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미이행 따른 숙청 두려워 탈북김정은 시대 '돈' 최우선… 책임자들'공포정치'압박돈 마련 못하는 간부 숙청 위기감 …기회 틈타 탈출 시도장성·해외간부 10여명 망명 및 국내 입국설… 당국은 부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하는 '돈'과 관계된 당과 군 간부들의 탈북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가 계속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당(黨)·정(政)·군(軍) 간부들의 탈북과 망명이 잇따르고 있다."

<조선일보>는 1일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에서 중국과 동남아 등 해외에 파견됐던 간부와 외화벌이 일꾼 등 10여명이 최근 망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일부는 이미 국내에 들어왔으며 일부는 제3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올 초에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에서 홍콩에 파견됐던 중견급 간부가 가족과 함께 망명,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간부는 "김정은 집권 이후 고사총(대공기관총) 처형 등 잔인함에 공포를 느꼈다"며 "북한 내 간부들은 감시가 심해 탈출이 어렵지만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망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문은 복수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군 고위 장성 1명도 최근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 머물고 있으며, 장성의 탈북 사실을 미국 쪽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의 고위 장성과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에서 근무하는 중견 간부가 망명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전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월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이 '튀다 튀다 보위부까지 튄다'는 말을 했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된 당ㆍ정ㆍ군 간부가 7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사실 북한 당ㆍ군 간부들의 탈북과 망명은 몇해 전부터 은밀하게 진행돼 왔다. 그러한 움직임이 북한 내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이후다.

신문과 국정원은 북한 간부들의 탈북 러시가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질은 다른데 있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은 젊은 김정은이 취약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포정치를 하기 때문에 북한 간부들이 탈북과 망명을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책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데 따라 숙청 등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탈북을 감행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해 탈북을 결행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탈북과 망명에 관계된 북한 인사들이 주로 해외에 파견된 간부이거나 외화벌이 일꾼, 노동당 39호실 관계자 등 '돈'과 관련된 사람들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북한에선 설령 돈과 직접 관련된 인사가 아니더라도 김정은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 숙청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결국 돈이 부족해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결과로 돈에 따라 북한 간부들의 운명도 좌우되는 일면이다.

이들에 앞서 지난해 8월 발생한 북한 조선대성은행 수석대표 윤태영 망명 또한 '돈' 문제가 불러온 사건이다. 당시 김정은은 비밀 통치 자금의 근간이 되는 해외 자금 실적이 떨어지자 해외 주재 금융 담당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그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담당자를 교체하기 위한 조치였다. 윤태영 망명 사건은 그러한 배경에서 터진 것이다.

당시 <중앙일보>는 윤태영이 김 제1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인물로 러시아에서 500만 달러(50억7000만원 상당)의 '혁명자금'(김정은 통치자금)을 가지고 잠적, 제3국 망명을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윤태영은 북한의 비자금 등을 맡겨 둔 러시아 6개 지점 은행의 한 지점 책임자로 북한의 해외 비자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비자금 관리인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다. 또한 윤태영이 제3국으로 망명을 타진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이미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윤태영 망명 사건은 북한으로 유입되는 해외 자금 상황을 표면에 드러낸 것으로 김정은이 '돈'으로 하는 통치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어렵게 된 것을 방증한 증좌이다.

김정은 비자금 담당 노동당 39호실 '음해' 공포

북한 간부들의 탈북ㆍ망명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노동당 39호실 근무자들이다. 노동당 39호실은 북한 지도자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곳으로 관계자들은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은밀한 돈을 다루기도 하지만 스스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가령 송이버섯이나 수산물을 중국에 판매해 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가 끝나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39호실 관계자들의 권한은 크게 축소됐다. 결정적으로 장성택 처형 후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하다시피됐다. 김정은 체제에서 직접 농작물, 수산물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일부 권한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경제 상황이 악화돼 장마당(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농민, 어민들이 본업보다 장마당 거래에 나서면서 39호실 관계자들이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더 큰 어려움은 북한 사회안전부의 감시와 음해다. 39호실 관계자들은 돈을 다루기 때문에 항시 감시가 따랐고, 음해 대상이 되기 일쑤다. 사회안전부의 '음해' 대상에 오르면 꼼짝없이 숙청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이다.

소식통은 "39호실 관계자들은 어느 정도 돈이 있고 권한도 상당해 탈북은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장 두려워하는 게 '음해'다. 한번 걸리면 끝이기 때문에 돈을 갖고 해외로 탈출하려는 이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돈을 다루거나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김정은 체제에서39호실 관계자들의 탈북과 망명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관계 방해하는 북한 보도

한편, 북한 장성ㆍ해외간부의 망명 보도와 관련해 이를 전한 대북 소식통이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강조하고 국정원이 그에 편승한 듯한 행보는 무언가 '의도된' 인상을 준다는 평이다. 특히 이희호 여사의 방북 가능성과 남북관계 해빙이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북한 장성 해외간부 망명 소식은 남북관계에 어깃장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런 행태는 지난 5월 국정원이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평양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총살됐다고 보고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남북은 경색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물밑 접촉이 한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가 정보기관 일부에 남북관계 진전을 바라지 않는 집단이 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일각에서는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직접 챙기면서 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차없이 제거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