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메모 속 로비 리스트 추적… 미스터리·숨겨진 증거들 확보성 전 회장 자살 직전 친박 핵심에 '최후통첩' 했다.검찰 정권 핵심실세 원칙 수사 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이 있는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청사에 23일 밤 불이 켜져 있다.
경남기업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고 성완종 전 회장의 로비 내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와 관련된 여러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주변 등 일부에서는 "검찰이 성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인사들을 추가로 확보하고도 정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사건의 축소를 논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찰 안팎에서는 성 전 회장이 마지막 메모를 남긴 점을 들어 "그 메모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와 관련된 부분을 주변에 지시해뒀다는 말이 무성한데 검찰이 아직 아무것도 못 찾았다고 밝히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 그리고 검은 커넥션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장기화될 조짐이다. 수사가 장기화 될 경우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치권은 이런저런 이유들을 내세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핵심 관계자들 중 일부가 성 전 회장과 연결된 정황이 일부 드러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성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여야 모두 서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핵심 측근인 이용기 수행비서가 지난 23일 서울 중앙지검에서 소환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 전 회장 메모의 비밀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의 형식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 모두 특검의 필요성에는 한 목소리로 동의하고 있지만, 특검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선 치열하게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24일 현행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빨리 구성해 모든 의혹을 규명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상설특검법이 아닌 별도의 합의에 따른 특검을 구성하자는 기존 요구를 거듭 내세우고 있다.

성 전 회장 수사를 놓고 여·야 모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다. 성 전 회장이 생전에 관리했다는 일명 '비밀장부'에 추가로 누구의 이름이 올라 있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정치권이 슬며시 몸을 사리는 사이 검찰 수사도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검찰은 '비밀장부'를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이완구 총리만 물러나는 선에서 이대로 수사가 마무리될 조짐도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 증거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 2인방을 잇따라 긴급체포하는 등 성 전 회장 측근 인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측근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면서 정·관·재계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이 특정인물에 대한 진술을 하거나 리스트 내용을 검찰에 제공할 경우 정치권 인사들의 줄소환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남기업 수사와 관련, 야권은 특검론을 내세우며 여권을 압박하고 있고 여권은 노무현정부 시절 정권 핵심부와 성 전 회장의 유착관계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생전에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비밀장부'와 관련해 검찰은 경남기업 등 압수수색을 통해 성 전 회장의 비밀장부를 찾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의 핵심인 '비밀장부'의 행방이 묘연함에 따라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성 전 회장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놓고 여러 추측과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현재 여·야권 핵심인사들과 각별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메모에는 현 정부 실세들과 여권 핵심 관계자 등 여권인사들만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성 전 회장이 현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동시에 검찰수사를 정면으로 반박할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치권 특정 인사들과의 연결고리를 집중 추궁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성 전 회장의 마지막 메모는 이 같은 검찰 수사 방향에 반발함과 동시에 여론에 고발하는 성격일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성 전 회장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 로비장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비밀장부를 찾지 못하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권 실세 8인을 넘어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할 명분이 좁아지게 된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열흘째 계속 거의 모든 강제수사 방법을 동원해 비밀장부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사 변수로 경남기업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부분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비밀 장부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특별수사팀 출범 직후 성 전 회장 주변 인사들은 "성 전 회장이 사망 며칠 전부터 리스트 8인에 대한 금품전달 사실을 확인하러 다녔고, 관련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도 기록해 뒀다"고 증언했다.

금품로비 관련 물증을 어딘가에 남겨뒀고, 이는 성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준호 전 상무나 이용기 경남기업 부장이 보관 중일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 전 상무는 지난 21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내가 알기로는 그런 장부는 없다"고 했고, 이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22,23일 잇따라 소환된 이 부장도 비밀 로비 장부의 존재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존재 자체가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 향후 검찰 수사의 끝이 우려되고 있다.

청와대-친이계-검찰의 연합

검찰이 이른바 '비밀장부'의 실체를 실제로 확보하지 못했는지 여부를 놓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미 상당한 정황증거를 확보했음에도 이를 고의로 배제한 채 수사방향 돌리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거의 2개월 전인 2월 중순부터 정치권에 금품을 전달한 내용에 대한 폭로를 준비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검찰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비밀장부'를 뒀다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성 전 회장은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남기업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한 시점이 3월 18일인 점으로 미뤄 볼 때 검찰 내사 단계에서 수사를 인지한 성 전 회장이 일찌감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였던 금모(34)씨는 지난 23일 한 언론을 통해 "(성 전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행 기사를 스크랩해 달라고 해 지면에 나온 관련 기사, 특히 사진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일자별로 뽑아 줬다"면서 "그게 2월 중순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10건 정도의 관련 기사를 찾아 프린트해 준 뒤 성 전 회장이 나중에 해당 기사를 다시 찾을 가능성도 있어 기사를 파일로 만들어 자신의 이메일로 보냈다는 것이다.

금씨는 "최근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메일 발송 및 수신 시점이 '2월 14일 오후 7시'였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날보다는 이전이라는 얘기다. 이는 성 전 회장이 이미 2월 중순 이전부터 자신의 신상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올 것을 감지, 과거 자신이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내용을 복기, 정리해 왔을 가능성을 높인다.

