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본격화… 당 헤게모니 잡기 싸움 친이계-친박계 충돌총선 대비 정국 주도권 잡기가 권력투쟁 본질'김무성-유승민 투톱' vs 청와대ㆍ친박 갈등 친박계 사정기관 전 정권 비리 수사 친이계 압박

개정 국회법 갈등으로 여권 내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권력싸움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총선을 겨냥한 여권 내 헤게모니 다툼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청와대ㆍ친박계가 뒤늦게 총공세를 펴는 상황을 놓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모종의 노림수를 감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국정운영 주도권은 물론 내년 총선 공천까지 감안한 친박주류와 비박계 간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여권 내부의 갈등은 사실상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비주류 투 톱’을 향한 청와대ㆍ친박계의 경고로 여권 내부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친박 주류 내부에서는 그동안 “비주류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수시로 대통령 흔들기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보좌역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친박계 안팎에서는 “이번 기회에서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권 내 주류그룹이 국정의 주도권뿐만 아니라 당 주도권을 장악해 정치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친이계의 역습 시간문제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모두 수평적 당청관계를 강조해왔는데, 실제로 개헌론 제기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논란 등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여권 내부에서는 친이 친박 공히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국정운영과 관련해 세월호 사건과 ‘성완종 리스트’ 등 연이은 타격을 입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전례 없이 낮아 벌써 레임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친박계 내부에서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내년 4월 총선이 이번 여권 권력쟁탈전의 본질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총선과 관련해 “친이계가 당권을 장악한 이상 차기 총선에서 친박계의 총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다”는 말이 무성했다. 실제로 청와대와 친박계 내부에서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를 통제하지 못하면 공천 과정에서 심각한 불협화음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친박계가 역차별을 받아 불이익을 당할 것이란 불안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내분은 단순히 가상시나리오가 아닌 경험에서 비롯된다. 새누리당은 18,19대 총선 당시 각각 친박계와 친이계가 서로를 한 차례씩 ‘학살’한 적 있다. 친박계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이번 기회에서 권력지도를 바꾸려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김 대표의 최근 발언을 놓고 “결국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는 공석에서 “결국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발언한 적 있다. 현실권력의 힘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지금의 계파간 갈등이 정면충돌에 이르기 전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아무리 여권이라 해도 결국 청와대가 당 문제 간섭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도 수위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점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총선문제가 갈등의 숨은 핵심인 만큼 시간이 지나 총선에 가까워질수록 여권 내 권력투쟁은 격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번 갈등은 지금까지와 여러 측면에서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지난 지방선거를 떠올린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는 김황식 전 총리를 후보를 지명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친이계는 정몽준 의원을 내세워 결국 경선까지 치르는 내홍을 치러야 했다. 선거와 관련해 청와대와 별도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 판단을 한 것이다.

결국 김 전 총리는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가 공천을 쥐락펴락 했기 때문에 청와대도 김 전 총리를 제대로 돕지 못하고 한발 물러나 이 상황을 구경만 해야 했다. 친이-친박계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서울시장은 박원순 시장이 다시 거머쥐게 됐다.

이처럼 청와대는 쓴 잔을 마신 경험이 있어 이번 기회에 당권의 청와대 귀속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가 역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여권 주변에서는 “일단 김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형태를 취하지만 결국 선거정국에 들어서면 친이계는 ‘선거개입금지’라는 불가침 영역 안에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친이계 다루기 청와대 해법

청와대는 표면적인 타협을 원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당권의 장악을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친박계의 공세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국정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한 데 이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ㆍ사회분야에서 중도 쪽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명분이라는 분석이다.

또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을 두고도 “유 원내대표의 사퇴여부가 친박계 주도권 싸움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지 않는 이상 갈등 봉합 가능성은 없다”는 말과 함께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경우 친이 친박계의 권력다툼이 더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그만큼 지금 친이계 내부도 결사항전 분위기로 가고 있다는 말이 무성히 나돌고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포스코 등을 통해 전 정권 사정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와 친이계의 갈등이 지금보다 더 깊어질 경우 유혈사태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미 친이계는 이완구 전 총리를 읍참마속했기 때문에 사정작업에 틈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친이계 내부에서는 유 원내대표를 살리고 청와대와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이에 친이계 좌장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1일 친박계 의원들의 입을 통해 불거진 유 원내대표 사퇴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날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이 의원을 비롯한 이병석·정병국 의원 등 비박계 중진들이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는 불가하다"며 친박계 최고위원들과 정반대의 의견으로 맞서 눈길을 끌었다.

유 원내대표 명예퇴진론에 대해서는 “퇴진이 명예로운 것이 어디있나. 자리를 내놓는 것인데 명예로운 것이 어디에 있겠나”라고 일축했다.

특히 이 의원은 친박계 의원들의 유승민 사퇴론을 “과유불급”으로 정의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너무 지나치면 당을 오히려 사당(死黨)화로 끌고가는 길이 되니 피차 자제하고 국정현안에 몰두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여당 내, 청와대와 당이 갈등하고 정쟁하는 것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춰지겠나. 여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불안하고 여권에 비판적인 국민들은 당의 모습을 한심하게 보지 않겠나”라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이 의원은 이날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건강한 당청관계’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의원들이 당청갈등의 불씨를 유 원내대표에게 돌리고 있는 것과 달리, 주체적이고 수평적인 당청관계를 주문한 것이다.

이와 함께 권력투쟁에 국정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유 원내대표 비판, 이에 반발한 유 원내대표의 사퇴거부 파장이 국회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어 청와대도 중동호흡기중후군(메르스) 등 현안 문제에서 멀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가뭄비상이 심각한 국정 현안으로 떠오른 마당에 여권분열의 위기가 국정운영의 파탄을 낳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또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지난 6월말 여야협상에서 청와대 결산심사를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를 지난 2일 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회의 일정은 청와대의 요청, 김무성 대표의 지시로 무기한 연기됐다.

추가경정예산 집행과 남아 있는 민생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통과를 위해 당청관계가 상호협력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는데 현 상황은 국정운영이 산으로 갈 수도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 사퇴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게 국정운영을 파탄을 자초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에선 이번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촉발된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기화점으로 삼아 당청간 권력지형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집권 1,2년차 때 청와대 중심으로 운영돼왔던 당청관계가 김무성 대표체제 출범과 유 원내대표로 인해 크게 뒤틀렸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당청관계가 계속될 경우 비박계 중심의 여당 지도부와 수시로 충돌할 것이고 결국 2년반 집권 기조의 결과도 낙제점을 면치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친박계 내부에 파다하다.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곧 청와대가 친이계 정면에 칼을 겨눌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 정권 비리와 연루된 기업인 수사를 통해 비리에 연루된 친이계 핵심라인을 본격적으로 사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여권 친이계 사정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청와대 소폭 조직개편이 진행된 직후 사정작업을 본격화 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말했다.

친이계 인사들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사정기관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정권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해 여권 친이계 핵심인사들이 사정기관 관계자들과 여러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친이계 수사에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황교안 총리인데, 황 총리가 청와대의 뜻을 얼마나 잘 수행할지가 관건”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