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오래 걸리고 복잡한 제도… 미국식 민주주의의 다양성 보여줘796명슈퍼 대의원의 향방 '힐러리-오바마 승패' 좌우할 듯

■ 미국 대통령후보 경선제 주요 용어
코커스- 편 갈라 토론·설득 후 최종 거수
프라이머리- 지지후보에 투표하는 행사
선서한 대의원- 전당대회의 간접투표자
슈퍼 대의원- 한표 권리 가진 민주당 지도층

미국 대선에 관한 글 한편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벌써 여섯 주가 훌쩍 지났다. 선거에 관한 기사라면 눈에 띄는 대로, TV, 신문, 잡지, 인터넷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 해왔건만 도통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처럼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무엇보다 선거관련 사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선거철이면 현수막 벽 광고 등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선거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로 밤낮없이 시끄러울 뿐 아니라, 후보얼굴 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 웬만한 TV 리얼리티쇼보다 흥미

한데 이곳 미국에선 사정이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한두 시간 운전해서, 가뭄에 콩 나듯이 있을 유세장을 일부러 맘먹고 찾아 나서지 않는 한, 후보얼굴은 고사하고 선거 분위기 비슷한 거라도 느껴보기가 쉽지 않다.

1월 들어서 선거 관련 집중 보도를 시작한 TV가 아니었다면 선거를 하는지조차 몰랐을 수 도 있었을 만큼 내가 사는 소도시 클레어몬트는 조~용 했다. 사진도 없이 글만 달랑 쓰면 뭘 하나 하는 지레 걱정에 “슈퍼화요일”(2월5일) 까지 손꼽아가며 기다려 겨우 사진 몇 장을 찍고서야 이 글을 쓰고 있다.

둘째 이유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정신없이 변화하는 대선 판도 때문이다. ‘슈퍼 화요일’ 바로 전 주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오바마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 같은 ‘초자’가 읽어 내기가 쉽지도 않았지만, 어찌 어찌 글을 쓴다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배달될 즈음엔 이미 ‘물 건너간’ 얘기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미국 선거에 이곳 매스컴 못지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국 매스컴에 겁먹었기(?) 때문이다. 미국 선거 관련 주요기사를 거의 빠지지 않고 다루고 있는 그 발 빠름에 내심 놀랐고 어설픈 글 썼다가는 망신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부 조금 더 한 후에 쓰겠다고 버터 온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기다려서 뭐 좀 많이 배웠냐고 물으시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게 바로 마지막 네 번째 아직까지 글 못쓴 이유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다 하던데, 그 과정 또한 현존하는 가장 ‘복잡한’ 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까지 무려 열 명도 넘게 붙들고 물어봤지만 미국 전역에 걸쳐 벌어지는 다양한 선거 방식을 똑 떨어지게 알고 있는 미국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들의 변명은 거의 비슷했다 “그건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이거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는 것 지금은 나도 공감한다. 주 (State) 마다 당 (Party) 마다 다르고, 게다가 해마다 변한다는 선거 방식을 무슨 수로 다 알겠는가?

자세히 알려다가는 머리 다칠 정도로 복잡한 미국 선거를 두 페이지 채 안 되는 페이퍼에 요약 정리할 수 있는 능력도 야심도 없지만, 룰을 알고 보는 경기가 더 재미있듯이, 웬만한 TV 리얼리티 쇼 보다 더 재밌다는 이번 미국대선 읽기에 도움이 될 만한 개념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코커스’ (Caucus, “이웃들의 모임들” 이란 뜻)와 ‘프라이머리(Primary)’ 라고, 미국 선거 관련 기사를 관심 있게 읽으신 분이라면 아마 한번은 들어 보셨을 것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말인데, 지금 한창 한미 양국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미국 후보지명전에 쓰이는 선거방식을 일컫는다.

먼저 프라이머리를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하는 투표를 생각하시면 거의 비슷하다. 즉 나만의 밀폐 공간에 들어가 지지후보 이름 옆에 기표하는 식 말이다.

