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비노 갈등 심화… 딴 길 가나4·29 재보선 참패 후폭풍 거세… 비노, 친노 독주 제동·文 책임론호남 신당론 꿈틀… 분당 가능성도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비난 발언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힌 주승용 최고위원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주승용, 이종걸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이 4·29 재보궐선거 참패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당내 계파 간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친노(친노무현) 측과 비노(비노무현) 진영 간에 문재인 대표 책임론과 당 운영, 호남 대응책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이는 가깝게는 당내 주도권 다툼이지만 내년 4월 총선 공천 문제, 나아가 차기 대선과도 연계된 것이어서 양측 간 양보 없는 대결은 한동안 파열음을 내며 지속될 전망이다.

새정치연합 친노-비노 간 갈등은 8일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으로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주 최고위원이 4ㆍ29 재보선 패배에 따른 문 대표의 책임있는 입장을 요구한 데 대해 친노 강경파인 정청래 최고위원이 독설을 쏟아낸 게 발단이 됐다.

주 최고위원은 그간 "지도부가 책임있는 조치를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들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최고위원은 "사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책임질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친노 패권주의 청산' 등 문 대표의 답변을 요구했다. 이어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문 대표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며 "이번 주는 발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정 최고위원은 "공개·공정·공평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 처럼 공갈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단결에 협조하는 게 좋다"고 독설을 퍼부으며 면전에서 정면 공격했다.

그러자 주 최고위원은 "치욕적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살지 않았다"며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할 말은 아니다. 저는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고 격분했다. 주 최고위원은 이어 "저는 사퇴합니다"고 '폭탄선언'을 한 뒤 지도부 총사퇴론을 주장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8일 주 최고위원은 당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당 안팎에서는 주 최고위원과 정 최고위원 간의 공방도 문제이지만 문 대표의 리더십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이나 호남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문 대표 책임론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호남의 3선 박주선 의원은 지도부 사퇴론을 거론하면서 수십명이 탈당할 가능성까지 있다고 언급했다.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도 "무조건 사퇴하라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라면서도 "정치의 요체는 책임이다. (대책을 마련해보고) 안된다면 물러나 다른 사람한테 기회를 주는 것도 지도자의 자세"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안팎에서는 4ㆍ29 재보선 참패 결과보다 그 내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호남 민심이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 중심의 당 운영에 등을 돌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호남의 중심인 광주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완패하고, 호남 출신이 상당수인 서울 관악과 경기 성남에서도 패한 것은 문 대표 체제에 대한 호남 민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표의 '호남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표는 지난 4일 당 대표로서는 이례적으로 '낙선 사례'를 자청하고 광주를 방문했다. 재보선 결과로 드러난 호남의 '친노 반감' 정서를 되돌리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도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이날 광주를 찾은 문 대표는 "광주시민들 또 국민들은 우리 당에 아주 쓴 약, 아주 아픈 회초리를 주셨다"면서 "대표인 저부터 기득권을 내려놓는데 앞장서서 우리 당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욱 크게 혁신하고 더 크게 통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의 반응은 냉랭했다. 일부 광주 시민들은 광주 공항에서 '문재인은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우롱하지 말라', '호남이 봉이냐', '새정치연합은 각성하라'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문 대표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문 대표의 호남 방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전 최고위원은 "재보선 패배 후 광주에 낙선 인사를 가겠다고 하는 것도 문 대표가 독단적으로 정했다"며 "정무적 판단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판단이다. 이런 결정이 어디서 이뤄지는지 분명히 찾아 바로잡지 않으면 실패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비공식 라인에 휘둘리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표의 행보가 최고위원회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속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의사소통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 대표가 당이라는 공식 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부 친노 진영 인사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비노 중진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정대철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지난 주부터 비노 인사들을 만나며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다.

정 고문은 7일 오전 재보선 패배로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던 김한길 전 대표를 만난 데 이어 오후에는 문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던 박주선 의원과 만났다. 또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비롯해 당내 대표적인 반노 인사로 꼽히는 조경태 의원, 그리고 천정배 의원과도 회동을 가졌거나 만날 예정이다.

정 고문은 이들과의 만남과 관련해 "재보선 패배 후 문 대표가 이끄는 당의 체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제각각 '따로 한번 만나 당의 미래를 논의해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 찾아오라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천 의원과의 회동에 대해선 "3일 전 천 의원과 통화를 하고 조만간 회동을 갖게 됐는데, 서로 현재 야권의 상황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서도 "천 의원이 지금 명확하게 신당을 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도 아니고 하니 두루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고문은 문 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당을 바꿀 것인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권 창출의 가능성을 볼 수 없다면 외부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고문은 재보선이 끝난 직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정치인은, 또 정치단체는 선거에서 패배하면 분명히 책임 지는 모습을 갖춰야 좋다"며 "내가 문재인 대표라면 그만두겠다"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간 정 고문은 친노 중심의 당 운영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 당 안팎에선 그런 정 고문의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정 고문이 과거 신당 창당의 필연성을 내비친 바 있고, 천 정배 의원이 호남을 중심으로 한 신당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야권발 신당론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정치권 일부에선 새정치연합이 계속 친노 세력에 의해 좌우될 경우 분당이나 신당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문 대표 체제의 새정치연합에 그 어느때보다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윤지환 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