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비리 척결 '초강수'… 성공하면 국정탄력, 실패하면 레임덕 올수도박근혜 대통령 측근 인사 비리 내용 접하고 크게 실망 소문여야 막론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국정운영 동력 확보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문제 제기… "국민뜻에 부응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단단히 뿔났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공무원연금법 개혁안 처리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고 일을 맡긴 측근 인사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해 마련한 공무원연금법 개혁안에 대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하는 정치인들과 정치가 그런 국민의 염원을 거스르는 것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검찰은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반드시 도려내겠다는 각오로 전력을 다해서 국민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해 살벌한 '검풍(檢風)'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법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강도 높게 요구한 것은 집권 3년차 기로에 선 국정을 다잡고, 여야 정치권과 당청 관계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승부수가 성공하느냐 여부에 따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탄력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레임덕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승부수를 내놓은 배경과 향후 전개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조망해봤다.

'뒤통수 맞은' 박 대통령 격로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인 4월 초 쯤 자신의 측근 인사들이 국정에 앞서 사익을 추구하거나 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접하고 크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친박(친박근혜) 인사들로 인해 국정운영에 부담을 갖고 있던 터에 측근들의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자신이 믿고 발탁한 인물에 대해선 실망을 넘어 격로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박 대통령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적잖이 실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슨 큰 비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사심(私心)'을 가진 게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보 관계자들은 그'사심'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모르거나 함구하고 있지만 '남북통일' '국민복지' 등 국가를 위해 쓰여야 할 재원에 대해 다른 용도로 개인적인 욕심을 드러낸 정황이 포착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는 박 대통령이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말 보기 드물게 사심 없이 일하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박 대통령의 실망이 상당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이와 관련, 최근 이완구 전 총리가 물러난 배경에 대해서도 다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전 총리가 2013년 4월 충남 부여 청양 재보선 때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의혹과 관련해 말을 자주 바꿈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결국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청와대와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는 이 총리가 다른 이유로 물러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는 박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달 16일 김무성 대표와 40여분간 독대를 한 것과도 연관돼 회자됐다.

당시 독대를 마친 김 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과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힌 뒤 이 총리의 거취는 박 대통령이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고 알렸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총리를 사퇴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 결정은 박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과 달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의혹이 있다면 "의혹이 밝혀진 뒤 입장을 정하겠다"고 하는 것이 박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총리 사퇴의 전후 과정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 사실상 이 전 총리 카드를 회수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김 대표와의 독대에서 이 전 총리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전 총리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이 전 총리를 '팽(烹)'한 진짜 이유가 '3,000만원 의혹'이 아니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의 '사심' 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이 전 총리를 발탁하는데 김 전 실장이 관여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 전 총리가 마지못해 김 전 실장의 사심에 동조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에 앞서 측근 인사 외에도 일부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해 광범위한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한듯 박 대통령은 4일 중남미 순방 후 1주일간의 와병을 털고 공식업무 복귀 첫 일정으로 잡힌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을 대신하는 정치인들과 정치가 그런 국민의 염원을 거스르는 것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성완종 파문)도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사익 추구를 오히려 정당성 있게 만들어주면서 그것을 방조해왔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적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의 낡은 정치를 국민이 원하는 정치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여야를 막론하고 비리가 있는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해선 예외없이 실체를 밝혀 법적 조치를 취할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박 대통령의 실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이 실장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성 전 회장과 수십 차례의 전화통화 등 의혹이 제기되는 만큼 스스로 해명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고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최측근인 이병기 실장의 예를 보여줌으로써 다른 공직자와 정치인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밝혀나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연금 논란의 이면 경고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인상 등에 합의한 것은 국민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번 공무원 연금 개혁안 마련 과정에서 실무기구가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는데 약 2천만명 이상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등 제도변경을 한 것은 그 자체가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은) 해당 부처와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불만을 나타낸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론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불합리와 미비점을 지적했지만 실제는 개혁안을 밀어붙인 여야 대표단의 행태(속내)를 강하게 질책했다는 것이다.

즉,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따르면 수조원의 재원이 필요한 데 이에 대한 대비책 없이 무리하게 합의를 추진해 결국 그 책임을 박근혜정부가 떠안게 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작 화를 낸 것은 남북통일이나 국민복지 등에 쓰여야 할 재원에 대해 사심을 가진 여야 정치권이 뜻대로 되지 않자 그 재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은 점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을 전후해 '통일'과 '복지'를 일관되게 주창했고, 그에 필요한 재원도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으로 상당 부분 확보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재원 활용은 '사심'을 가진 정치권과 공직자들에 의해 번번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금융기관이 사심을 가진 자들에 의해 재원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재원에 자물쇠를 채웠기 때문이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국정이 기로에 선 집권 3년차에 남북통일과 국민복지라는 대의를 실천하기 본격적으로 재원 활용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심을 가진 정치권이 욕심을 드러내면서 국제금융기관이 제재에 나섰다. 결국 '사심'이 무산되자 정치권이 재원을 엉뚱하게 공무원연금에 결부시킨 것이 최근 연금 논란의 실체라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취임 초부터 가장 역점을 둬온 '통일과 '복지'라는 국정의 양대 축이 제동이 걸린 셈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국민의 염원을 거스르는 것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라며 비판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천명한 것은 공무원연금 논란 이면에 감춰진 정치권의 '사심'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검찰에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반드시 도려내겠다는 각오로 전력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여야, 측근 여부를 막론하고 비리와 연관된 인사에 대해선 엄정한 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심'을 가진 인사들에 대한 경고이자 박 대통령이 꺼낸 승부수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이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야권의 반발에다 여권 안에서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승부수가 성공하느냐 여부에 따라 박근혜정부는 국정에 탄력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역풍을 맞아 레임덕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의 향배가 주목되는 정국 상황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