프라이머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두 개만 예를 들면, 등록된 당원들만이 투표할 수 있는 닫힌(Closed) 프라이머리와, 당적에 상관없이 아무 당이나 하나 골라서 투표하는 열린 프라이머리(Open 또는 A Pick-a-party Primary)가 있다. 열린 프라이머리인 경우 남의 당에 가서 될성부르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하여, 자기 당 후보의 대선 당선확률을 높이려는 시도도 가끔 있다 한다.

코커스는 투표 자체보다는 토론과 설득에 더 비중을 두는 선거 방식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각 당 당원들이 지역 학교, 교회, 도서실 등에 모여, 지지 후보별로 편을 갈라 그룹 토의를 통한 반대편 또는 특정 지지후보가 없는 사람 설득을 시도한 후 최종 거수를 한다는데, 언뜻 민주적인 것 같은 이 토론 방식 두 번 생각하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동네 유지, 내가 다니는 회사 상사, 내 부모, 또는 내 남편이 지지하는 후보에 반대하여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아무리 소수 의사가 존중되는 미국이라지만 무시 못 할 부담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힐러리보다 코커스에 강하다고 들었다. 오바마의 젊은 지지자들과 힐러리의 상대적으로 나이 많고, 따라서 목소리도 더 클, 지지자들이 부딪치면, 오바마측이 불리해야 맞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소신과 희망에 가득 찬 제 이, 제 삼의 젊은 “오바마”들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먹혀 들어가고 있다고 봐도 될는지.

■ 비례제 채택하면 1위 독식 막아

민주당 예비후보 오바마, 민주당 예비후보 힐러리, 공화당 예비후보 존 맥케인

알아두면 유용한 다른 개념 하나는 ‘선서한 대의원’(Pledged Delegates) 이란 것이다. 후보 지명전에서 정작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통한 주민,당원 직접 투표가 아니라, 각 당별로 있을 전당대회 (National Convention)에서 대의원의 간접 투표를 통해서이다.

이 때 ‘선서한 대의원’은 자기 주 프라이머리 또는 코커스에서의 선거 결과를 반영하여 투표를 할 ‘의무’가 있는데, 법적인 제제가 따르는 것은 아니기에 멋대로 투표 안한다는 보장은 없고 (하지만 이 경우 다음 번 선거에서 대의원으로 다시 일하게 될 일은 거의 없을 듯!), 만일 1차 투표에서 승부가 않나 2차까지 갈 경우 선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한다.

참고로, 주민투표결과를 반영하는 방식은 당마다 주마다 다양한데, 예를 들어 “비례제”를 택한 경우엔 일등 후보가 대의원 표를 몽땅 갖는 것이 아니라 이 삼등 후보도 득표수에 따라 일등과 대의원(표)를 일정비율로 나눠 갖는다.

민주당은 일괄적으로 비례제를 따르고, 이등이라도 15%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하면 한명의 대의원도 가질 수 없는 룰이 있어, 싹수가 없는 주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전략을 택한 힐러리는 한명의 후보도 못 건진 주가 많이 생겨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한다.

큰 표 차로 이기고도 대의원 확보수에서는 별 차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 비례제의 묘미인지라 제갈공명 못지않은 참모진의 치밀한 전략은 필수인 듯 하다. 실질적으로 직ㆍ간선

일을 더 꼬이게 하는 것은, 민주당 슈퍼 대의원들(Super Delegates)의 존재. 빌 클린턴, 알 고어 같은 전 대통령 부통령, 테드 케네디 같은 상원의원 등 총 796명에 달하는 민주당 지도층 인사들로 이루어진 슈퍼 대의원들은 ‘자유로이’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는데, 오-힐러리 간의 막상막하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이들의 표가 후보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 지시를 어기고 일찍 선거를 치룬 두 주의 선거가 무효화되는 바람에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절대수(2,025명)가 부족하게 될지도 모를 지금 민주당 상황에선 이들 슈퍼대의원표가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하게 됐다.

공평성에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슈퍼 대의원 제도, 당의 이념과 관심에 동떨어진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어, 막상 대선 가서 죽을 쑤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안전 대책이라는데, 당장은 ‘검증된’ 후보 힐러리가 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만일 민심이 오바마에게 있다면,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 슈퍼 대의원들이 이를 외면하고 끝까지 힐러리를 지지할는지는 두고 볼일이다. 이번 미국 경선 여러모로 참된 민주주의의 실험대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