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러시아개발은행' 한반도 대변화 몰고 온다북한 리수용ㆍ현영철ㆍ최룡해 잇단 러시아 반문 숨은 뜻은

지난 18일 푸틴 대통령과 면담하는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
푸틴에 전달된 김정은 친서의 핵심은 국제금융 통한 북한 개발
北 ‘한반도 문제 해결 협력 의지’ ‘남ㆍ북ㆍ러 3각 협력 사업검토’밝혀
박 대통령 남북관계 개선 프로젝트 국제기관과 함께 진행
북한 강경 입장에도 물밑에선 대화 진행, 경색국면 변화올 듯
북러 관계 새로운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행보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북한 ‘실세’의 방러인데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를 앞둔 시점이었고, 북-러 관계 진전에 따른 동북아 관계 변화, 북한핵 문제 등이 최룡해 비서의 행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최 비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뒤 극동의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방문했다.

김정은 친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 북한의 북핵 6자회담 복귀, 북러 관계의 획기적 변화 등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공개됐다.

하지만 국내외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최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문제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국제금융(극동러시아개발은행)을 통한 러시아 극동 개발과 남ㆍ북ㆍ러 3국의 공동발전에 기반한 북한의 대변화다. 최 비서가 모스크바에 이어 극동의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고, 이례적으로 “남ㆍ북ㆍ러 3각 협력 사업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다. 북한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6년 만에 조건 없이 북핵 6자회담에 복귀할 뜻을 나타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9월 22일 박근헤 대통령이 미국뉴욕 유엔 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총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에 앞서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면담에 이은 러시아 방문, 북한 실세 3인의 전격적인 인천 방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최룡해 비서의 잇단 방러 등은 러시아 연해주에 설립될 국제금융인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을 통한 남ㆍ북ㆍ러 3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최 비서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은 친서의 핵심이자 ‘진짜 목적’이기도 하다.

리수용-현영철-최룡해 잇단 러시아 방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것은 북한 인사들의 잇단 방러의 ‘방점’으로 읽힌다. 최 비서에 앞서 리수용 외무상이 9월 30일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났고, 11월 10일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러한 북한 주요 인사들의 잇단 방러에 대해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러 정상회담 일정 조율, 북한의 외교 고립 탈피, 북러 경제협력 강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지원 등으로 해석한다.

물론 그러한 부분들이 북러 고위급 회담에서 거론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북한 실세와 주요 인사가 한달여 사이에 잇따라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과 러시아 정보통에 따르면 러시아를 방문한 3인은 일관되고 공통된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은 국제금융을 통한 러시아 극동 개발과 남ㆍ북ㆍ러 3국의 공동발전에 기반한 북한의 대변화로 알려지고 있다. 이 국제금융의 실체는 ‘극동러시아개발은행’으로 한반도 전문가와 국제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에 설립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은행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장석중 극동러시아개발(주) 대표에 의해 처음 구상된 후 2001년 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9월 제안한 ‘동북아개발은행’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와 국제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지원은 물론, 남ㆍ북ㆍ러 3국의 공동 발전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의 재원은 한국과 해외동포, 국제기구 등을 통해 마련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북한과 극동 개발에 한국의 역할과 영향력이 비중있는 셈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 리수용 외무상의 반기문 유엔 총장 면담과 지난 10월 초 북한 실세들의 전격적인 인천 방문도 이 은행을 매개로 한 대북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리 외무상은 반기문 총장으로부터 “국제금융을 통한 북한 대변화에 한국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9월 30일 러시아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1일 오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반 총장의 말을 확인했다. 리 외무상은 그날 오후 확인된 사실을 평양으로 긴급 타전했고, 평양에선 북한의 대변화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해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북한의 명운이 걸린 문제인 만큼 최룡해 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실세 3인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북한 실세 3인방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사실은 그들과 함께 온 실무진 역할이 인천 전격 방문의 요체였다, 이들 실무진은 극비리에 정부 관계자와 접촉해 향후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입장을 전하고 국제금융을 통한 대북 프로젝트에 한국이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금융인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은 북한에게 중요하지만, 극동 발전에 역점을 두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도 절실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룡해 비서가 러시아를 방문했지만 러시아가 북한 ‘실세’를 방문하도록 해 최 비서가 나서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11월 10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정해졌다는 전언이다.

최 비서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한 것은 궁극적으로 러시아극동개발은행을 통한 북한 지원에 러시아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은행 설립에 관여하고 있는 국제관계 전문가는 “러시아극동개발은행에 한국의 역할을 알게 된 북한은 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딴죽을 걸곤하지만 앞으로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며 “이번 최룡해의 러시아 방문은 한국에 대한 우회적인 유화 제스처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변화의 키 ‘극동러시아개발은행’

북한은 물론, 한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 나아가 전세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은 1990년대 말 장석중 극동러시아개발(주) 대표에 의해 처음 구상됐다.

그리고 이 은행을 매개로 한 남ㆍ북ㆍ러 3국의 동북아프로젝트는 역대 정권은 물론, 특히 러시아가 큰 관심을 보였다.

