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그루지야의 나토가입 놓고 미국과 힘겨루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이 2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사흘 일정으로 열렸다. 연례 행사인 나토 정상회담이 올해 특히 주목받은 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두 임기 중 참석하는 마지막 회담이라는 점이다.

각각 내년 1월과 올해 5월 퇴임하는 두 정상은 이 회담 직후인 6일 러시아 흑해 휴양지인 소치에서 다시 양국 정상회담을 갖는데, 이 두번의 회담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뭔가’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많다.

언론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문제는 미국이 동유럽에 배치를 추진중인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놓고 양국 간에 형성된 대결 국면이 해소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막판 외교적 성과를 끌어내고 싶은 지도자들의 욕심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때마침 이번 소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MD 문제에 관해 합의에 이끌어 낼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내용은 미국이 폴란드에 요격용 미사일 10기를 배치하고 체코에는 추적 레이더를 설치하되, 이란이 유럽과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실험 발사했을 경우에만 동유럽 배치 MD를 실제 가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앞 마당까지…"러시아가 화났다 MD 시스템이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이란으로부터의 ‘확실한 위협’을 MD 체제 가동과 연계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 전망이 실현된다면 미국과 러시아를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난제가 해결됐다는 의미 외에 MD로 인해 파생된 양국 간의 다양한 국제 현안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코소보 독립, 이란 핵문제, 러시아의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 유보 등은 자체의 폭발성 못지 않게 MD 문제 때문에 생긴 양국의 앙금이 덧씌워져 갈등이 더욱 증폭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이번 나토 정상회담에 핑크빛 전망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회원국 간 이견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회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를 나토에 가입시키기 위한 협상을 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구 소련권의 다른 옛 공산국가들은 몰라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두 나라 만큼은 절대 나토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 러시아 정부의 물러설 수 없는 요구이고, 여기에 나토의 유럽 핵심 회원국인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이 동조하고 있다.

화급하지도 않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 문제로 다른 중요한 현안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시각에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생각이 다르다. 2004년 ‘오렌지 혁명’과 ‘장미혁명’이라는 색깔혁명을 통해 친 러시아 정권을 몰아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를 다시 나토에 가입시킴으로써 ‘자유주의 확산’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다.

러시아 뿐 아니라 유럽 주요국들까지 반대하고 나서 부시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두 나라의 가입협상 개시 문제를 강력히 관철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가입문제는 ‘가정’이 아닌 ‘시기’의 문제라는 점에서 미국 러시아 양국의 정권이 바뀐 다음에 열리는 내년 정상회담에서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2차대전 승전 60주년을 기념하는 러시아군의 퍼레이드.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한사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려는 것일까. 과거 공산권이 나토에 가입했을 때 보였던 러시아의 태도와는 너무나 판이해 의아스러울 정도다.

구 소련권 국가가 나토에 처음 가입한 것은 1999년이었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 3개국이 한때 적이었던 서방 군사동맹체 나토 가입의 테이프를 끊었다.

2004년에는 발트해 3국을 비롯,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7개국이 추가로 나토 회원국으로 변신했다. 두차례에 걸쳐 과거 제 식구를 서방에 넘겨주면서도 러시아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방관과 무시에 가까웠다. 간혹 나토의 동진(東進)을 경고하긴 했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러시아가 180도 입장을 바꿔 날을 세우고 나선 것은 양국과 러시아 간에 얽혀있는 특수한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러시아의 ‘군수공장’이다. 러시아가 조달하는 군장비의 3분의 1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에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기지 철수문제가 한때 외교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협정을 통해 매년 임대료 9,800만 달러에 2017년까지 주둔이 보장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러시아에 미치는 정치 안보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와 다른 구 공산권 국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때문에 일부 서방국가들 조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노골적으로 두 나라의 가입협상을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는 아예 이들 두 나라 정상들과의 회담마저 거부했다.

그루지야에서는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두 친러시아 자치공화국이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암암리에 분리주의 세력을 부추기는 이 지역에 나토군이 진주한다는 것은 러시아로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나토 입장에서도 분리주의 세력과 충돌할 경우 자칫 러시아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뒷감당이 쉽지 않다.

내년이면 창설 60주년을 맞는 나토가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는 지적은 같은 맥락이다. 군사동맹체인 나토가 일부 핵심 회원국, 특히 미국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하는 정치결사체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동유럽의 무조건적인 확대가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나토 회원국 간 분열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노출됐다.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나토군의 추가 파병을 놓고 대부분의 유럽 회원국들이 미국과 이견을 보인 것은 단적인 사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추가 파병의 뜻을 밝혀 봉합은 됐지만, 이 문제에 관한 대서양 양안 간 근본적인 시각차는 여전하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