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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사설 정보지에서 SNS 루머까지 '찌라시의 세계'

"청와대 동향 문건 중 50% 틀린 내용이어서 놀라… 찌라시와 유사"
정·재계,검·경 관계자들 - 정보지 업체 '선수'와 '공장'의 합작품
여의도 관계자들 "예전 비해 신뢰도 더 떨어져… 逆정보도 넘쳐"
  • 검찰이 '비서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데일리한국 자료사진
[김종민 기자] "내가 과거 정권에서 고위 공직을 맡고 있을 때 얘기다. 당시 어떤 자리에서 만난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에게 '요즘 당신에 대한 좋지 않은 동향 보고서가 계속 올라온다'고 귀띔해줬다. 내가 그 문건을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비서실에서 며칠 뒤 내게 팩스로 보내줬다.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쓴 문건의 내용을 읽어봤더니 50%는 완전히 사실과 다른 허구였다. 별로 중요하지 내용 25% 가량은 사실이었고, 나머지는 25%는 사실과 유사한 내용을 쓰면서 완전히 엉뚱한 해석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야말로 증권가 찌라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문건을 보면서 매우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런 문건을 써내는 관련 기관들의 한심한 수준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 당사자가 해당 문건을 보지 못한다고 이렇게 멋대로 써도 되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누가 이의 제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문건이 대통령 책상 위에도 종종 그대로 올라간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미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철저하게 진실을 파악해서 상부에 보고한다는데, 너무 차이가 난다. 이같은 일이 군사정권이 끝난 뒤 민간 정부에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실과 다른 찌라시 내용이 대통령 책상에 올라가기도"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급 고위공직을 지낸 인사가 최근 사석에서 들려준 얘기다. 김대중 정부에서 고위공직을 지낸 정치인도 "증권가 찌라시에 나올 법한 얘기들, 즉 사실이 아닌데도 그럴 듯하게 포장된 얘기들이 관련 기관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남들에 대한 보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에 대한 보고가 잘못되면 항변할 길도 없고 분통 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에게 문건 내용을 제보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정윤회씨와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의 비밀 회동설'에 대해 "찌라시와 다른 곳에서 들은 얘기를 종합해 박 경정에게 전한 것"이라고 9일 자백하면서 '찌라시'의 제작 및 유통 과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 유출 문건 일부를 소지한 혐의로 한화그룹의 한 직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도 찌라시 수사가 본격화됐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정윤회씨 동향 문건'과 관련,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전·현직 민정수석실 행정관, 전직 국정원 요원, 검찰 수사관, 언론사 간부 등 7명에 대한 자체 감찰 결과를 검찰에 이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들이 매월 2~3차례씩 정기 모임을 가졌으며, 올해 초부터 정윤회씨와 박지만 EG회장 동향에 대한 또 다른 청와대 자료를 외부에 유출한 의혹이 있다고 검찰에 통보했다. 사실상 청와대는 국정을 뒤흔든 '찌라시'를 작성하고 유통하는데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일단 정씨와 청와대 '3인방' 비서관의 회동설을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은어(隱語)로 사용되던 '찌라시'라는 말은 최근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 및 문건 유출 사건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며 대중적인 단어로 부상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공식 석상에서 직접 이 단어를 입에 올렸다. 또 청와대 문건 유출 사실이 알려진 직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그 내용에 대해 "찌라시를 모아놓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해 발언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찌라시는 어지름, 흩뜨림, 전단, 광고지를 뜻하는 '지라시'(ちらし)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로 '증권가 사설 정보지'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시중에 도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는 '주간 정보' '종합 분석지' 'CEO리포트' '종합경영보고서' '위클리(Weekly)' '프리미엄 리포트' '네오 뉴스' 등의 제호를 달고 암호가 설정된 PDF 형식의 파일로 이메일을 통해 전달된다. 구독료는 연간 적게는 연 50만~수백만원 사이이며, 연회비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정보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 등 고위급 정관계 인사에게는 홍보 차원에서 무료로 전달하기도 하며 대개 10~30쪽 분량에 주 1~3회 또는 일간으로 제공된다. 찌라시에는 정치인 및 주요 관료, 재계 인사,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의 동향과 증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

정·재계, 검·경 관계자들 '선수'- 정보지 업체 '공장'의 합작품

증권가 사설 정보지는 증시로 시중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 처음 등장했다. 고급 정보의 필요성은 높아졌지만 유통이 현재처럼 원활하지 못했던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맞았다. 일명 '선수' '정보맨'으로 불리는 대기업·금융기관의 정보맨, 전현직 경찰·검찰·국정원 직원,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 등이 정보 교류를 위한 정기 모임을 갖고 이 자리에서 풀어놓은 첩보와 정보들을 종합해 각각 자신의 소속 회사와 기관 등으로 보고한다. 여의도 주변에서 종종 5~7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찌라시 모임'이다.

특히 대기업에서 '정보팀' '기획팀' '대외협력팀' '대관업무팀' 등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부서에 소속된 정보맨들은 정부와 국회, 재계, 언론계, 검찰 등의 동향을 취재해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한다. 대기업 정보맨들은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정책 결정과 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에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너 리스크'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무엇보다 대기업 총수의 비리 의혹이 검찰 주변에서 거론되는지, 국회에서 총수나 대기업 사장 등의 출석 문제가 거론되는지 여부 등을 체크하지 않을 수 없다.

