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파문'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정면 충돌…현재권력-미래권력 2R 승부 조짐

박근혜 대통령과 새정치 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성완종 사면' 盧정부 책임 부각… "철저 수사" 강조
문 대표 "성완종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몸통… 박근혜정부 심판할 것"
4월 재보선 야당 참패로 文추락… 朴국정 동력 얻어
'성완종 사면' 후폭풍… 차기 대선 관련 '朴-文' 2차전 조짐

0 대 4. 지난달 29일 전국 4곳에서 치러진 4ㆍ29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패했다. 전승 내지 최소 2개 지역에서 승리를 장담하던 새정치연합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그에 따른 후폭풍은 컸다. 당장 선거를 진두지휘한 문재인 대표 책임론이 불거졌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도 급락했다. 천정배 의원을 진원지로 하는 '호남 신당론'은 벌써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여권은 4ㆍ29 재보선 압승에 상당히 고무된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정국 주도권을 잡은 만큼 경제살리기와 각종 개혁 등 현안에 속도를 낸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간다는 복안이다.

청와대는 4ㆍ29 재보선 결과를 '경제를 살리고 정치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으로 해석하고, '성완종 특사' 논란의 진실규명과 정치권 부패 관행 척결 등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표는 "이번 선거가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며 강력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여야가 '강(强) 대 강(强)'으로 대치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문 대표 측 간에 '성완종 사면 수사'를 둘러싸고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노동절인 1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표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반격의 초강수를 두고, 박 대통령도 부패척결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박 대통령-문 대표' 간의 힘겨루기는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현재권력(박 대통령)과 미래권력(문 대표) 간의 '한판 승부'가 이미 시작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4ㆍ29 재보선 '박-문' 격돌

4ㆍ29 재보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작심한듯 야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단행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면의 특혜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정치권의 금품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과거부터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 것.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지난달 27일 귀국한 박 대통령이 건강 이상으로 와병 중에 밝힌 대국민 메시지는 선거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성 전 회장 사면에 대한 '철저 수사'를 주문한 것은 사실상 야당과 문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과 2007년 12월 두 차례 사면을 받았다. 문 대표는 2005년 청와대 민정수석, 2007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4월 초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국이 '성완종 블랙홀'에 빠지고 성 전 회장의 55자 메모에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4ㆍ29 선거판세는 야당에 유리한 쪽으로 기우는 양상을 띠었다. 정책선거를 지향하던 새정치연합은 선건전략을 '박근혜 정부 심판'으로 전격 선회했다.

그러자 여권은 노무현 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사를 문제삼아 맞불을 놨다. 동시에 문대표를 비롯해 친노(친노무현) 인사가 성 전 회장 사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여권의 선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본 듯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결과 응답자의 84%가 여당 정치인들이 성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봤다. 또한 성 전 회장이 야당 정치인들에게도 금품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는 응답이 82%였다. 다시말해 국민은 성 전 회장이 여당은 물론, 야당 정치인에게도 금품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4ㆍ29 재보선에서 결정적으로 새정치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반면, 문 대표 등 친노 인사들이 성 전 회장 사면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재보선의 이슈가 되면서 선거를 진두지휘한 문 대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고, 재보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성 전 회장 사면 논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간 '진실게임' 양상을 띠면서 더 주목받기도 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지난달 28일 대국민 메시지로 인해 노무현 정부에서 단행된 사면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여론도 요동쳤다. 선거 결과 "박 대통령이 몸통"이라 했던 문 대표는 참담하게 패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철저 수사'의 칼 끝은 여야는 물론, 노무현 정부, MB정부까지 겨누고 있다.

'성완종 사면' 수사 '뇌관' 되나

박 대통령이 재보선 직전 천명한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청산은 구두언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4ㆍ29 재보선 완승에 힘입어 비리 척결이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박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서 직접 거론한 현재 진행중인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어느 누가 이(성완종) 사건에 연루되었던 간에 부패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 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을 이뤄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특검도 수용할 것임을 재차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차례의 사면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성 전 회장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는 것이므로 제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성 전 회장 사면 문제를 언급하면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상황에따라 특검도 불가피하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성 전 회장 사면 문제를 꺼낸 것은 우리 정치의 비리, 부패 관행 척결이라는 당위(當爲)에 따른 것이지만 또 다른 정치적 목적도 함의된 것으로 해석한다. 즉, 성 전 회장 사면 문제를 일례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해 국정 운영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여야의 견제를 벗어나 집권 3년차 국정을 소신있게 펼치려는 뜻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성 전 회장 사면이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만큼, 실제 사면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진게 밝혀진다면 현재 문 대표를 포함한 친노가 주축인 야권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야권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세나 국정 발목잡기도 약화되기 마련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성 전 회장의 사면 주체와 로비 등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결국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친노 인사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새정치연합은 "2005년 5월 성 전 회장 1차 사면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이고, 2008년 1월 2차 사면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측이 급하게 요구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재나 자민련은 "당시 그런 부탁을 할 상황도 관계도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MB 측도 "(성 전 회장) 사면 결정은 노무현 정부가 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은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최근 성 전 회장 사면과 관련해 사정기관과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친노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하고 MB정부 사람도 관여했다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들린다.

