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서 이겼지만 경선 승리 첩첩산중'마지막 희망' 슈퍼 대의원도 불리한 형국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일단 급한 불을 껐다.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퇴출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힐러리 의원은 22일 실시된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에서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따돌리고 남은 경선에서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경선 승리가 산술적으로 불가능한데다 공화당과의 본선을 생각하면 이쯤해서 대승적으로 사퇴해야 한다는 당내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맞은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는 힐러리 의원에게는 사실상 ‘무덤’이나 ‘생존’이냐를 결정짓는 최대 고비였다.

힐러리 의원도 남은 경선 중 가장 많은 대의원(158명)이 걸려 있는 이곳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여러 차례 시사해왔다.

하지만 힐러리 의원이 승리했다고 해서 짙게 드리워진 시커먼 구름이 걷힌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경선을 계속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는 것일 뿐 대세는 여전히 오바마 의원 편이다. 힐러리 의원이 남은 경선에서 의미있는 도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에서 14% 이상의 낙승을 거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일치된 전망이었다.

펜실베이니아는 유권자층이 오하이오처럼 힐러리 의원에 유리한 구조여서 힐러리 의원의 승리는 예상됐었다. 대반전을 이루려면 여기서 큰 격차로 승리를 따내야만 앞으로의 경선구도에도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때 20% 이상 앞섰던 압도적인 지지를 절반 이상 잠식당하고 10% 차이로 승리했다는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오바마 의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오바마 의원이 경선 전날 “힐러리 의원의 승리를 예상한다”면서도 “격차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고 한 발언은 자신이 지더라도 10% 포인트 안으로 차이를 줄인다면 남은 경선에서 오바마 대세론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제 남은 경선은 9곳으로 좁혀졌다. 다음달 3일 미국령 괌(9명)을 시작으로 6일 노스 캐롤라이나(134명)와 인디애나(83명), 13일 웨스트 버지니아(39명), 20일 켄터키(60명)와 오리건(65명), 6월 3일 몬태나(24명)와 사우스 다코타(23명), 7일 푸에르토리코(56명) 등이다.

8월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받기 위해 필요한 대의원수는 2,025명. 힐러리 의원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함으로써 지금까지 확보한 대의원은 1,556명으로 오바마 의원의 1,694명보다 138명 적다. 매직넘버 2,025명에는 469명이 모자란다.

남은 9개 경선에서 선출하는 대의원(493명)을 거의 싹쓸이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승자독식의 공화당 경선과 달리 득표수에 비례해 대의원을 나눠 갖는 규정상 남은 경선에서 모두 승리한다 해도 매직넘버 숫자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노스 캐롤라이나와 오리건, 사우스 다코타 등 대의원이 많은 주에서 오바마 의원의 낙승이 예상돼 오바마 의원과의 대의원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힐러리 의원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은 모두 796명인 슈퍼대의원이다. 경선 투표로 선출되는 선언대의원과 달리 당연직인 슈퍼대의원은 전ㆍ현직 민주당 대통령, 주지사, 상ㆍ하원의원, 당 간부 등 당 중진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슈퍼대의원들의 동향도 힐러리 의원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월 5일 ‘슈퍼화요일’ 당시 슈퍼대의원의 지지분포는 힐러리 의원 204명, 오바마 의원 99명으로 힐러리 의원이 압도적이었으나 두 달이 지난 6일 현재 힐러리 221명, 오바마 209명으로 비슷해졌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지지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360여명의 슈퍼대의원이 힐러리 의원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인데, 경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슈퍼대의원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어 슈퍼대의원에서도 오바마 의원이 힐러리 의원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힐러리 캠프에서는 선거자금 부족으로 연일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20일 발표된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오바마 의원은 지난달 4,100만달러를 모금해 은행 잔고가 5,100만달러에 달한 반면, 힐러리는 오바마의 절반도 안되는 2,000만달러에 그쳤고, 은행 잔고도 900만달러에 불과했다. 더욱이 힐러리 의원이 그 동안 진 선거빚이 1,030만달러여서 실제 재정상태는 100만달러 이상 적자이다.

여기에 추가로 여론조사기관이나 광고회사, 선거참모 등에게 갚지 못한 빚 독촉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오바마가 11월 대선 본선 자금을 제외하더라도 4,000만달러 이상의 경선 실탄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답답한 것은 앞으로도 이 같은 자금의 절대 열세 구도가 변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힐러리의 돈줄은 주로 큰손 기부자들에게서 나오는데, 선거법상 이들은 기부한도 때문에 힐러리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오바마 의원은 인터넷 등을 통해 200달러 이하의 소액 기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제 힐러리가 지금까지 모금한 선거자금 1억 8,900만달러 중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자는 23%에 불과한 반면, 오바마로 향한 소액 기부는 전체 2억 3,500만달러의 40%에 달한다.

힐러리 의원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오바마 의원에 연패해 퇴출 일보직전에 몰릴 때마다 대형주(州)나 스윙주(공화, 민주 어느 당도 우세하지 않는 중립적인 주)에서 승리해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

이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치러지는 대선 본선에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 오하이오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등 힐러리 의원이 승리한 주들은 하나 같이 본선 판도를 좌우할 있는 메가톤급 위치를 점하는 곳들로, 힐러리 의원이 주장하는 본선 경쟁력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남은 경선 중 가장 덩치가 큰 노스 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오바마 의원은 펜실베이니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에 힐러리 의원보다 2배 이상 물적ㆍ인적 자원을 투입했음에도 기대만큼 지지율 격차를 줄이지 못한 점, 경선을 끝낼 여러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2%’ 뒷심 부족을 드러낸 것은 앞으로의 경선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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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