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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반복되는 '비선 실세 개입' 논란과 같은 듯, 다른 듯

비선 라인이 인사·이권 개입…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운영 흔들어
이번엔 베일에 깔린 루머 많고, 임기 전반부인데도 이전투구 양상
청와대·내각 대수술하고 소통의 국정운영으로 논란 차단해야
  •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은 역대 정권마다 반복됐다. 이명박정부 시절 이상득(왼쪽부터) 전 국회부의장, 참여정부 시절 노건평씨, 김대중정부 때 김홍업씨, 김영삼정부 때 김현철씨 모두 비선 라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선아 기자]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결말은 다른 경우가 많다. 희극이나 소극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비극으로 끝나기도 한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도 역대 정권마다 반복됐다. 공식 직책이 아닌 비선 라인이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습은 모든 정권에서 이어졌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최측근, 개국공신 참모들은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해 비리를 낳으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비선 라인 파문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결말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을 크게 흔들었다. 특히 정권 말에는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표면화되면서 대통령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을 불러오고, 정권 몰락을 가속화했다. 다만 비선 라인의 개입 수준은 정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최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와 박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등 양대 비선 라인이 청와대 문건 유출 및 보도 파문을 계기로 공격, 반박, 재반박을 하는 등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이재만 총무 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간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양측의 갈등과 대립이 진흙탕 싸움처럼 혼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위인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번 파문을 보면 과거 역대 정권과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고 베일에 깔린 부분이 많아서 어느 정권 때보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많이 흘러다닌다는 점이다. 또 비선 라인 간의 치고받기가 지나치게 속살을 드러내면서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임기 말이 아닌 전반부에 이처럼 내홍이 전면적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이명박정부 때도 임기 전반부에 개국공신인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등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 적이 있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 이후 역대 정부의 비선 라인 개입 의혹을 복기해 본다. 노태우정부 당시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인척인 박철언씨를 중심으로 하는 친인척들과 측근들이 '월계수회' 등을 조직하면서 무소불위의 힘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씨는 당시 공직을 맡고 있었으나 자신의 직함을 뛰어넘어 국정의 전방위 분야에서 입김을 행사했다. 여권 관계자는 "당시 이권이나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박철언 전 의원 주변에 모여들었다"면서 "박 전 의원은 노 대통령의 특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북방 외교에도 깊이 관여했다"며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 세력과 정면 충돌하는 바람에 김영삼정부 출범 후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고 말했다.

김영삼정부의 비선 라인 핵심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였다. 그는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실세였다. 김씨는 청와대 내부는 물론 여당과 정부 요직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심고 국정운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하지만 1997년 한보 사태 이후 김씨는 기업인들로부터 66억원을 받은 혐의로 옥고를 치르는 수모를 당했다. 한보사태와 김씨의 구속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다. 그런 김씨가 최근 트위터 글을 통해 문건 유출 파문과 관련,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걸 온 국민이 아는데 정작 임금만 모른 체하다 망신발만 뻗치게 되는 꼴"이라고 비난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씨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당시 한보와 관련이 없다보니 1992년 대선자금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전무후무한 죄목으로 구속됐다"고 항변하면서 "당시 반공식적으로 일했던 나는 결코 숨어 다니지 않았다"면서 정윤회씨 논란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앞둔 시점에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의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에 복합적으로 연루된 차남 홍업씨는 이권청탁 명목으로 기업체로부터 25억원을 받고, 대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원을 받은 뒤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2002년 구속 기소됐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삼남 홍걸씨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등에 관련된 청탁 명목으로 기업들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2002년 구속됐다. 장남 홍일씨는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에 휘말려 DJ정부 도덕성에 흠집을 냈고, 결국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사건'과 관련해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참여정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의 인사 개입 잡음이 계속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쯤 "순진한 형을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봉하대군'이라 불릴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노씨는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구속됐다.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 만에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던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기업으로부터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2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 노 전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당시 기업체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각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명박정부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해 민간인 사찰을 지휘한 '영포회'라는 비선 조직이 숨은 권력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영포 라인의 핵심으로 꼽혔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 전 부의장은 '영일대군'이라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전 부의장은 결국 저축은행 로비 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MB 정부의 '왕차관'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쳤던 박 전 국무차장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금품 수수 및 원전 비리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왜 이처럼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이 반복될까. 전문가들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체제에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서 "국정을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을 경우 비선 라인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늘어난다"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청와대에 권력이 독점된 상황에서 제도 개선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비선 실세 문제는 권력의 독점성, 국정운영의 불투명성,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과거나 지금이나 권력이 과도하게 독점된 상황에서 어떤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국민의 의혹을 확산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이어 "우리나라에선 학연이나 지연을 비롯한 온정주의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청와대에서부터 본질적인 국가 대개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대폭 물갈이하고 소통과 개방을 중시하는 쪽으로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에 청와대 기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논란의 당사자인 '문고리 3인방' 비서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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