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소식통 "통준위 해체하고 박근혜 대통령 전면에서 빠져야 남북관계 순항"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흡수통일 연구팀’발언 논란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종욱 '흡수통일' 발언 파장 일파만파
북한 "통준위 해체하고 박 대통령 사과하라"
北 "요구 이행하지 않으면 남북 대화는 없다"
정 부위원장 사퇴 당연시… 통준위 존폐 논란
박근혜 대통령 전면 나서면 타깃… 남북관계에 불리

지난 11일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민간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때문이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10일 한 강연회에서 통준위에 '흡수통일 준비팀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통일'을 국정 최대 현안으로 삼아 온 박근혜정부와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통일'은 박근혜정부가 출범 초부터 가장 역점을 두었고, 집권 3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이 경제와 함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국정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남북관계)에 올인하고 있는 만큼 그 성과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성공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은 남북관계에 치명상을 주면서 박근혜정부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당장 북한은 정 부위원장의 발언을 맹비난하면서 남북대화를 중단하겠다는 엄포를 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 부위원장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 중엔 남북관계의 바탕인 '신뢰'가 무너질 수 있는 만큼 신뢰 회복과 함께 통준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통일준비위원회 앞에서 시민단체‘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관계자들이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종욱 '흡수통일' 발언 파장

'그 사람 제 정신이야? '통일'이란 용어도 조심스러워 '통합'이란 말이 적합하다고 (박 대통령에게)했는데 '흡수통일'이라니… 통일 과업을 망치려고 하나!"

11일 이른 아침, 박근혜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하는 한 원로는 크게 역정을 냈다. 전날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이 아침부터 파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으로 누구보다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그는 정 부위원장이 '큰 사고'를 쳤다며 진노했다. 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통일' 은 박근혜정부의 국정 어젠다이지만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박 대통령의 '통일 국정'은 부친의 유업을 실행하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정 부위원장이 '흡수통일' 발언을 해 박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준 것은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박 대통령 임기내에 '통일'의 기반을 닦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고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유업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논란이 된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은 지난 10일 ROTC 중앙회 조찬포럼에서 나왔다. 정 부위원장은 "저희들이 연구하는 통일 로드맵 가운데는 평화적인 합의통일도 있고, 또 동시에 비합의 통일, 그러니까 체제통일에 대한 것도 있다"고 밝힌뒤 "체제 통일은 연구하는 팀이 저희 위원회 가운데 따로 있기 때문에 제가 깊이 말씀은 안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 통일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고 있다"며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비합의·체제 통일을 통준위에서 다루고 있음을 언급했다.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이 알려진 뒤 청와대는 화들짝 놀랐고 통준위, 정부 관련 부처 등은 파문 확산을 차단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통준위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정부가 흡수통일 준비팀을 만들었다거나 통일준비위원회에 비합의 통일이나 흡수통일에 대한 팀이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당사자인 정 부위원장은 12일 자신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과 관련해 "용어선택이 적절치 못해 위원회 활동 내용이 잘못 보도된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부위원장은 "통준위는 평화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조직"이라며 "조직 내에 북한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팀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부위원장의 발언 중에 '체제 통일을 연구하는 팀이 통준위 위원회 가운데 따로 있다' '제가 깊이 말씀은 안 드리겠다' '정부 다른 부처에서도 체제 통일에 대한 여러 상황을 연구 중' 등을 언급한 것에 비춰 '흡수통일' 발언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북한 강력하게 반발…국내서도 비판적

정 부위원장의 '통일' 과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은 큰 파문과 함께 국내는 물론, 북한으로부터 즉각 반발을 불러왔다.

시민단체들은 12일 정 부위원장의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흡수통일 기도는 남북 간 극한 대결과 남북관계 파탄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7개 단체는 " '비합의통일'이나 '체제 통일'에 대한 팀이 있다고 한 발언은 박근혜정부가 흡수통일론을 위해 구체적 준비를 해왔다는 말과 다름없다"며 "흡수통일은 현 정권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모든 대북, 대북방 정책을 좌초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는 11일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을 문제삼아 통준위 시민자문단을 탈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정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남한 정부의 '불순한 속심'이 드러났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통준위 해체를 요구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4일 대변인 담화에서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것이 그 무슨 신뢰조성과 교류협력,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철두철미 흡수통일 모략기구이며 흉악한 체제대결의 망상을 추구하는 대결의 돌격대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박근혜는 통일준비위원회 수장으로서 온 민족 앞에 이번 망발(정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명백히 책임적인 해명을 하고 사죄해야 하며 극악한 반통일 체제대결 모략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를 당장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평통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현 남조선 당국과 상종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15일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입장 표명을 통해 "통준위가 흡수통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고 해명혔다. 통일부는 "2014년 출범한 통준위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필요한 연구활동 등을 다각도로 추진해왔고, 작년 12월에는 이러한 통일준비 구상들을 북측과 직접 만나 설명도 하고, 협의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제안했다"며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남북간 대화와 교류·협력을 일관성있게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는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으로 더 꼬이는 분위기다.

