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당 주도권·총선 전면전'유승민 사퇴론' 놓고 친박-비박 공방전청와대, 친박에 힘 실어… 친이·비박 반격

2일 친박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열린 뒤 일부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이유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내홍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는 분위기다. 친박(친 박근혜)계가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이유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한 데 대해 친이계ㆍ비박계가 반격에 나서면서 당내 친박-비박 간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계파 간 대립은 표면적으로 시행령의 국회 수정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지만 여러 상황을 따져보면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다. 가깝게는 '유승민 사퇴론'을 둘러싼 공방에서 보듯 당내 주도권 다툼이지만, 멀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비전을 벌이는 성격도 띠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2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최근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당 원내지도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김용남 김진태 김태흠 이장우 의원 등 27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는 제정부 법제처장이 강연자로 참석, 최근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담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강화된 수정권한이 강제성과 위헌성을 띤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김태흠 의원은 "지난 5월 1일 위헌 시비가 있었음에도 이런 내용을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졸속으로 합의해준 부분에 대해 원내대표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사견이지만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런 논란을 초래한 부분과 졸속 합의해준 부분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포함해, 책임지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장우 의원도 "식물국회에 이어 식물정부를 야기한 우리 당의 원내대표는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협상력과 정무적 판단,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미스해왔고 당ㆍ정ㆍ청 갈등의 실질적인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혼란스럽고 국회가 혼란에 빠진 것에 대해 유 원내대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 의원들은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ㆍ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와 친박을 향해 반격을 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특히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청와대가 한 일들을 보면 나는 정말 이 정부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당정청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국민불안 해소 등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기인데 청와대가 앞장서서 정쟁을 유발하는 발언이나 계속 쏟아내고 있다"고 청와대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이 의원은 친박을 겨냥하며 '유승민 사퇴론'도 강하게 반박했다. 이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원내대표 단독으로 추진했나. 의총을 열어서 추인 안했나. 권한 위임 안했나. 그러면 공동책임 아닌가"라며 반문하면서 "비판할 것이 있으면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든지 아니면 당 지도부가, 최고위가 원내대표를 격려해야지 그만두라고 할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친이계 정병국 의원도 이에 가세해 "청와대에서 당청 협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냐"면서 "계파 간 모임으로 규정짓는 모임에서 정부의 책임 있는 제정부 법제처장이 민감한 시기에 나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냐. 그건 심각한 문제"라며 청와대와 친박을 향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친박의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번 조항이 강제 지시 성격이 있다면 헌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게 아닌가 싶어 중대한 문제라 생각한다"며 "국가 근간을 흔드는 문제를 잘 몰라서 거기까지 이르렀다면 더 논의해서 바로잡는 게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에 앞서 한 라디오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거부권 행사가 지나치다고 말한 것은 야당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런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쭉 있어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비박계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 원 내대표의 협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당 내홍이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김 최고위원은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은 이미 정략적, 공격용으로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순진했고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괴물법'이 탄생했다"며 "여러 협의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를 통해) 올바른 정보가 공유되지 못했다면 그 문제는 문제삼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여야가 다시 (국회법 개정안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며 "국회 안에 충분히 그런 협의를 끌어낼 역량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3일, 전날에 이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장우 의원은 MBC라디오에 출연, "당청을 조율하는 게 원내대표 역할인데 도리어 당정청 갈등을 부채질하고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며 거듭 사퇴를 주장했다.

반면 초ㆍ재선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는 2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정치권은 집안싸움과 헤게모니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며 "국회법 개정안 논란은 소모적인 공방을 멈추고 위헌성 문제는 필요하다면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3일 당 최고위원ㆍ중진연석회의 모두 발언에서 "친박, 비박은 없고 오직 우리만 있다. 지금은 당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당부했지만 친박-비박 갈등은 쉽게 수습되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국정 마비가 우려된다며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까지 시사하자 일제히 친박계 의원들의 성토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여권내 주류와 비주류간 헤게모니 쟁탈전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오는 8월이면 박근혜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만큼 청와대는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핵심 과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고, 친박계 역시 비박계 주도의 당 운영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5년 단임제에서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반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1년 2개월 남은 것"이라면서 "청와대로서는 여기서 밀리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현 비주류 대표 체제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공천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상당하다. 때문에 이들이 비박 중심의 지도부 공격에 나선 것은 내년 총선에서 지분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지환 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