장석중 대표는 1990년대 말 강화도 교동도 앞 청주벌에 남북 협력 공단을 세워 남북한은 물론, 극동러시아(연해주)까지 함께 발전하는 그랜드플랜을 세웠다. 청주벌 개발을 매개로 연해주 개발 기금을 마련하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극동러시아를 개발하는 것으로, 남ㆍ북ㆍ러 3국에 걸친 사업에 필요한 투자금은 극동러시아개발은행에서 출연되는 것으로 예정됐다.

이 ‘청주벌 프로젝트’(동북아 그랜드플랜)는 구체적으로 남-북-러를 잇는 경연선(서울-연해주), 38선하(휴전선 접경지역-경연선), 간도선하(신의주-혜산-청진-경연선) 등 교통망을 축으로 남한에는 제2 개성공단에 해당하는 해외동포공단을 조성하고, 북한의 동북지역을 개발하는 한편, 극동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쿠릴열도 등을 개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연선 노선에 남북경협을 상징하는 해외동포공단이 들어서고 이 공단에서 남북이 공동생산한 제품(농식품, 경공업 제품 및 생활필수품)은 북한의 식량난 및 기초 생활난을 해결한다. 경연선을 거쳐 TKR(한반도 횡단철도),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그리고 북극항로와 연결되면 남북한 상품의 경쟁력 증대는 물론, 남북에서 다방면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경연선을 통해 식량, 농ㆍ임ㆍ해ㆍ수산물, 자원, 인력 등의 교류가 활성화되면 식량 자급자족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이러한 극동 연해주 개발에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 러시아의 자원이 융합돼 추진되며, 경공업ㆍ생필품 공업단지 조성, TKRㆍTSR 연결, 사할린 유전 개발 및 수산물ㆍ임산물 가공 공단, 북극항로 유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 프로젝트를 실효성 있게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다.

이러한 동북아플랜 구상은 역대 정부도 관심을 보여 김대중정부 시절 당시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장석중 대표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전해듣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된 후 현실화됐다. 2001년 2월 김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주도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동북아 공동개발 및 38(휴전선) 접경지역 개발기금 마련을 위한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한국ㆍ러시아 총리 직속기관)를 창설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2001년 4월 러시아 무역대표부 일행이 몇 차례 청주벌 현장을 방문했고, 같은 해 7~8월에는 북한에서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북한 관계자들과 청주벌 너머 북측 일대를 답사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그리고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를 창설했다. (한국은 당시 정부 사정으로 미뤄진 채 아직 설립되지 못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당시 이광재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 장 대표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이명박정부에서는 ‘나들섬 프로젝트’라는 별칭으로 진행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한 데는 이들 정부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유가 됐지만 김대중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 ‘밀약’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대북지원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보다 직접적인 요인으로 전해진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김대중정부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한 본질적인 이유는 ‘밀약’에 담겨 있는 대규모 대북지원으로,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재원’은 한국이 활용할 수 있으나 국제기관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줄곧 한국 측에 요구하고 군사적 위협으로 압박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한 ‘큰 떡’이었지만 김대중정부는 물론, 이후 정부에서도 그것을 이행하지 못했고, 효율적인 대북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박정부, 남북관계 큰 변화 예상

역대 정부에서 추진한 대북정책 및 동북아프로젝트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큰후유증을 남겼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관계 개선 및 발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기반으로 남북관계를 일관성있게 추진하고 있고 드레스덴 선언,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천명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남북관계에 올인하고 있다. 또한 지난 7월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의 선장격인 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나아가 동북아 발전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유엔의 협조관계, 통일한국을 수차례 강조한 교황을 비롯해 국제관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 지도자들의 지원도 박 대통령의 한반도 구상을 구체화하는데 동력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 역시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을 통한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에 전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1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지난 9월 반기문 총장과의 면담에서도 그러한 내용들이 심도있게 논의됐다는 전언이다.

앞서 북한 실세가 한국과 러시아를 잇따라 방문한 배경에는 여러 루트를 통해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국제금융 등의 파워를 확인한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는 최룡해 비서가 푸틴 대통령과 면담에서 건넨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와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 후 공개된 내용에서도 추정된다.

친서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의지를 표시했다’고 돼 있다. 최룡해-라브로프 회담 후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을 위한 구체적 사업이 성공하면 다른 남ㆍ북ㆍ러 3각 협력 사업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또한 “러-북 통상경제관계는 이미 진행 중인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을 포함해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해 북러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임을 나타냈다.

북한 소식통과 러시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와 최룡해-라브로프 회담 내용에서 공개되지 않은 핵심 부분은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의 역할에 관한 것아었다고 한다. 북한은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 가동될 경우를 전제로 북한의 입장을 전하고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최룡해 비서가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고 귀국하면 한국 정부에 이전과 다른 태도로 나올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표면상으론 대남 강경 입장을 취할 지 모르지만 박근혜정부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보다 진전된 방향 나아가려고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유엔 등과 더불어 대북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해왔다. 소식통은 북한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이 은행의 파워와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새롭게알게 된 만큼 남북관계가 순항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한냉전선이 드리우고 있는 남북관계가 머지 않아 훈풍으로 인해 발전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