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 내용 보고받은 후 조치 취했다”청와대 “허무맹랑한 얘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박근혜 대통령 주변 권력 암투 의혹의 불씨가 된 ‘정윤회 문건’을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것은 올 1월 6일이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윤회씨가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와 밀착해 국정을 농단한다는 동향 정보가 담긴 문건의 내용을 1월 보고 받았다. 하지만 김 실장은 별다른 조치 없이 사실상 묵살했다. “허무맹랑한 얘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김 실장이 이때 이미 “정윤회가 짜놓은 권력구도에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란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권 일부에서는 비서실장이라는 김 실장의 위치상 민감한 내용을 담은 동향보고에 대해 추가 사실 확인 지시를 하지 않을 리 없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김 실장이 이를 무시했다면 보고 후 VIP로부터 “신경쓸 것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김 실장은 무시가 아니라 애초 손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김 실장은 올 초부터 끊임없이 교체설에 시달리며 여야로부터 공세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김 실장의 역량에 한계가 있어 청와대가 비서실장을 물색 중이라는 말도 무성했다. 청와대를 정윤회씨가 쥐락펴락했다면 위기에 놓인 상황에 이 같은 보고가 나왔다면 김 실장으로서는 사태를 그저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해당 문건은 박 경정이 미확인 항설(巷說)들을 취합한 수준인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문건에 담긴 내용 자체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란 점에서 당시 청와대의 보고서 묵살은 쉽게 이해가지 않는 대목이다. 문건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대응은 의문투성이다.

문건 내용은 박지만 EG회장과 부인 서향희씨 등에 대한 민감한 것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대적 조사를 통해 유출 주체와 경위 등을 밝히지 않았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럴 경우 두 가지 방향의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받은 내용을 직접 당사자에 추궁하고 경고를 했거나 또 다른 하나는 정보를 추가 확인한 결과 사실무근일 경우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문건을 보고받고 박 대통령은 박지만씨와 서향희씨 등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실제로 박지만씨의 측근으로부터 박지만씨가 청와대의 경고를 받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는 사태 초기부터 사실상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문건 작성과 유출의 배후로 지목해 주변을 압박했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선 조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7인 모임’이 문건 유출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는 다시 말해 청와대가 정보보고 라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 전 비서관을 지목했다는 것은 조 전 비서관이 알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청와대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가설도 성립된다. 조 전 비서관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게 없다는 그가 그런 정보를 취급했다는 것을 그토록 신속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7인 모임은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는 등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내리면서 청와대는 오히려 역풍을 맞는 상황이 됐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 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