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통일구상' 중심에 러시아 핵심역할… '극동러시아은행' 주목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3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3기 대북정책에 러시아 핵심적 역할
'극동러시아개발은행' 남북러 3국 공동발전 프로젝트 재원 마련
러시아 '남북 중립국 통일' 방안에도 중요 역할 담당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3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기자회견의 대부분은 '경제'에 할애됐고 '통일' 관련 구상에 비중을 두었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의 응답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경제 부흥'과 '통일기반 구축'에 기여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인적 쇄신'과 '소통'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오히려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고, 박 대통령이 강조한 '경제'와 '통일'부분은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통일기반 구축과 관련해서는 대담한 구상과 입장 변화를 보였음에도 간과되다시피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문에서 본래 '남북관계', '통일'부분에 공표된 내용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대응과 미국의 대북 압박 흐름 등을 고려해 기자회견을 앞두고 상당 부분을 조정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러 확대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언급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러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기해 나갈 것'과 '유라시아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 부분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박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정권은 줄곧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해왔다.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통일기반 구축에 러시아의 역할을 부각한 것은 향후 대북 정책과 통일 관련 국제관계에서 우리 정부와 러시아가 협력적 관계를 모색한다는 의미로 그 구체적 내용에 관심이 모아진다. 반면, 남북관계 진전과 러시아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의 행보도 주목된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와 북한ㆍ러시아 정보소식통 등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 간 공통 관심사와 추진(계획) 중인 프로젝트 등을 추적했다.

러시아, 남북관계 변화의 중심으로

러시아는 한반도의 주요 4국임에도 남북관계에서 줄곧 떨어져 있었다. 러시아 국정과 외교관계에서 유럽과 중동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러시아가 박근혜정부 출범을 전후해 대외관계의 축을 동북아, 그중에서도 한반도로 옮기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2년 초 3선 집권에 성공한 후 그해 9월 극동 연해주(프리모르스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개최하는가 하면, 이듬해 9월엔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11월에 방한했다.

이후 여러 국제회의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는 친분을 과시했고, 올 1월 주한 러시아 대사로 알렉산드르 티모닌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가 부임하면서 한러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도 한층 밀착됐다. 지난해 11월 18일 북한 실세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했고, 그보다 앞서 11월 10일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는 북한 군과 당의 최고 실세가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북러관계의 우호적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알렉산드르 티모닌 북한주재 러시아 대사가 올 초 주한 러시아 대사로 부임한 것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북한에서 대사를 지낸 러시아 외교관이 주한 대사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티모닌 대사는 2012년 5월 북한주재 대사로 부임하기 전 러시아 외교부에서 남·북·러 3각 협력사업 담당 특명대사로 수개월 일했다. 그전에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했다. 남·북·러 3국 관계에 정통한 외교관이 주한 러시아 대사로 오면서 향후 남북관계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프로젝트가 주목된다.

한국-러시아 '밀월' 가속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한층 가까워진 것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다. 박 대통령의 통일정책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러시아 또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러시아의 발전, 특히 극동 지역의 개발을 도모하려고 한다.

박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3년 9월 러시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이래 그해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나 양국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남북한과 아시아,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경제권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실천 방안으로 물류ㆍ통상ㆍ에너지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하나의 대륙을 형성하고, 산업ㆍ기술ㆍ문화를 융합한 창조경제의 패러다임 구축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푸틴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구상에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푸틴 대통령이 약 390조 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진 '극동발전전략 2025'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동부 및 극동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아태지역에 공급하기 위한 가스관과 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의 방한은 한러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과 러시아의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 태스크포스(TF)팀이 사전에 국내에 들어와 한ㆍ러 정상회담 '의제(agenda)'에 대해 논의하고 돌아갔고 한반도 및 극동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매우 비중있게 다뤄졌다고 한다.

양국은 정상회담과 관련, ▦양국 관계 전반에 대한 평가와 향후 관계 발전 방향 ▦한반도 및 동북아 안정과 평화 ▦양국 간 실질 협력 방안 ▦문화ㆍ인적 교류 활성화 등 '4대 과제'를 중심으로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최대 '의제'는 남북이 중립국 통일국가로 가는 데 러시아가 후견자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한 러시아의 동북아 담당자는 "앞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TF팀이 다뤘던 의제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남북통일에서 러시아의 역할'이었다"며 "러시아는 남북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부당한(과도한) 간섭을 막아줄 수 있는 힘을 가졌고, 현실성 있는 통일방안으로 거론되는 '(영세)중립국화'에도 남북의 방패막이가 돼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TF팀 관계자에 따르면 러시아의 한반도 역할과 병행해 한국 정부도 푸틴체제의 러시아, 특히 연해주 일대에 대규모 지원과 투자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몇 차례 공표했고,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국책기관에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러시아개발은행(동북아은행) 핵심 역할

박근혜정부 들어 한러 관계의 발전에 따라 러시아의 동북아에서의 위상과 정치적 역할은 '경제'를 통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경제'와 관련 러시아 TF팀 관계자들의 보고 내용에 따르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질 예정인 '동북아세계은행'이 가장 눈길을 끈다. 이 은행은 극동러시아에서 실행되는 모든 프로젝트 외에 남북한과 러시아와 연계된 프로젝트 등에도 필요한 재원을 공급한다.

