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압력·청탁 벼랑으로… 철도공단 주무른 '검은 손' 주인은?"김 전 이사장은 정치적 살해당했다" 주장에 검찰 패닉김 전 이사장 업체 사람들과 밥 한 끼 같이 먹은 적 없는 인물측근들 "그가 뇌물 로비 받았을리없다" 증언 미스터리한 죽음

대전 동구 중앙로에 위치한 한국철도시설공단 본사 전경. 주간한국 자료사진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고(故) 김광재(58)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검찰의 철피아 수사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울러 김 전 이사장이 죽음에 이르게 된 내막을 두고 여러 말이 무성하다. 일부에서는 김 전 이사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희생양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시에 공단 안팎에서 김 전 이사장의 죽음을 놓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단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 전 이사장만큼은 철피아 비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서에는 김 전 이사장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하게 철피아 비리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드러나 철피아 몸통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억울한 죽음=정치적 살인

지난 4일 자살한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작년 국정감사에 참석해 시설공단의 비리를 지적하는 의원들의 질문에 난감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이날 새벽 3시 30분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잠실대교 전망대에서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전망대에는 김 전 이사장의 것으로 보이는 양복 상의와 구두, 휴대전화, 지갑 등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2시간여만인 오전 5시 45분쯤 김광재 전 이사장의 시신을 발견해 인양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독일에서 레일체결장치를 수입해 납품하는 AVT가 호남고속철도 궤도공사에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김광재 전 이사장을 비롯한 공단 임원들이 특혜를 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뿐만 아니라 정·관계에서는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출신으로 2011년 8월 취임한 뒤 올 1월 사임한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최후의 순간에 남긴 유서를 통해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정계 진출 유혹에 끌린)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한맺힌 심경을 토로했다.

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김 전 이사장이 정치권의 개입 및 청탁·압력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면서 검찰의 철피아 수사가 정·관계로 확대될 조짐이다.

평소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잘 아는 공단 및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김 전 이사장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김 전 이사장은 역대 공단 이사장 가운데 가장 소임을 잘 이행한 인물로 평가돼 "억울한 정치적 살인을 당했다"는 일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러 명의 공단 이사장을 겪었는데, 김 전 이사장만큼 원칙적으로 일하는 인물은 없었다"면서 "그 분은 식사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지어 구내식당에서조차 업체 관계자들과는 밥도 같이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비춰보면 김 전 이사장은 생전에 도덕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도 도덕성에 대한 자책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주변인들은 보고 있다.

전직 공단 고위간부 출신인 A씨는 김 전 이사장에 대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충격적이었다"며 "김 전 이사장은 공단 내 형성된 파벌을 없애기 위해 힘썼고 업무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된다. 비록 비리 의혹으로 수사대상이 되긴 했으나 일을 잘 한 인물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A씨는 "김 전 이사장은 지난 1월 임기를 7개월 남겨두고 노조와 갈등을 빚어오다 사임한 바 있는데, 이 마찰 역시 철도고교 출신과 비철도고교 출신 사이에 형성된 파벌을 없애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철피아 비리 정치권 복마전

공단의 전·현직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해 보면 김 전 이사장은 전직 관료 출신 '철피아' 인사들이 개입된 철도업계 납품을 둘러싼 복마전을 뿌리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연간 수조원대에 이르는 철도공사 발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AVT사가 2013년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등 2000억원대 독점 납품계약을 따냈는데, 이 때 김 전 이사장이 정치권의 압력 또는 거절할 수 없는 청탁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 전 이사장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알고 있는 여권에서 공천을 내세워 다각도로 청탁을 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결국 정치권의 압력과 청탁을 물리치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가 검은 커넥션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던 것을 두고 "김 전 이사장의 전임 이사장이던 조현룡(69)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예산결산특위, 기획재정위원인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은 김 전 이사장에게 여권 인사들과 연결고리 역할을 메신저가 바로 김 전 이사장의 영남대 후배 권영모(55·구속)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의 영남대 동기로 공단 궤도처장을 지낸 A씨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이 점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는 로비의 출발점인 AVT사 이모(55)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권 전 부대변인이 여당 실세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 다수를 AVT사 이 대표와 김 전 이사장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권 전 부대변인이 소개한 여권 인사들이 금품 로비를 받았는지를 캐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권 전 부대변인은 현재 학교 선배인 이 정치권 인사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