이때는 참여연대와 정의당 등이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실패와 관련해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감사원도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자원외교 참여 기업에 대한 수사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앞서 성 전 회장은 자살 당일인 지난 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박 대통령과 독일 방문을 앞두고 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1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금씨는 "기사를 스크랩해 줄 당시에는 그게 김 전 실장과 관련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에는 성 전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성 전 회장이 전화 통화를 하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진 뒤에는 어느 곳에서 어떤 내용으로 기사가 나왔는지 인터넷 매체까지 일일이 챙겨 보며 보도 방향에 촉각을 세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금씨는 "어디에는 (기사가) 안 나왔다고 보고하자 '청와대에서 막았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자살 직전 폭로 인터뷰를 한 동기가 거기에도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8인 중에서 그나마 사법처리 가능성이 높은 대상으로는 시점과 장소ㆍ금액, 돈 전달자가 특정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총리 2명이 꼽힌다.

하지만 이 총리마저도 성 전 회장과 단 둘이 만나 3,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주장이어서 한계가 있다. '독대의 순간'을 복원하지 않는 한, 실제로 돈이 전달됐다고 입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시점(2012년 11~12월)과 액수(2억원)는 공개됐지만, 그 외에는 "사무실에서 줬다"는 주장뿐이고, 김기춘ㆍ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사실상 공소시효가 지났다.

유정복 인천시장(3억원)과 서병수 부산시장(2억원)은 금액만 달랑 메모에 적혀 있고, 심지어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아예 금품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금액 전달 시점 등이 적시된 기록이 없다면 수사 목적인 형사처벌에 접근할 통로는 사실상 막히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의 8인에 대한 처벌이 제한된다면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또 다른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할 명분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수사팀은 증거인멸 수사를 통해 일종의 '우회로'를 찾고 있다. 관련자 직접 진술이나 자료 확보가 어렵다면, 이들이 감추려 했던 증거들을 찾아내는 '역추적'을 통해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속히 확보하지 않으면 변질되거나 인멸될 수 있어 보이는 자료들부터 선제적으로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이 메모와 음성파일에서 거론하지 않은 또 다른 증거나 수사 단서들이 대거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완종 리스트의 8인을 넘어, 또 다른 정·관계나 금융권 인사들을 향해 수사가 확대되느냐의 관건도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묘한 긴장감 속 눈치작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23일 회견에서 '성완종 특검'은 현행 상설특검법을 따르지 않는 별도 방식으로 실시하되, '자원외교 의혹' 은 상설특검으로 수사하자고 요구한 데 대해 "자가당착이자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우리는 여야가 합의한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하자는 것이고, 야당이 이를 원하면 오늘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면서도 "야당이 다른 소리를 하는 것으로 봐서 특검 합의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이번 사건은 권력의 불법정치자금, 대선자금과 직접 관련된 사건이자 대통령이 수사받아야 할 피의자들의 뒤에 서 있는 사건"이라며 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과 함께 '별도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문 대표는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상설특검)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정대상 1호가 사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정국이 경색되고 4·29 재보선까지 겹치면서 폐회가 12일 밖에 남지 않은 4월 임시국회 운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7년 단행된 '성완종 특별사면'의 특혜 의혹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는 현 정권이 야권 최고핵심을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향후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문 대표가 특사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점을 들어 여권에서 "성 전 회장 특사에 문 대표가 깊게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문 대표는 최근 긴급 회견을 자청, '성완종 특사'의 책임을 후임인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돌리는 발언을 하며 반박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연일 인수위에서 부탁한 주체와 배경을 정확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사 상황을) 아는 사람이 문 대표 아니냐. 그걸 안 밝히려면 어제 왜 기자회견을 했느냐"고 지적한 뒤 "문 대표는 성 전 회장에 대한 구체적인 특사 이유를 밝히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성 전 회장의 사면을 주도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양윤재 전 서울시부시장 사면 개입 의혹 보도 등을 언급, "성 전 회장 사면에 이 비서실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관여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제 특사 논란의 해명 책임은 여권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치권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도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

향후 '성완종 리스트'수사는 금품로비 의혹과 증거인멸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투트랙 수사'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증거 인멸 의혹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수사 상황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 수사가 두 갈래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신속하게 확보하지 않으면 변질, 인멸될 가능성 있는 자료부터 선제적으로 수집하고 있다"며 "수사팀이 찾고 있는 증거가 폐기된 증거인지, 은닉돼 있는 것인지, 원래 없었던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22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성완종 리스트가 불거진 이후 당사자들의 대응을 보면서 국민은 '인면수심'에도 못 미치는 '철면흑심'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이기도 한 김 전 지사는 이날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역 중견언론인 모임 '세종포럼' 초청 간담회에서 "정권 때마다 정치 부패 스캔들, 정치권 사정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현직 국무총리에,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전원, 집권 세력의 핵심 인사가 대거 연루된 것은 처음"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김 전 지사는 검찰 수사와 관련, "(검찰이) 현직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또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국민이 신뢰할지 회의적"이라며 상설특검의 수사 착수를 촉구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