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태 등서 보여준 중국 젊은이들의 비이성적 애국주의뉴욕타임스, 서방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피해의식 분석

티베트 사태, 성황봉송 반대시위 등으로 촉발된 중국의 ‘민족주의’ 열풍이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국제사회의 또 다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서방의 잇단 ‘중국 때리기’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일어난 듯 싶던 중국인들의 반 서방 시위는 27일 서울에서 열린 성화봉송의 중국 유학생 폭력 시위를 계기로 배타적, 국수적 중화주의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 19일 런던 파리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등 서방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반 서방 시위는 서울 봉송 폭력사태를 겪으면서 성숙하지 않은 민족주의의 분출이 어떤 혼란을 야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막강한 구매력과 거대시장을 무기로 티베트 망명정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계 까르푸에 대해 불매운동을 전개할 때까지는 애국심 차원에서 이해할만 했다. 서방도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비판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일부의 비판에다 불매운동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지 모른다는 현실적 위기감을 고려해 중국인들의 정서를 달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까르푸는 중국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연상되는 색깔과 디자인으로 직원 유니폼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휘몰아치기 시작한 중국인들의 빗나간 애국주의 물결은 제동력을 이미 상실한 뒤였다. 중국의 여자 장애인 펜싱선수 진징(金晶)은 이달 초 프랑스 파리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봉송 반대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뒤 ‘불편을 몸을 이끌고 시위대의 공격에 맞선 영웅적 행동’을 칭송받아 일약 국민적 우상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그는 까르푸 불매운동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듀크대학에 유학중인 왕첸위안(王千源 20 여)은 교내에서 일어나 친중, 반중 시위의 중재자로 나섰다가 중국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중국에 돌아가지도 못할 처지에 빠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배신자를 찾는다는 ‘인육검색(人肉搜索)’을 가동해 이 여대생의 신원을 폭로하고 인민재판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의 신상까지 공개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사이버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미국 CNN 방송의 진행자 잭 캐퍼티의 동영상이 올려진 중국 포털은 악성 국수주의적 댓글로 넘쳐났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서구가 중국에는 민주와 인권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중국의 분열을 획책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주장과 함께 “니들이나 잘해, 미국놈들아”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쇄도했다. 베이징에 있는 리공(理工)대학, 상하이(上海)의 푸단(復旦)대학 등 전국 모든 대학의 기숙사에는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는 티베트 승려와 중국 유학생들 간의 질의 응답 중 일부 학생들이 “거짓말을 걷어 치우라”고 소리치며 물병 등을 집어 던지다 강의실에서 쫓겨났고, 듀크대학에서는 중국 유학생들이 티베트 유학생들의 철야기도 행사를 강제로 무산시키기도 했다. 사례가 부지기수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민족주의 열풍은 오싹한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중국인들이 이처럼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누구일까. 민족주의 바람을 주도하는 이들은 개혁 개방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태어난 ‘80후(後)’ 세대들이 대부분이다. 문화대혁명 등으로 고생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고성장 환경속에서 자란 80후 세대는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20대 초반 연령층이 밀집한 해외 중국 유학생들의 애국주의 열기가 중국 내에서 보다 더 뜨거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유학생들이 비이성적인 분노에 빠지게 된 이면에는 일차적으로 서방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과 패배감, 피해의식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을 향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젊은층이 중국 내 체제에 대해서는 순응적이라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티베트 사태에 대한 당국의 정책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 일간 보스턴 글로브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보였던 중국 청년들의 건전한 비판정신은 온데 간데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언론과 지식층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쑨원광(孫文廣) 산둥대 교수 등 중구 학자 9명은 중국인의 이성 잃은 애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이 같은 배타적 민족감정은 국력이 신장되면서 자긍심은 늘어난 반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유주의적 교육은 받지 못한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홍콩의 시사평론가 딩왕(精望)은 중국의 젊은 층이 전체주의적인 중국과 자유로운 서방 사이의 공간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했다.

중국의 민족주의 열기는 문화를 앞세운 ‘소프트 파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역사공정’과 같은 이른바 ‘문화공정’이다. 특히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천하’를 내세우거나, ‘중국 제국’을 찬양하는 콘텐츠가 급증하는 추세다.

대국 이미지를 내세운 역사물은 영화에서 두드러진다. ‘명장’ ‘집결호’ ‘삼국지, 용의 부활’ ‘연의 왕후’ 등 대하역사 드라마가 줄을 이었다. 이 영화들은 내용이 천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우국충정 일색이다. 과거 ‘동방불패’나 ‘소오강호’ 등의 주인공들이 대의를 중시하긴 하나 권력을 멀리하고 질서와 인륜, 도덕을 우선하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국가를 부정하던 도교적 인물 위주에서 국가 권력을 옹호하는 유교적 캐릭터로 인물 설정이 바뀐 것이다.

역사물이 범람하는 출판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중국 당국이 중국 문화를 중화민족의 원동력이라고 선포한 이후 ‘삼국지’와 ‘공자’가 출판 소재의 중심부를 장악했다.

문화 예술인에 대한 평가에서도 ‘애국’ ‘민족’ 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황제의 출현을 옹호한 영화 ‘영웅’을 만든 장이머우 감독이나 천카이거 감독은 정부의 후원을 받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반면, 영화 ‘색, 계’의 여주인공 탕웨이는 영화가 중국 공산당의 적이었던 국민당을 우호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중국 내 활동을 금지당했다.

전문가들은 ‘위대한 중국’을 내세운 문화상품이 쏟아지는 것은 중국 정부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발 민족주의는 올림픽이 계기가 됐을 뿐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보기 힘들다. 올림픽 이후 중국이 대국으로 자리매김할 때 젊은 80후 세대들이 어떤 모습을 띨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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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