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감시센터 장화식 위원장 "팩스 발신번호 앞자리 일치한다"김앤장·스티븐 리 지목… 신빙성은 '글쎄'

투기자본 감시센터 이 공개한 문건. 외환은행 BIS비율팩스(아래)와 외환은행과 론스타 스티븐 리 간에 오간 비밀문건(왼쪽)의 발신 번호가 일치한다.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문제의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에 관한 팩스’ 발신처가 검찰이 추정한 것과 달리 김앤장 법률사무소 또는 론스타의 전 대표 스티븐일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2003년 7월 금감원에 발송된 외환은행 BIS 팩스는 금융감독당국이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하게 된 결정적인 자료로 이 팩스를 ‘누가 보냈느냐’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혹 중 하나다. 팩스 발신처가 정확히 확인될 경우 외환은행 매각 수사는 중대한 단서를 얻게 되지만, 검찰은 지난 9~24일 방한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 대한 조사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투기자본 감시센터 은 지난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BIS 비율을 산정한 팩스는 론스타의 한국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 또는 당시 론스타코리아 대표 스티븐 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장 위원장은 이를 방증하는 자료로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비밀준수협약’ 문서를 제시했다. 이 문건은 그동안 국회 재경위가 외환은행에게 받아 비공개로 취급해온 것이다.

장 위원장은 2003년 당시 외환은행 BIS 비율을 담은 팩스 발신번호( ‘02-729’로 뒷번호 4자리가 없는 상태)가 김앤장의 비밀 사무실 전화번호와 앞 번호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2002~2003년 외환은행 매각업무를 다루기 위해 김앤장이 한화빌딩 7층에‘비밀 사무실’을 운영했다”며 “이 사무실 전화번호 앞자리가 02-729로 통일되어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률자문비 이외에 M&A(인수합병)가 성사될 경우 주간사(김앤장은 미국측 주간사의 한국대리인)가 받는 수수료는 통상 1.5~2%로, 외환은행의 경우 매각금액이 1조 5,000억 원 규모였으니 수수료만 150억에서 200억 원”이라고 지적하며 “김앤장으로서는 당연히 기를 쓰고 팔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2006년 12월 중간 수사 발표에서 외환은행 매각으로 김앤장이 론스타 측으로부터 받은 금액은 우리 돈으로 약 20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때 김앤장은 론스타의 인수자격이 문제가 되던 시점에서 별도 용역비 350만 달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 위원장은 팩스 발신처와 관련한 두 번째 가능성으로 론스타 코리아의 스티븐 리 대표를 지목했다. 장 위원장은 이날 스티븐 리와 외환은행 전영식 전 상무의 <비밀 준수 협약> 문서를 공개했는데, 이 서신에 찍힌 팩스 번호가 뒷번호 4자리가 삭제된 ‘02-729’다.

총 4페이지로 구성된 이 문서는 외환은행 매각이 결정되기 전인 2002년 12월에 작성된 것. 외환은행 평가자료를 론스타에 공개하고, 이 비밀준수 협약을 통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경우 론스타는 그 사실을 외환은행에 즉각 알리고 도움을 주는 과정을 조속히 밝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외환은행의 전영식 전 상무와 스티븐 리의 서명이 들어간 이 문건은 팩스를 통해 오고 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스티븐 리와 전 전 상무 중 한 명이 금감원에 ‘의문의 팩스’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 위원장은 “전 전 상무가 먼저 사인을 해 이 문건을 팩스로 발송한 후 스티븐 리가 이것을 받아 자신의 사인을 해 외환은행으로 다시 보냈을 경우 최종적인 문서에는 스티븐 리 측의 발신번호만 남는다”며 “따라서‘02-729’는 스티븐 리의 사무실 팩스번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은행에서 보내는 팩스는 뒷 번호까지 모두 찍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리는 외환은행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당시 론스타의 서열 3위였다. 론스타 법률고문 마이클 톰슨은 “한국에서 투자 담당과 감독을 하는 사람은 스티븐 리이고 그는 존 그레이켄 회장과 쇼트 부회장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의문의 팩스, 주인은 누구?

장 위원장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을까.

우선 김앤장 비밀사무실과 관련, 실제로 한화빌딩의 전화번호 앞자리는 02-729로 통일돼있다.

그러나 한화빌딩을 비롯한 서울 중구 장교동 일대에는 02-729로 시작하는 전화와 팩스 번호가 많기 때문에 이 번호만을 놓고 김앤장 사무실을 팩스발송 주체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김앤장 비밀 사무실의 팩스번호 등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스티븐 리가 보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현재로선 딱 부러지게 입증할 근거가 없다. 장 위원장은 “은행에서 보내는 팩스번호는 전체가 다 나오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통상적인 경우’다.

장화식 위원장

양측간의 비밀협약서 왕래를 ‘통상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외환은행이 스티븐 리에게 보낸 팩스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외환은행이 금감원에 BIS 팩스를 보냈다는 검찰 발표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

그러나 팩스 발신처에 대한 검찰 발표 내용이 번복되는 바람에 이마저 신빙성에 금이 간 바 있다. 검찰이 밝힌 외환은행 BIS비율 팩스의 발신자는 외환은행 허 모 차장이다.

검찰은 수사 초반 허 모 차장이 근무한 외환은행 13층 태스크포스팀(TFT)의 팩스 번호가 ‘02-729’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13층 TFT 사무실 팩시밀리에서 다른 발신번호와 함께 ‘TFT’로고가 찍혀 나오자 말을 바꿔 허 모 차장이 TFT 합류 이전에 근무한 17층 재무기획실에서 팩스를 보냈으며 재무기획실 소속 팩스 775-2582번이 사용시 02-729로 발신번호가 찍힌다고 발표했었다.

BIS팩스 발신자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은 검찰이 발신자로 추정한 허 차장이 2005년 간암으로 사망했고 원본이 외환은행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민 외환은행 부행장이 200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팩스번호가 있다면 (외환은행이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정도”라고 말했을 정도다.

외환은행 측도 팩스 발신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BIS비율 팩스를 제 3의 인물이 보냈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장 위원장이 새로운 문건을 공개하면서 검찰 추정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해 주목되는 것이다.

■ 'BIS 팩스' 왜 문제인가

금융당국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이 외환은행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으며, 당시 외자유치가 시급한 정부로서는 이를 승인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해 7월 15일 서울의 모 호텔에서 재경부, 금감위, 청와대, 외환은행, 모건스탠리 고위간부들이 외환은행 인수에 관해 협의한 이른바 ‘비밀 대책회의’가 열린 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는 점에서 금융당국 관계자와 론스타, 외환은행 간 모종의 뒷거래가 줄곧 의심받아왔다.

비밀대책회의 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7월 18일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감독원에 외환은행 인수 허가 관련 문서를 새로 만들 것을 요구했고 금감원은 외환은행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 21 일 문제의 외환은행 BIS비율 팩스가 금감원에 발송되고 금감원은 이를 토대로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다.

은행법에 따르면 론스타와 같은 외국자본은 금융사나 금융지주회사가 아닌 경우 국내 은행을 인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부는 은행법 8조 2항(부실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할 때 예외 인정), 그리고 외환은행의 BIS 비율 전망을 비관적 시나리에 맞춰 낮게 잡아(6.16%)로 매각을 승인했다.

현재까지 언론에 밝혀진 비밀 대책회의 참석자는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 추경호 은행제도 과장, 금감위 김석동 감독정책 1국장, 유재훈 은행감독 과장, 청와대 추형환 행정관과 외환은행 이강원행장, 이달용 부행장, 모건스탠리 신재하 전무 등 10여명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