통준위 위상 역할 재정립 필요성 제기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정 부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강력 반발하는 것에 고심 중이다.

북한은 통준위의 해체를 요구하고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해 일부에선 남한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전략적 대응'이란 분석이 있지만, 북한이 실제 박근혜정부를 불신해 대화의 창을 아예 닫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정말 화가 났다. 남한 정부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박 대통령을 '극악한 배신자'로 비난하기도 했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이명박정부에 실망한 북한은 박근혜정부에 상당한 기대를 했고,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지켜봐 왔다"면서 "그런데 지난 2년 간 진전된 게 없어 불만이 쌓였던 중에 '흡수통일' 얘기가 나오자 그것(불만)이 폭발한 상황"이라고 전해왔다.

사실 북한은 박 대통령이 작년 초 신년사에서 '통일대박론'을 표명하고, 그해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구상'(드레스덴 선언)을 밝혔을 때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통일=흡수통일'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은 남한에서 쓰는 '통일'이란 용어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그것을 '흡수통일'로 생각하고 있다"며 " 통일 대신 '통합'이란 말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통일'에 대한 북한의 문제제기에 사실무근이라고 강력 부인해 왔는데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언급으로 거짓말 논란을 자초한 꼴이 됐다. 우리 정부와 북한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나 경협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에선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ㆍ경협을 제시하고 있지만 북한이 거부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준위가 정 부위원장 발언 사태로 남북관계 진전에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는 형국이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이 통준위가 출범할 때부터 주의깊게 관찰했다면서 해킹을 통해 통준위가 지향하는 바와 위원들의 언행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통준위에 대해 출범 때부터 부정적으로 보고 아예 상대를 안했다"면서 " 남한 정부가 북한을 상대하는데 통준위를 앞세우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통준위 위상에 대해 출범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기존 통일 관련 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자칫 '옥상옥' 이 될 수 있다는 논거였다. 수십년간 통일부가 전담해 온 남북회담의 기능을 통준위가 대행하기에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더구나 민간 전문가들이 폭넓게 활동하는 민관합동기구인 통준위가 남북 당국간 회담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통준위 구성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위원 중에는 북한에 적대적 행태를 보이거나 보수적인 인물이 적지 않고, 흡수통일을 거론한 인사도 있다. 정 부위원장만 해도 김영삼 정부 시절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내면서 1차 북핵 위기 때(1993년) 강경대응을 주장했고, 주중대사 시절인 1997년 2월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사건을 처리한 보수성향 인물로 북한의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다.

통준위의 모호한 위상과 위원들의 전력이 문제돼 온 상황에서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으로 박 대통령의 통준위를 통한 남북관계 진전 구상은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준위가 '통일' 국정에 발목을 잡는다면 역할을 축소히거나 다른 기관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 '통일' 국정 실천 방향 주목

통준위 위상과 관련한 논란과 함께 박 대통령이 통준위 위원장으로 '통일' 국정의 전면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본인이 통준위 위원장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전략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북 전문가들 중엔 박 대통령이 통준위 위원장이기 때문에 남북관계 관련 언행에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고 북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정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 논란에 북한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대화중단 엄포를 내놓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 '대화 채널'로 통준위를 활용하려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준비위를 중심으로 통일의 비전과 방향에 대해 국민이 마음과 뜻을 모으고 평화 통일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간 통준위의 어떠한 대화 제의도 받아들인 적이 없고 '흡수통일의 전위대'라며 비난을 해왔다.

때문에 북한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통준위 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막후에서 진뒤지휘하는 게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북한의 직접적인 공세를 피할 수 있고 남북관계도 융통성있게 풀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정부의 집권 3년차인 올해는 현 정부의 성패가 달린 만큼 중요한 해이다. 박 대통령이 전력하고 있는 남북관계는 경제와 더불어 중요한 국정 과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통일'과 '경제'라는 국정의 양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통준위의 위상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박 대통령이 향후 통준위를 어떻게 이끌어가며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갈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