찌라시 모임에서 거론된 내용들은 관련 기관이나 기업체 내에서 공유되다가 '공장'이라 불리는 정보지 업체까지 흘러들어가 재가공되어 상품화되기도 한다. 일부 내용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보맨들과 정보지 업체 간에 직거래되기도 한다. 애초 인쇄물 형태로 출발한 사설 정보지는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이메일 첨부 파일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찌라시의 내용은 정기 모임에 참석한 당사자, 정보지 업체 관계자, 유·무료 구독자 등을 통해 구두로 또는 문서로 전파된다. 그러던 사설 정보지는 주식 투자 수익을 위한 참고자료이기도 했던 당초 목적에 따라 속보성도 가미되어 여의도 증권가에서 많이 쓰인 '미쓰리' 메신저 등을 통해 그 내용이 전파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파급력은 훨씬 커졌고 유통 루트가 더 은밀해짐에 따라 유명인의 사생활 관련 내용 등 명예훼손 가능성이 크거나 확인이 안된 정보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런 내용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일반인에게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재생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울러 이른바 '작전세력'이 흘린 허위정보와 역정보도 유통되기 시작했다. 관련 종목의 호재성 이야기들을 전파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를 유발해 주식이 급등하게 되면 미리 저가에 매집해놓은 주식을 파는 경우도 많아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이는 당초 사익 추구의 한 방편으로 출발한 사설 정보지의 탄생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최근 사설 정보지들은 "불법·명예훼손성의 정치·연예계 소식 등 기존 정보지에서 전달하던 미확인 루머는 게재하지 않고 경영, 기업, 부동산, 산업 등의 경제 정보만 제공한다"고 표방하며 고정 고객을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여의도 관계자들 "예전 비해 신뢰도 더 떨어져… 逆정보도 넘쳐"

여의도의 한 투자자문회사 펀드매니저는 "최근에는 단속이 심해진 탓인지, 증권업계 불황 탓인지 사설 정보지를 직접 보기가 어려워졌다"면서 "과거에는 메신저를 통해 호기심을 끄는 연예인 사생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결국 사실이었군' 하는 꾸준한 신뢰를 얻은 다음 이익과 직결되는 상장 기업 관련 허위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려 '결정적 한방'을 노린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런 방법을 통해 큰 수익을 얻은 찌라시 관계자들 일부는 여의도에서 종적을 감추기도 했고, 제호를 바꿔 다른 정보지로 '재창간'하는 행태도 보였다"고 전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재선 의원의 보좌관은 "파일 형태의 찌라시를 받아 보좌진들끼리 서로 내용을 공유한다"면서 "가치가 있는 내용은 정리해서 의원들에게 보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보지에 실린 내용이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은데다, 전혀 근거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면서 "거기엔 작성자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의도에 함몰되지 않도록 찌라시 내용의 사실 관계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전했다.

사설 정보지를 구독하진 않지만 SNS를 통해 자주 내용을 접한다는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한두 명에게 전화만 해봐도 사실 무근으로 판명나는 찌라시 내용들이 많다"면서 "내용이 악의적인 경우 출처가 어디인지 찾으라는 지시가 내려와 피곤한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 '당 소속 의원이 사정 당국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등의 내용이 SNS를 통해 유포되기도 한다"며 "지나고 나면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나는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기에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솔깃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또 "특히 당내 계파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허위 내용들도 많이 올라온다"며 "출처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그럴 경우 그냥 야당발(發) 역정보가 아니겠느냐 생각하고 넘기고 만다"고 전했다.

정보 파트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찌라시 내용이 근거 있는 것인지 확인하라는 SRI(특별첩보요구 Special Requirement for Information)가 떨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찌라시에 나온 당사자에게 직·간접적으로 탐문해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SNS 통해 전해지는 출처 불명 글도 '찌라시'라고 불러

최근에는 사설 정보지뿐 아니라 SNS를 통해 전파되는 출처가 불분명한 글들도 '찌라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파급력이 크고 빠른 SNS 매체가 생기면서 정보의 생산 및 유통 주체도 다양해지다보니 내용들도 근거 없는 것들이 많아져 신뢰도가 예전에 비해 더 떨어졌다. 더구나 사설 정보지에 나온 내용이라며 얼마든지 괴담이나 헛소문을 만들어 퍼뜨릴 수도 있다. SNS를 통해 '받은 글'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유포자에게서부터 이른바 '출처 세탁'을 거쳐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경제 관련 동향 정보보다는 연예인 스캔들이나 유명인의 사생활 폭로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가장 최근에는 가수 겸 배우인 비(본명 정지훈)가 SNS를 통해 퍼진 허위 '알몸 사진'에 대해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고, 강용석 전 의원의 경우 불륜 해외여행 루머가 퍼져 본인이 직접 TV프로그램에서 "사실 무근"이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자살까지 이르는 등 많은 사람들이 그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찌라시는 이미 우리 사회 정보 유통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가 곧 권력인 사회에서 남들이 모르는 소문이나 첩보·정보를 자신이 먼저 전파한다는 것에 대한 우월감이나 은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친밀감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본다면 이를 완전히 뿌리뽑기엔 한계가 있다.

다만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과거에 비해 찌라시의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접하고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의구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찌라시의 확산력이 강해진 만큼 찌라시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이 재빨리 대응해 사실 여부가 판가름나는 속도도 함께 빨라졌다는 점도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여기에 팩트가 확인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는 대중들의 인내심만 더해진다면 찌라시가 우리 사회에서 발붙일 자리는 자연스레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라시 세계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단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검찰은 사실과 다른 소문들로 피해보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악성 루머를 유포시킨 사람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걸러지지 않는 찌라시 정보가 청와대에 그대로 올라가는 잘못된 관행도 척결해야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은 시중에 나도는 소문들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도록 철저하게 검증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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