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벨기에·영국·중국 등 분리주의 고민하는 국가들 곤혹각국의 이해관계 엇갈려 국제사회서 국가승인 받기 힘들 듯기간시설 파괴·엄청난 실업률·극심한 경제난으로 험난한 가시밭길 예고

세르비아의 자치주인 코소보가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을 결사반대한 러시아와 세르비아, 독립만이 인종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며 독립을 지지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수년에 걸친 지루한 협상이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자 코소보 자치정부가 17일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상대편의 동의를 얻지 못한 ‘축복받지 못한 독립’을 해야 했던 불가피한 측면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일방적인 독립선언이 낳은 파장은 너무나 크다.

코소보 독립 선언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정당성 논란은 개별 국가의 국내 사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코소보’라는 21세기 두 번 째 신생국가(첫번 째는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가 탄생한다는 사실 자체 보다는 이것이 자국의 정치문제, 특히 분리주의 움직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어떤 득실로 작용할 것인가가 더 큰 관심사가 된 탓이다. 한편으로는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국제정치의 속내를 이번 코소보 사태를 통해 재삼 확인하게 된다.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선언 이후 서방이 당황하는 것은 서방세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영토로 두고 있던 국가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고, 러시아가 반대한데는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었다고 봤기 때문에 독립을 선언한 뒤에는 결국 코소보가 하나의 주권국가로 대세점을 장악할 수 있으리란 것이 서방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과 세르비아 간의 전쟁 이후 코소보의 치안과 사법을 책임지고 있던 EU 내부에서조차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자 코소보의 독립은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독립 선언 직후 러시아의 요구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무런 결론 없이 파행으로 끝난 것이 상징하듯 갓 태어난 ‘독립국가 코소보’가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 승인 받지 못하는 절름발이 신세가 될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인종갈등에 관한 한 유럽도 코소보가 속한 발칸반도 못지 않게 고민이 많다.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스페인이다.

40년 넘게 바스크족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유혈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라는 반정부 무장단체가 대표적이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와 피레네 산맥 남부를 근거지로 하고 있는 이 단체의 테러로 수십 년 동안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정부의 우려대로 ETA는 “코소보 독립 선언은 자결권 행사의 좋은 선례”라며 이를 정치공세의 구실로 삼으려는 태세이다. “코소보 독립은 국제법상 주권침해”라는 스페인 정부의 이례적인 강력한 성명이 ETA를 의식한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5월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ETA는 분리독립 찬반투표를 10월 실시하겠다고 공언해 사회당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네덜란드 언어권인 북부 플랑드르에서 독립의 목소리가 높은 벨기에,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2010년 독립 찬반투표를 추진하는 영국도 코소보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코소보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만 분리주의 여파는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대만을 비롯해 티베트, 신장위구르 자치주 등의 분리주의 움직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 정부는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선언을 심히 우려한다”는 외무부 성명을 냈다.

반면 대만은 “수많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코소보인들은 평화적 독립추구라는 이상을 관철시켰다”는 축하성명을 발표했다. 타밀 반군의 저항이 격렬한 스리랑카는 독립 선언을 비난했고, 동티모르 사태, 아체 반군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세르비아에 대한 영향력을 의식해 코소보 독립을 강력히 반대해온 러시아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구 소련에서 독립해 친 서방정책을 펴고 있는 그루지야의 친 러시아 자치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두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 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것은 득이지만, 자신들이 무력탄압하고 있는 러시아 내 체첸공화국 반군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는 숙제이다.

정통성을 확보해 국가로서의 승인을 받는 정치적 문제 못지 않게 코소보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경제이다. 99년 전쟁으로 그나마 있던 기간시설은 모조리 파괴되고 유엔의 지원에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형국이다. 하루에도 두어 차례씩 전력이 끊기고, 초일류급 호텔이 아니면 객실에서조차 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다.

코소보의 극심한 경제난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0만 인구 중 실업률은 무려 45%, 일할 의지가 있는 경제인구 두 사람 중 한 명이 실업상태다. 평균 월급여는 150유로(21만원), 인구의 37%가 하루 2달러 이하,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도 15%에 이른다. 대외무역의 20%를 세르비아에 의존하는 구조도 큰 문제이다.

세르비아 중앙정부는 일방적 독립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코소보에 대한 전력 공급 중단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취한다는 계획이어서 당분간 코소보의 경제난은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코소보 자치정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해외이주자의 송금과 유엔의 원조가 생명줄이나, 이나마 국제사회가 독립 선언을 놓고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쪽짜리 정치적 독립, 요원한 경제적 독립이 코소보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말해준다.

■ 코소보는 어떤 곳?

코소보는 인구 200만 명 중 알바니아계가 90%, 세르비아계와 기타 인종이 10%이다. 알바니아계가 절대다수이면서도 세르비아 중앙정부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아왔다. 세르비아의 전신인 신유고연방 시절 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89년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등 노골적으로 알바니아 민족성 말살정책을 펴자 이에 대항하는 알바니아인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1912년 1차 대전 발발 하루 전 세르비아에 편입된 코소보는 연방 내 다인종 국가를 건설하려는 요시프 티토 전 유고연방 대통령 집권 당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그러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한 밀로셰비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앙정부와 극심한 충돌을 빚었다.

98~99년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세르비아의 탄압이 극에 달하자 나토군이 99년 3월말 사태에 개입, 6월초까지 2개월여 동안 세르비아 정부와 전쟁까지 치렀다. 이 전쟁으로 1만3,0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실종됐다. 법적으로는 세르비아 정부의 자치주이지만, 전쟁 이후 유엔코소보행정기구(UNMIK)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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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