일찍이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9월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동북아은행을 북한에 지어주고 6자 회담 주도 국가(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가 주주가 되는 형태로 운영, 북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방안이다.

정부는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북한과 몽골, 극동시베리아 일대에 국내 기업들의 진출을 돕는 한편 북방대륙과 한반도를 연계한 통일경제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몽골ㆍ중국ㆍ러시아 간 철도 연결과 한ㆍ중ㆍ러 가스관 프로젝트, 북한 나진선봉 특구, 중국ㆍ러시아 도로 건설과 같은 북방경제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운영 주체나 방식, 설립 장소 등에서 동북아은행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는 이 은행 설립에 앞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회원국인 한국ㆍ중국ㆍ러시아ㆍ 몽골이 참여하는 가칭 '범북방프로젝트협의체'를 출범시키고, 이를 동북아경제협력기구로 격상시킨 후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개발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의 주력 사업은 남북한, 중국, 극동러시아(연해주), 몽골 지역과 연계된 북방경제 활성화로 알려졌다. 은행의 설립 장소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북아개발은행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일찍이 남북한과 러시아가 연계해 추진한 '극동러시아개발은행' 모델을 떠올린다. 2000년대 초, 남북한과 러시아는 강화도 교동도 앞 청주벌에 남북 협력 공단을 세워 남북한은 물론, 극동러시아(연해주)까지 함께 발전하는 그랜드 플랜 '청주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여기에 소요될 막대한 자금을 제공할 금융기관으로 극동러시아개발은행 설립을 계획했다. (주간한국 제2121호, 2006년 5월9일 자)

장석중 (주)극동러시아개발 대표에 의해 1990년대 말 입안된 '청주벌 프로젝트'는 청주벌 개발을 통해 연해주 개발 기금을 마련하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극동러시아를 개발하는 것으로, 남-북-러 3국에 걸친 사업에 필요한 투자금은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 담당한다. 이 은행 자본금은 북한이 매판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민족자본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해 해외동포들이 중심이 돼 투자하고 국제금융도 관여하는 형태를 취했다.

은행의 설립 장소도 남도 북도 아닌 제3 지역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을 토대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후보지로 지정했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북한 군부의 극동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청주벌 프로젝트' 는 남북한, 러시아가 2001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직접 실행에 나섰다. 2001년 4월 러시아 무역대표부 베이추크 일행은 몇 차례 청주벌 현장을 방문했고, 같은 해 7~8월에는 북한에서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북한 관계자들과 청주벌 너머 북측 일대를 답사했다. 2002년 4월, 베이추크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석중 대표를 비롯한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을 모스크바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 차원에서도 진행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김중권 비서실장은 장대표로부터 '청주벌 프로젝트' 를 전해듣고 이를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해 DJ정부 정책으로 활용됐다.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주도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동북아 공동개발 및 38(휴전선) 접경지역 개발기금 마련을 위한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한국ㆍ러시아 총리 직속기관)를 창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기구는 러시아에서만 창설됐고, 한국에서는 당시 정부 사정으로 미뤄진 채 아직 설립되지 못했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설립 취지가 '동북아' 개발이지만 북한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프로젝트의 내용은 앞서 '청주벌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즉 해외동포지원사업단이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을 통해 '청주벌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휴전선 접경지역에 '해외동포공단'을 조성하는 등 남-북-러 3국이 공동 발전하는 방안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과정에서 언급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도 부합한다.

러시아의 저명한 국책연구소인 IMEMO가 2011년 9월 발표한 '글로벌 전망 2030' 보고서는 2020년 후반 남북한이 실질적 통일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의 미래 대한반도 정책이 한국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푸틴체제가 한반도 정책에서 한국에 비중을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의 견제, 대북 압박 '변수'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 카드'를 활용한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려고 하는데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대해 초강경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방위 금융 제재를 가하는가 하면 테러국 재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이 주요 이유다.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테러·금융 담당 차관보는 13일(현지시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불법적 행동을 계속하는 한, 재무부는 그런 행동에 대한 금융 비용을 높이고 북한이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가용 가능한 수단들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 이유는 ㄷㅇ장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가 13일(현지시각) 한목소리로 대북 제재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의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북한의 위협: 핵·미사일·사이버' 청문회에서 "북한이 불법 무기와 도발, 인권침해를 스스로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이 파괴적 정책 결정을 하는 데 대한 비용을 증가시키기 위해 독자적ㆍ다자적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소니 해킹을 계기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인권 탄압 등에 대해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 강경한 압박으로 나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압박은 정도를 과도하게 넘고 있다는 게 국제관계자의 대체적인 견해다. 소니 픽처스 해킹을 놓고 전방위 금융 제재와 테러국 재지정 움직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한반도와 미국 사정에 정통한 국제정보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보다 한국이 북한과 긴밀하게 가까워지고 러시아까지 등장시키는 것을 불만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남북관계에서 한국은 줄곧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는데 너무 독자적인 행보를 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미국의 대북 압박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적용되는 셈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박근혜정부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한반도 문제에 러시아를 비중있게 대하고 있는 점은 미국이 불편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빅근혜정부 집권 3년차에 속도 있게 추진하고자 하는 남ㆍ북ㆍ러 3국 공동발전 프로젝트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주목되고 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