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관' 곳곳에 산재… 상황 따라 공개되면 후폭풍 거세검찰 수사 불신론 확산에 박근혜 대통령 조기 레임덕 올 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등 청와대 문건을 박지만 EG회장에게 건넨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엄상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 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등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상황"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함께 검찰도 신뢰도가 크게 추락할 것"이라는 비판섞인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올 1월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는 박관천(구속)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같은 달 박지만 회장의 측근 전모씨를 통해 박 회장에게 전달한 혐의를 잡고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문건', '서향희 문건' 등으로 알려진 박 회장 관련 청와대 동향보고 문건 17건을 박 회장 측에 수시로 전달했다고 보고 공무상비밀누설 외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미 검찰 주변에서는 조 전 비서관의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데다 그가 추가 카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그에 대한 불구속조치를 두고 검찰 책임론이 부상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의혹만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청와대는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 새누리당 비박계가 본격적으로 친박계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검찰 불신론 증폭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과 함께 서울 강남의 중식당에서 올 1월 박지만 회장을 만난 정황도 포착하는 등 조 전 비서관을 사실상 박 회장의 '비선'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조 전 비서관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 개입 의혹,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는 사실상 박관천 경정만 구속하는 선에서 사실상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검찰에 따르면 일단 비선 개입 논란을 불러온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정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추적과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조사 등을 통해 허위인 것으로 결론났다.

세계일보에 전달된 문건은 청와대 파견에서 해제된 박 경정이 짐을 잠시 서울지방경철청 정보분실에 보관할 때 한모, 최모(사망) 경위가 복사해 유출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결과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정윤회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비서관 3인 등을 겨냥한 허위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고 박 회장에게 넘긴 동기 등을 최종 확인할 방침이다.

이것만 보자면 검찰은 박 경정과 최 경위를 핵심으로 결론내리고 몸통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힘없는 깃털만 처벌받고 권력을 손에 쥔 몸통의 실체는 아무것도 규명하지 못했다"며 검찰을 비난하고 있다.

이재만 비서관 등이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윤회씨 등을 고발, 수사의뢰한 사건 등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기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여론의 시각이다.

박 경정에 대한 검찰의 기소내용을 보면 검찰의 추가 수사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 인물인 박경정은 지난 2일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날 박 경정에게 공무상 비밀누설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용서류 은닉, 무고 등 4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박 경정은 작년 2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면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동향보고서 등 10여건의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박 경정이 반출된 문건을 개인 짐에 담아 자신이 근무할 것으로 알고 있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 숨겨둔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박 경정은 상급자였던 조 전 비서관이 내부 문건들을 박 회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공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 전달한 문건에는 정씨가 '십상시'로 지칭된 청와대 비서진 10명과 정기적으로 비밀회동을 열고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을 논의했다는 내용의 '정윤회 문건' 등 박 경정이 작성한 다량의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이 문건을 박 회장 측에 건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해당 문건을 작성, 조 전 비서관에게 제공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박 회장에 전달할 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박 경정의 혐의 중 일부가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공용서류 은닉과 무고 등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용서류의 경우 개인적으로 빼돌려 보관한 것인지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 근무지에 따로 보관한 것인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무고의 경우 특정인에 피해를 준 사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것이 모호할 경우 처벌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정개입 진실 끝내 미궁으로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남아 있어 향후 정국을 달구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권내부에서 제기된다.

지난 2일 검찰에 따르면 현 정권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포함한 비서관·행정관 등 10명이 서울 강남 모처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는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문건에 등장하는 정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을 소환하는 한편 이들이 모인 강남 J중식당의 사장을 소환 조사해 이들이 해당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진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 또 정 씨의 사주로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른바 '박지만 미행보고서'도 허위라는 점이 밝혀졌다. 박 경정이 이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직접 박 회장을 만나 미행보고서를 건넸다는 점 역시 검찰이 밝혀낸 내용이다. 검찰은 결국 '정윤회 문건', '박지만 미행보고서' 등의 유출을 주도한 것은 조 전 비서관이며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어떤 목적과 의도로 이 같은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까지 계획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아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박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 등 다량의 문건들이 어떻게 세계일보로 유입됐는지에 대해 규명되지 않아 유출작업의 배후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박 경정이 청와대 파견 해제 당시 자신이 작성한 문건들을 청와대에서 가져 나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뒀으며 이를 한모와 최 경위가 복사해 외부로 빼돌렸다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최 경위의 유서가 이를 대체로 부인하고 있고 경찰 내부에서도 문건 유출 경로가 의심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또 핵심문건에 해당하는 '정윤회 문건' 내용의 일부는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다른 내용에 대해 진위여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불씨다. 예컨대 정씨와 '문고리 3인방' 비서관이 정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폭로는 앞으로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뇌관이다.

이와 함께 문건 작성 및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된 조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기각된 것은 문건 유출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당초 검찰수사 방향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달 내내 정국을 뒤흔든 이번 사건과 관련, 사법처리된 인물은 박 경정이 유일하고 핵심인물로 지목된 최 경위의 사망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결론을 단정짓는 검찰 수사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씨와 문고리권력 3인방을 포함한 십상시 등의 각종 인사 개입 논란 등을 단 하나도 규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청와대의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씨의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강변했지만, 조 전 비서관은 "문건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는 주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향후 조 전 비선관의 발언이 일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문건 유출 사건은 제 2라운드를 맞게 될 수도 있다.

한편 조 전 비서관의 사전구속영장 기각은 당초 속전속결로 이 사건 수사를 끝내려 했던 검찰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심지어 법원은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수사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이는 사실상 혐의 입증이 덜 된 상태에서 영장을 청구했다는 의미로 검찰 수사의 신뢰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이에 검찰은 향후 재판과정에서도 혐의 입증에 부담감을 갖게 될 전망이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