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인사들 '비자금 창구' 역할… 지방선거 출마자 중 다수 내사 착수

각종 선거 앞두고 출판기념회 연 정치권 인사들 표적
일부 기업, 여권 A의원 등에 정치 비자금 스폰서 소문
입법 로비 창구로 활용…정ㆍ관ㆍ재계 전방위 수사 확대

선거 때마다 하나의 관례처럼 여겨지던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결국 수술대 위에 올랐다.

검찰은 최근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흐르는 정치권의 검은 자금을 추적하고 있는 검찰은 수십 명의 전ㆍ현직 정치인들을 사정범위에 놓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사실상 정치권의 비자금 창구역할을 해온 사실이 검찰 수사로 부각되자 여야 정치권은 뒤늦게 출판기념회 관련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또 출판기념회는 정치인의 음성적 정치자금 모금뿐만 아니라 문제가 되고 있는 입법로비 창구로도 활용된 정황이 일부 드러나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비자금과 입법로비 수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짐과 동시에 정ㆍ관ㆍ재계 등 전방위로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탄 국회 이어 철밥통 국회

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모습. 연합뉴스
국회가 정상화되면 여야는 검찰의 움직임과 관련, 대책을 본격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과거에도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가 정작 실천에는 옮기지 않았던 점에 비춰볼 때 이번에는 개선안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2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폐지 논란을 언급하며 "출판기념회는 분명히 정치자금법 위반이고 탈세이다. 이것이 법의 사각지대"라며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은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관위에서 이런 사각지대 출판기념회 문화를 없애고자 빨리 법 조치를 해주길 부탁드리고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개선책을 내놓도록 당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 대표는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책값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는 것은 법의 사각지대라 생각한다"며 "당 혁신 차원에서 출판기념회에 대한 정치자금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출판기념회 금지안'의 법제화가 현실화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최근 검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악용되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판기념회를 통한 출판 축하금 문제와 개인 대여금고의 자금 등에 대해 해명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이미 지난 2월 당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방안의 하나로 출판기념회 제도 개선을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구 민주당은 당시 당 정치혁신실행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종걸 의원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윤리실천 특별법안'을 발의, 출판기념회에서 도서를 정가로 판매하고 수입ㆍ지출을 중앙선관위에 신고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 소속 의원들 상당수는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혁신을 하겠다던 지도부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하는 상황을 반복해 빈축을 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후원금과 달리 선관위에 신고하거나 공개할 의무가 없어 로비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과 관련, 회계 신고 등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법 개정의견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검찰수사로 출판기념회 문제가 도마에 오른 만큼 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출판기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9월 중순까지 관련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며, 출판기념회 허용 범위와 축하금 한도, 회계절차 투명화 방안 등을 담는다는 계획이다.

검찰, 정치권 정조준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건네지는 축하금을 정조준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인들의 각종 출판기념회에서 청탁성 비자금이 오간 정황을 잡고 이 부분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출판기념회가 음성적인 정치 후원금의 통로로 활용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 수많은 첩보를 수집하면서도 수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검찰의 입법로비 수사가 출판기념회로 확대되면서 정치권은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정가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출판기념회는 선관위와 사정기관의 꾸준한 주시대상이었다. 때문에 검찰에 축적된 불법행위에 대한 정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를 통해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3,880만원을 받은 새정치연합 신학용(62) 의원이 첫 타깃으로 떠올랐다. 검찰 주변에서는 신 의원뿐 아니라 상당수의 국회의원이 비슷한 청탁로비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가 정치권을 비롯해 전방위로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신 의원 외에 추가 인물에 대한 수사도 검토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출판기념회와 관련된 여러 불법 정치자금 첩보를 입수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연간 1억 5,000만원(전국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출판 축하금은 신고 대상 정치자금에 속하지 않는다.

일단 검찰은 입법로비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 14명을 추가로 수사 대상에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검찰이 출판기념회로 여야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나서면서 그 불씨가 어디로 튈지 정ㆍ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이 '정치인 출판기념회 책값'의 로비 대가 여부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수사를 하면서 특정 정치인들과 이들을 테이블 밑으로 후원한 기업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송광호(72) 새누리당 의원이 그 중 한명이다. 철도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김후곤 부장검사)는 송 의원이 철도부품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는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같은 당 의원 12명과 전직 의원 1명의 입법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 의원 등은 치과의사협회 측으로부터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켜준 대가로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후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한 명의 의사가 한 개의 병원만 운영하도록 해 일부 대형 병원의 프랜차이즈 식 운영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치과협회에 유리한 법안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전ㆍ현직 국회의원은 새로 추가된 14명과 교육 분야 비리 관련 신계륜ㆍ김재윤ㆍ신학용 새정치연합 의원과 전현의 전 의원, 해운 분야 비리 관련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등 모두 20명 선이다.

이에 따라 출판기념회 책값의 뇌물 여부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면 출판기념회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파다하다.

지방선거 출마자 '비리' 타깃

검찰은 6ㆍ4 지방선거 당선자 69명에 대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들을 포함해 지방선거 당선자 중 일부가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정치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오세인 검사장)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당선인 72명을 입건, 이 중 기초단체장 2명과 교육감 1명을 이미 기소했다.

기소된 한동수 청송군수 당선인은 선물세트 등을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김성 장흥군수 당선인도 선거 기간 전 출판기념회에서 공약을 발표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병우 충북교육감 당선인은 선거기간 유권자 사무실 등을 호별로 방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나머지 당선인 69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상자는 광역단체장 9명, 기초단체장 59명, 교육감 1명이다.

대검은 전국 검찰청에 지방선거 공소시효 만료일인 12월 4일까지 특별 근무체제를 유지하면서 선거 범죄에 대해 소속 정당과 신분, 지위, 당선 여부를 불문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전개할 방침이다. 따라서 선거 관련 출판기념회에 대한 검찰수사가 9월 10월 정치권을 본격적으로 흔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6ㆍ4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과 기초 단체장 후보들 중 적잖은 이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후원자들과 '검은 거래'를 하였고 검찰이 이러한 내용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가령 인천 지역 모 현역 단체장의 경우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액을 지원받았고, 인천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모 인사는 대규모 출판기념회를 열고 당선을 확신하면서 기업과 개인들로부터 상당한 스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모 단체장 출마자가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땐 3곳의 기업에서 인력을 대거 동원해 책 구입비 명목으로 큰 돈을 전달했다는 전언이다.

대구의 모 단체장 출판기념회 때는 포항의 한 호텔과 마산의 대형 유통업체까지 나서 상당한 스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의 모 단체장 후보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지역 토호로부터 8억원을, 지역 사업가들로부터 3억원을 챙긴 것으로 소문이 파다하다.

경북의 또 다른 단체장 선거 때는 유력 후보 2명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기업 스폰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2012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192명이 2011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279회의 출판기념회를 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국회의원 3명 중 2명이 한 차례 이상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한 달에 6.5회꼴로 사실상의 정치자금 모금행사가 열린 셈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최근 19대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개최 현황을 전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당별로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05명으로 가장 많았고 ▦새누리당 79명 ▦통합진보당 5명 ▦정의당 3명 순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국회와 지역구 등에서 중복해 출판기념회를 연 의원은 13명이었다. 상임위원회별로는 소관 기관이 많은 이른바 '알짜'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많이 개최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이 25명, 기획재정위원회 21명, 정무위원회 20명 순이었다. 업무 연관성을 이용한 사실상의 정치자금 수금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