박계의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현실화하는데 앞장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7월 전대에서 당권을 움켜쥐고 나아가 차기 대권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궁리도 배여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측은 대권을 넘겨준데다 당권마저 빼앗길 경우 당내 존립이 어렵다고 보고 박 전 대표를 앞세워 수성에 전력하고 있다.

박 전 대표측이 11월 초 물갈이 기치를 내건 이재오 최고위원을 사퇴시킨 것이나 12월 29일 대선 후 처음 가진 이명박 당선인과의 회동에서 박 전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공정한 공천’을 거론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박 전대표는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이 발족한 10일 자파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천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겠다”며 이명박 당선인측과 공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전 대표가 공천에 완강한 입장을 보이는데는 총선 결과에 따라 자신의 당내 입지는 물론 7월 전대에서의 당권, 그리고 장차 차기 대권의 행로와도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대권을 차지해 당내 주류세력으로 자리잡은 친이명박계는 공천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 ‘이명박당’으로의 일보를 내딛는다는 방침아래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부터 자파 세력에 유리한 구도를 형성해가고 있다.

총선기획단 구성에서 이방호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고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 박순자 여성위원장, 김정훈 원내 부대표,등 친이(親李)계가 5명인 반면 친박(親朴)계는 김학송 전략기획위원장, 송광호 제2사무부총장, 서병수 여의도연구소장 등 3명에 불과한 것은 이-박 공천전쟁의 흐름을 암시한다.

박 전 대표측은 한나라당 공천이 이 당선인의 핵심측근인 정두언 비서실 보좌역과 이방호 사무총장 두 사람의 조율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아래 비서실의 박영준 총괄팀장과 당 사무처 정종복 제1사무부총장이 실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측 핵심 브레인인 한 초선 의원은 “일각에선 강남의 P호텔과 강북의 G호텔에서는 당선인의 최측근 실세 의원들이 모여 ‘살생부’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쪽에서 중대 결심을 할 수 있다”고 해 당의 분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당선인은 총선 공천과 관련, 자파 의원들을 먼저 잘라내 명분을 쌓은 다음 물갈이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총선 출마를 선언했음에도 결국 불출마하거나 비례대표로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이 당선인은 물갈이 대상으로 3선 이상의 중진, 특히 영남권 의원들을 지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의도식 정치’에 익숙한 의원들과 지방색을 띤 의원들을 밀어내고 신진들로 충원, 이명박식 ‘탈여의도 정치’를 펴보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당선인이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친박 성향의 의원들이어서 이-박 양측간 공천 갈등이 타협으로 마무리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이달 말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면 공천 전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벌써 공심위 구성을 놓고 양측은 양보없는 세 대결을 보이고 있다. 이-박 공천 전쟁은 곧바로 4월 총선의 밑그림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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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