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혁명' 중국식 개혁모델로 박차대권 이어받은 동생 라울은 중국통… 시장경제 도입 점진적 추진할 듯경제난 타개 시급하지만 당장은 권력 안정화에 초점피델의 적통 잇는 남미 지도자로 차베스·룰라 떠올라

‘혁명의 풍운아’ 피델 카스트로(81)가 마침내 49년간 지켜왔던 권좌에서 물러났다. 쿠바 혁명 1세대인 그가 조국 쿠바는 물론, 남미 사회주의에 남긴 족적의 의미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반세기에 가까운 집권기간은 미소대결로 상징되는 냉전, 공산권 붕괴, 미국 일극주의와 신자유화 물결 등을 직접 체험한 격동의 시간이었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그의 평가가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에서 공식 사임한 2008년 2월 쿠바의 현실을 보면 카스트로의 혁명은 ‘미완’, 보다 에둘러 표현하더라도 ‘진행 중’ 이상의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피델 카스트로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관심은 그의 친동생으로 형의 뒤를 이어 의장직을 이어받은 라울 카스트로(76)가 지휘하는 쿠바의 앞날이다.

피델에서 라울로 이어진 수평적 권력교체는 일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국방장관으로서 50여년간 당과 군을 관리해온 라울은 이미 10여년전인 1997년 5차 공산당 대회에서 피델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고, 피델이 장파열로 쓰러진 2006년부터는 의장직 대행을 맡아 사실상 쿠바를 통치해 왔다. 따라서 이달 24일 라울의 평의회 의장 피선은 라울의 시대를 공식화했다는 것일 뿐 새로운 쿠바의 출발점이라고 할 실질적 의미를 찾기 힘들다.

쿠바와 50년간 대척점에 서왔던 미국 정부가 “독재자에서 독재자로 권력이 이동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데서 서방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라울은 혁명 초기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던 형보다 먼저 사회주의에 투신했을 만큼 이념면에서는 더 강경했던 혁명 1세대이다. 피델을 남미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에 소개해준 것도 그였다.

피델이 열정과 카리스마로 쿠바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라울은 형의 혁명동지이자 오른팔로서 정책을 조율하고 집행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해 왔다. 라울의 쿠바가 크게 달라지지도, 크게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점에서다.

라울은 피델을 ‘혁명의 총지휘관’으로 모시는 조건으로 의장직을 수락하면서 “피델이 여기 없더라도 그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며 혁명이념 계승을 강조했다. 의사당에서 자신의 자리 옆에 있는 피델의 빈 자리를 가리키며 상념에 잠기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라울 의장에게는 경제난 타개를 위한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당장은 ‘권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순조로운 권력이양과 오랜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을 다지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카스트로 형제의 최측근으로 공산당 이념을 관장해온 같은 혁명 1세대인 호세 마차도 벤투라(77)를 수석부의장으로 앉힌 것은 권력 안정을 노린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라울 의장은 국방장관 시절 피폐해진 쿠바경제의 어려움을 시인하며 여러 차례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날 의장 수락 연설에서도 “우리가 한 모든 일이 완벽하다고 믿어서는 안된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따라서 라울의 쿠바는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정치적 체제는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일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개혁 개방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중국식 개혁 모델이다.

중국식 개혁 모델에 대한 라울 의장의 애착은 뿌리가 깊다.

중국에 대해서도 호감이 많다. 라울 의장은 95년 피델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중국을 모델로 점진적인 경제자유화를 추진해왔다. 외국 관광객에 문호를 개방하고 잉여농산물 판매 등 실용주의 정책을 도입한 것도 이 무렵의 라울이었다.

쿠바 주재 중국대사를 지낸 쉬이총 徐貽聰) 베이징(北京)시 외사고문은 최근 “라울의 용모가 아시아인을 닮아 가족들이 그에게 중국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며 라울이 중국 요리를 좋아하고, 중국을 대표하는 마오타이(茅台) 한 병을 즉석에서 거뜬히 비울 정도라고 라울 의장의 ‘중국 사랑’을 회고했다.

73세 생일을 맞아 중국대사관이 베푼 만찬에서는 중국의 혁명가곡 ‘둥팡훙(東方紅)’을 열창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혁명가 시절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저작과 유격대 전술을 탐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쉬 고문은 라울 의장이 정부 안에 ‘중국부’라는 연구기관까지 설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퇴장은 남미 좌파 권력 구도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관심은 누가 피델의 적통을 잇는 남미 지도자로 부상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남미 좌파정부는 ‘카스트로의 아들’임을 자처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비롯,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등 미국과 외국자본에 적대적인 강경파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등 실용적 중도좌파로 양분돼 있다. 이중 ‘포스트 카스트로’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차베스 대통령이다.

병석에 누운 피델을 수차례 직접 찾아 간호하면서 자신이 피델의 ‘정치적 적자’임을 선전해온 차베스는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중남미에 원조외교를 펼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차베스의 궁극적인 야심은 지역협력체인 ‘미주(美州)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매개로 남미를 미국을 위시한 서방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의 원대한 야심은 지난해 12월 종신집권을 규정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일단 난관에 부닥쳤지만, 그가 피델의 뒤를 이어 ‘반미해방’이라는 정치적 도그마에 가장 근접해 있는 지도자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남미 패권을 추구하며, 실용주의 좌파의 대표주자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행보도 주목된다. 차베스의 급진적, 선정적 이념정치를 경계해온 룰라 대통령은 차베스가 반미를 내세워 남미를 정치적으로 편가르기하려는 데 거부감을 보여왔다.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베네수엘라의 친구들’을 본따 라울의 쿠바를 지원하기 위한 ‘쿠바의 친구들’이라는 국제그룹을 구상하고 있는 것도 차베스의 정치적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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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