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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十常侍(십상시)

국정 농단한 대통령 측근세력 비유
  • 새정치민주연합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 박범계 위원장(가운데) 등이 4일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과거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정윤회씨를 비롯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연루된 이른바 '십상시'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후한(後漢) 말기 나라 망친 간신 환관집단 지칭
<후한서> ‘환자열전(宦者列傳)’에 처음 등장
한국판 십상시는 국정ㆍ인사 개입한 대통령 측근
대통령 측근과 외척 간 다툼 국정 위기 부를 수

후한(後漢) 말기 간신 환관집단을 가리키는 십상시(十常侍)란 말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크게 회자되며 연말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권78 환자열전(宦者列傳)에 처음 등장하는 十常侍는 후한 영제(靈帝) 때 국정을 농단하여 망국에 이르게 하였던 12명의 환관, 곧 장양(張讓), 조충(趙忠), 필람(畢嵐), 곽승(郭勝), 손장(孫璋), 하운, 률숭(栗嵩), 단규(段珪), 고망(高望), 장공(張恭), 한회, 송전(宋典)을 가리키는 말로, 그들의 직책은 모두 중상시(中常侍)였다.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는 위 인원 중 장양, 조충, 단규, 하운, 곽승 5인과 봉서, 조절(曹節), 후람(侯覽), 건석(蹇碩), 정광(程曠)의 5인을 합한 열 명의 무리를 십상시라 불렀다. 그들의 직위는 궁중에서 황제를 가까이 모시는 중상시(中常侍)여서, 십상시는 ‘후한말기 십인 중상시’의 준말이 된다.

현재 한국판 십상시로 거론되는 인물은, 정윤회(鄭潤會)씨 등 비선세력의 국정개입을 언급한 청와대 문건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핵심 측근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신동철 정무비서관,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이창근 부속실 행정관, 음종환 홍보수석실 행정관, 김춘식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그리고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한 새누리당 의원실의 A보좌관, 전직 청와대 행정관 B씨 등이다.

후한 말기, 조정의 패권을 장악 그 권력이 천하를 기울이게 할 정도였던 십상시의 핵심 3인방은 장양, 조충, 필람이었다. 장양은 궁중의 말단인 잡역 내시(太監)에서 마침내 내시들의 수령 격인 중상시의 지위에 오른 후,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린 임금을 종용하여 ‘사원매관소(四園賣官所)’라는 것을 설립,공개적으로 매관매직하여 재물을 긁어모은 부패한 인물이다.

참고로, 中常侍는 궁중(宮中)에서 늘상(常) 황제 가까이에 머물며 황제를 모시는 최측근 지위이니, 수천 명의 환관들 중에서 임금이 가장 신뢰하는 환관에게 부여하는 높은 직책이다.

장양은 황제에게 음란한 음악을 제공하여 임금을 더욱 혼군으로 만들었으며, 대담하게도 자기집 장원(莊園)을 황궁보다 더 높이 세운 다음, 황제에게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온갖 지혜를 짜내 “황제는 높이 오르는 것이 불가합니다. 만약 높이 오르게 되면 필히 큰 화를 만나게 됩니다”라고 황제를 속였다. 그런데 어리석은 영제(靈帝)는 어이없게도 그 말을 굳게 믿고 고마워하며 장양을 “나의 아버지”라고까지 하였으니, 동기상응(同氣相應)이라! 둘 다 똑같은 하질의 부류였다.

장양은 십상시를 이끌고 옳고 그름을 분간함이 없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 제거하였으며, 죄명을 날조하여 조정의 신하들을 죽여 마침내는 대장군 하진(何進: 누이가 ‘하태후’임)을 우두머리로 한 외척집단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십상시가 백성들에게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착취와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들고 일어난 소위 ‘황건(黃巾)의 난’과, 그에 뒤이어 유비ㆍ관우ㆍ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거사는 모두 이 ‘십상시의 亂政(난정)’이 초래한 사건들이다.

서기 189년 초여름, 영제는 병이 나 죽기 직전에 왕미인 소생의 황자 유협(劉協)을 태자로 삼으려 하였다. 그때 십상시 중의 건석(蹇碩)이 병상 곁에서 영제에게 “유협을 태자로 세우시려면 먼저 반드시 대장군 하진을 죽여야만 황태자가 보호되어 후일이 평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진언했다. 영제는 그 말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 하진으로 하여금 입궁토록 하교했다.

하진은 본래 돼지를 잡는 백정이었는데 누이동생이 황후가 되어 황자 유변(劉辯)을 낳은 까닭에 큰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그는 황제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입궁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대신들을 소집, 어떻게 하면 십상시를 죽일 수 있을 것인지를 상의하였다. 그때 영제가 임종하자, 하진은 곧 부하인 원소(袁紹)에게 명령하여 5천 명의 어림군(禦林軍)을 이끌고 황궁으로 진입케 하여, 영제의 영구 앞에서 자기 조카인 태자 유변을 세워 황위를 계승케 하였다.

유변은 비록 황제가 되었지만, 영제의 모친인 동(董)태후는 그다지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차에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이 동태후에게 하나의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동태후가 듣고선 크게 기뻐하고, 이튿날 이른 아침 동태후가 친히 국정을 주관, 황자 유협은 진류왕(陳留王)으로, 자기 오빠 동중(董重)은 표기장군으로 봉하고, 장양으로 하여금 자신을 도와 국정을 처리토록 하였다.

한편, 황제 유변의 모친인 하태후는 동태후가 대권을 쥔 것을 보고선, 언짢은 마음이 들어 계책을 강구, 궁중에 술상을 차려놓고 동태후에게 와서 술을 마실 것을 청한 다음, 동태후에게 국가대사를 처리하지 말기를 권했다. 그 자리에서 동태후와 하태후는 한바탕 큰 말다툼을 하였다. 그날 저녁 하태후는 오빠 하진을 궁으로 불러 어떻게 하면 동태후와 동중을 제거할 수 있을지 상의하였고, 다음 날 동태후는 독살당하고 동중은 별당에서 자살했다.

하진은 처음에 십상시를 죽여 없애라는 원소의 권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외지에 파견된 20만 대군을 이끄는 동탁(董卓)은 달랐다. 그는 하진의 격문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환관 징벌’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경성 낙양을 향해 기병했다. 이에 십상시는 외지 병력이 온다는 말을 듣고, 먼저 손을 써 50명의 도부수를 궁문 내에 매복시켜 입궁하는 하진을 베어 죽였다. 그러나 담장 밖으로 던져진 하진의 머리를 보고 대로한 원소와 조조가 궁내로 들어가 수천 명의 환관들을 모두 죽이고, 소제(少帝)와 진류왕을 인질로 삼아 도주하는 십상시를 추격하였다. 십상시는 더 이상 도망하기 어려움을 알고 황하로 투신자살하니, 이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시대의 개막을 초래했다.

위 일화처럼 단정할 순 없지만, 우리나라도 작금의 상황이 대통령의 측근세력과 외척세력 간의 다툼으로 인해 혹여라도 망국에 이르게 될까 두렵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 www.hanja.co.kr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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