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불쑥, 사전 논의한 인물은… 청와대 강력 경고…사정설도

김무성 대표가 10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 참석, 자신의 개헌관련 발언에 대해 "불찰이었다"며 "대통령께서 이탈리아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 회의에 참석하고 계시는데 예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발언하고 있다.
김무성 개헌론 발언 하루 만에 대통령에 "죄송하다"
정치권서 "개헌발언 정치적 꼼수 아니냐" 의심도
여권 관계자 "김 대표 발언 전 비박계 인사와 상의"
상의 당사자 청와대 경고에 김 대표에 사과 종용 소문
청와대 주변서 개헌론 연관 비박계 인사들 사정설

국회에서 개헌논의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 곳곳에서 개헌을 둘러싼 의견이 갈리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개헌논의를 꺼내들며 불씨를 댕긴 주인공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친박계 사이에서는 김 대표의 개헌 필요성 발언을 청와대를 겨냥한 반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김 대표가 하루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대통령에 "죄송하다"며 사과까지 하고 나서자 "개헌발언은 정치적 꼼수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의 이 같은 두 갈래 행보를 두고 여러 분석이 무성하다. 특히 김 대표가 작심하고 개헌론을 공론화한 것과 더불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배경과 관련, 청와대 주변에서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김무성 개헌론 작심발언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9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귀빈식당에서 여야 지도부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중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봇물 터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여당 대표가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것은 사실상 대통령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앞서 같은 달 6일 박 대통령은 여당 일각에서 개헌논의 요구가 나오는 것을 두고 언급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개헌론에 대해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런 상황에 김 대표는 방중 마지막 날인 지난 10월 1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헌과 관련해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이 터질 텐데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 대선에 가까이 가면 (개헌은) 안 되는 것"이라며 개헌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김 대표는 재차 강조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대되면서 당혹스러워 한 쪽은 김 대표였다. 논란이 커지자 김 대표 측은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한 것인데 크게 보도돼 당황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범친박(친박근혜)계를 비롯해 비주류 진영이 개헌 논의에 반발하는 등 여권 내 파열음은 이미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아무 할 말이 없다"며 개헌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야당이 김 대표의 발언을 환영하고 나서면서 여야가 청와대를 압박하는 듯한 미묘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1987년 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고 과반수의 여야 의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만큼 개헌은 바로 결단해야 할,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급기야 청와대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개헌논의 요구라는 여야의 협공을 받는 상황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청와대는 김 대표의 개헌 논의의 필요성 제기에 대해 "지금 국가가 장기적으로 보다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개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을 이달 21일 밝혔다.

또 청와대는 "지금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해 시급한 국정과제가 있고, 그것들이 빨리 처리돼 국민의 삶이 나아지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개헌 반대의 뜻을 다시 밝혔다.

동시에 김 대표의 발언에도 입장을 표명했다. 청와대는 "김 대표가 중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고 그게 계속 보도되니 자신의 불찰이라고 말했다는데,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받아 치는 상황에서 (개헌에 대해) 언급한 것은 기사화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반문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여론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헌 관련 발언을 했다가 물러선 게 아니냐"며 의심 어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김 대표가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을 모두 예측하고 사전에 발언 계획을 이미 작심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개헌론 사전 논의 있었나

김 대표의 개헌론과 관련해 정치권 주변에서는 여러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 대표가 비박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개헌요구를 본인선에서 감당하지 못해 청와대로 프리패스시킨 것 아니냐"며 김 대표의 책임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 대표의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던가 "대통령께 죄송하다" "제 불찰이었다"며 전날 발언을 수습하는 모습을 미루어 이 같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청와대 주변에서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소문은 그 출발점이 여권 핵심부이라는 점에서 쉽게 흘려버릴 수 없게 한다.

복수의 여권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 대표가 개헌론 발언 전에 자신의 계획을 주변 측근들과 상의했으며, 그의 계획을 들은 측근들은 개헌 촉구 발언 계획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김 대표는 개헌론을 내놓기 전에 주변의 반대 의견을 먼저 확인한 것으로 안다"며 "측근들은 김 대표에 개헌과 관련된 언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김 대표도 알았다고 했는데, 현지(중국)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김 대표는 개헌 발언을 할 경우 그 파장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왜 개헌 발언을 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숙고 끝에 발언해 놓고 그 다음날 다시 대통령에 사과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여권 일부에서는 김 대표가 파장을 예상하고도 발언을 강행한 것과 다음날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을 두고 여러 관측과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 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은 "김 대표가 발언 직전 누군가와 긴밀하게 이 부분을 상의했으나 발언 직후 김 대표와 상의한 당사자가 청와대의 경고(?)를 받고 김 대표에 사과의 뜻을 밝히도록 했다"는 소문이다.

여권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대표가 개헌발언을 논의한 인물은 비박계의 핵심인사다. 청와대는 김 대표 발언 이후 이 인사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청와대가 전달한 메시지가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김 대표가 다음날 즉각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을 미루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또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번 김 대표의 개헌 발언과 연결된 비박계 인물들에 대한 사정기관의 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여권 비박계 인물들에 대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이 추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불가' 쐐기발언에도 불구하고, 개헌논의 요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야당이 요구하던 개헌론에 집권여당의 힘까지 실리면서 개헌을 놓고 청와대와 여야가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공무원 연금법 개정 등 굵직한 정부의 국정 현안이 개헌논의의 밀물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여권에선 나온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