친노 인사로는 노 전 대통령 친척인 L씨가 우선 꼽힌다. L씨는 노 정부에서 여러 번 구설에 오른 인물로 성 전 회장과의 인연은 영남지역 건설업자 J씨를 통해서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출신인 J씨는 건설업을 하면서 성 전 회장과 알고 지냈고, 이회창 총재 시절인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김대중 정부 사람은 물론,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관계 마당발로 통한 인물이다.

충청 출신인 성 전 회장은 영남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면서 친노 인사들과 알고 지냈으며, 2000년대 초 경남기업을 인수하고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친노 인사들과 더욱 가깝게 지냈다. 성 전 회장은 부산 D술집에서 친노 인사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그 중에는 청와대에 근무한 이들도 있고, 정치권에 진출한 인물도 여럿이다.

법조인 출신 친노 인사 C씨도 성 전 회장 사면과 관련해 자주 거론된다. C씨는 노 전 대통령이 수도권에서 변호사를 할 때 함께 지낸 인물로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고 문 대표와도 친하다. 성 전 회장 사면에 중간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충청권 출신 친노 중진 L씨도 성 전 회장 사면과 관련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L씨는 성 전회장과 같은 충청 출신으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 2차 사면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된 후에 이뤄져 MB정부 인사들도 성 전 회장 사면에 관련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친노 인사들은 성 전 회장 2차 사면이 MB 측의 부탁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은 MB정부 핵심 실세이자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성완종이 뭐 중요하다고 내가 개입하나?" 며 관련설을 부인했다.

원세훈 전 전 국가정보원장은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에 대해서는 나도 사면을 부탁한 것이 사실이지만 성 전 회장은 모르는 사람이고, 사면을 부탁할 일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성 전 회장 사면에 대한 칼끝은 노무현ㆍMB정부를 향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와 친노 인사들이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기 대선 관련 '박-문' 2차 대전?

올 초부터 대선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표는 대선주자 부동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2ㆍ8 전당대회에서 새정치연합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에는 줄곧 25∼30% 지지율을 유지하며 2위 대선주자와 15% 안팎의 격차를 보여 왔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없을 경우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야권 주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여권에 문 대표에 필적할 만한 후보가 뚜렷하지 않아 차기 대선에서 문 대표가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느냐가 변수이지만 문 대표가 야권의 대표 대선주자라는 데 이견이 없다.

문 대표에 정치적 힘이 실리면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가장 강력한 상대로 문 대표가 꼽힌다. 실제 문 대표는 2ㆍ8 전대에서 당 대표가 된 뒤 중도ㆍ보수적 행보로 외연을 넓히면서도 박 대통령과는 분명한 각을 세워 왔다.

문 대표는 3월 17일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국민의 삶을 해결하는데는 실패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이 파기되고 오히려 재벌과 수출대기업 중심의 낡은 성장정책이 이어졌다"고 정부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전력하고 있는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낮게 평가했다.

문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로서 위상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한 박 대통령과 갈등도 더욱 첨예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문 대표는 4ㆍ29 재보선을 전후해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문 대표는 성 전 회장 사면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정부 심판" "박 대통령이 몸통" 등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마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까지의 정치 스케줄을 볼 때 이런 현상이 지속 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와 문 대표에게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과 문 대표의 잠룡 위상이 결정될 수 있는 정치 이벤트여서 양측은 성 전 회장 사면과 같은 예민한 사안을 갖고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을 전후해 불거졌던 '사초(史草)'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대선 때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노무현 -김정일' 정상회담 논란은 이후 문 대표가 "대화록 공개"를 주장하면서 사초 논란을 불러왔다. 당시 재판에서 관련자들은 무혐의의나 경미한 처벌로 끝났으나 '본질'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견해이다. 즉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은 북한이 갖고 있어 상황에 따라 차기 대선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한국에서의 사초 논란이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은 한국에서 논의된 것과 다르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대화록 원본이 공개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북방한계선) 발언의 실체도 밝혀져 친노 인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북한' 변수는 존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정부의 성패가 달렸다고 보고 국정 현안 중 남북관계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려고 한다. 북한이 장차 한국 정치, 또는 대선에 어떤 입장을 취할 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정치적 길항관계에 있는 만큼 차기 대선까지 지속적으로 정치적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성 전 회장 사면 논란과 4ㆍ29 재보선 참패로 문 대표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만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그럴 경우 박 대통령과 문 대표의 갈등, 승부도 심화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 국정을 원만하게 수행해 지지율이 상승하면 차기 대선에서 여권에 유리한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반대로 국정에 난맥을 보인다면 문 대표에게 유리한 대선 지형이 조성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문 대표 양측은 서로 유리한 구도를 선점하기 위해 '공격과 방어'라는 카드를 끊임없이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지난달 28일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해 일전을 예고했다

'박근혜-문재인'의 2ㆍ3차전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