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수사' 용두사미 후폭풍… 검찰, 국면전환 카드 꺼낸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 문무일 팀장(검사장)이 지난 2일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석연치 않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비난 여론 증폭
정치권 특검 요구 압박에 청와대·검찰 출구대책 고심 중
사정기관 총동원 기업수사 전방위 확산 시나리오 진행 중
MB정권 방산비리 도마위에… 정·재계 인사들 타깃 될 수도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사건이 사실상 용두사미로 마무리되면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 문무일 팀장(검사장)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발표를 놓고 야권 등 정치권 일부에서는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검찰의 한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비난여론은 청와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성완종 메모가 발견됐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깃털만 건드리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특히 야권 등에서는 "검찰 수사가 본류를 크게 벗어나 정치적 관점에서 진행됐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면서 세간의 시선은 청와대와 검찰의 다음행보에 쏠리고 있다.

청와대와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황교안 총리 주도로 정치권과 재계를 아우르는 전방위 사정정국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성완종 리스트' 특검이 현실화 될 경우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기존에 추진해오던 '부정부패척결' 작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지난 3일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검찰의 '성완종리스트' 수사결과에 대해 반발하며 "새누리당은 성완종 특검 즉각 수용하라"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검찰은 경남기업 수사와 더불어 포스코 비리의혹과 방산비리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시작되는 사정 작업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던 당일 감사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방산비리 수사 2라운드를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이에 일부에서 감사원 국세청 공정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방위 사정에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감사원은 국산 무기체계 개발의 핵심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방산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공개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 11월 두 달간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이 밝힌 ADD 주관 '국방연구개발 추진실태' 감사 자료에는 ▦K-2 전차 체계 시험개발 업무 불철저 ▦무인기(UAV) 개발사업 연구·개발 승인 부적정 ▦해군 함정레이더 연구·개발 부적정 ▦차기 군 위성 운용주파수 소요 결정 부적정 ▦차기 전술교량 연구·개발사업 추진 부적정 ▦개발시험평가 계획 수립 및 실시 부적정 등 각종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들춰져 있다.

특히 감사원은 ADD가 전차 등 무기체계 성능을 시험하는 불량장비를 납품받고도 허위로 합격 판정을 내리는 등 방산비리가 개입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ADD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특정업체로부터 총 80억3,000만원 규모의 '내부피해계측장비'와 '전차자동조종모듈' 등을 납품받아 전차의 성능 검사 업무를 수행했다.

이들 장비는 M-48 폐전차에 장착돼 개발 중인 국산 유도탄의 실사격 시험 때 유도탄이 M-48 전차를 타격하는 과정에서 명중률 오차와 피해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시험용 소모품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ADD는 업체로부터 이러한 내부피해계측장비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진동센서와 제어판이 부착되지 않아 작동이 불가능한데도 기술검사성적서에 작동 상태가 '양호'하다며 합격 판정을 내린 뒤 업체에 11억여원을 부당 지급했다. 이들 장비가 부실하거나 불량할 경우 개발 중인 유도탄의 시험결과 자체가 조작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된다.

내부피해계측장비는 온도와 진동, 충격 등의 피해를 측정하고, 전차자동조종모듈은 전차에 장착해 자율 주행과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블랙박스의 일종이다.

ADD는 또 이 업체로부터 7세트의 전차자동조종모듈을 납품받았으나 실제로는 11세트를 납품받은 것처럼 허위로 관련 서류를 꾸몄다. 현재 ADD는 전차자동조종모듈 11세트에 대한 계약금의 90%를 업체에 지급했고, 나머지 10%를 지급하려다가 감사로 정산 절차가 잠정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도 감사 결과 해군은 일부 함정에 개발이 끝난 신형 레이더 대신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 레이더를 장착하려다 들통났고, 방위사업청은 세계 최장의 전술교량을 만들기로 하고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으나 시험 과정에서 교량이 6차례나 전복돼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군은 감사가 일부 왜곡되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는 입장이다.

ADD는 이날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내용 중 왜곡된 부분이 있어 지난달 16일 재심의를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ADD 관계자는 "감사원의 발표에 대해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하고 설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일단 재심의를 신청했으니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우리가 따로 언론을 통해 밝힐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또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방산비리 수사를 뿌리부터 시작해 정·관·재계로 확산할 계획이다. 최근 검찰이 '율곡비리'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은 '율곡비리'사건 때 로비를 한 거물 방산업자 정의승(75)씨다. 청와대는 정씨가 방산비리의 한 축이며 그와 연결된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보고를 받고 그에 대한 수사를 하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정씨에 대한 수사가 인지사건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지난 방산비리 수사 때 그와 관련된 보고가 청와대에 전달됐다는 말이 무성하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지난 2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국외재산도피), 외국환거래법위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합수단에 따르면 정씨는 유비엠텍 등 방산업체를 실제로 소유하며 받은 수수료를 싱가포르 등 해외 조세 회피처에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한국 군 관계자와 독일의 군수업체 M사 등과 이면계약을 해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단은 그에 제기된 다른 의혹도 살펴 혐의를 추가할 방침이다. 정씨는 2011년 독일 군수업체 M사 싱가포르 지사와 함께 한국 장교들을 동남아 휴양지에 초청하여 향응과 고가의 선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이 사안이 문제 되자 "독일 M사 본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해군 관계자들에게 로비한 불법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의 해군 공식 서한을 받아 달라"며 안기석 전 해군 작전 사령관에 1억 7,500만원을 건넸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율곡비리 사건은 군전력 현대화 사업인 '율곡사업'을 추진하며 당시 국방부장관과 장성들이 뇌물 비리에 연루된 사건으로 1993년 감사원이 율곡사업 비리에 관련된 관계자를 고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정씨는 '학산실업'을 운영하며 군 관계자에게 22억4,000여만원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았고 현역 군인 등 43명이 처벌을 받았다. 본인도 3억원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그에 대해 다시 수사를 시작하자 청와대 주변에서는 "사정기관이 그와 연결된 정치권 인사와 군 고위 인사들을 포착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검찰 칼끝 정치권 정면 겨냥

부정부패척결 작업으로 방산비리와 함께 조사를 받아오던 포스코 비리 의혹도 어디까지 확대될지 관심으로 모으고 있다.

포스코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지난 3일 오전 7시부터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경북 포항의 동양종합건설 본사와 이 회사 대표 자택 등 6곳을 압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자료, 해외 공사 수주 관련 내부 문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동양종건이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이 맡은 국내외 공사에 하도급업체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대표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일 포스코건설의 인도 철강플랜트 공사에 관여한 동양종건의 하도급업체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조만간 회사 대표 등을 소환해 범죄 혐의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또 검찰은 포스코의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고가 인수 과정에서 공장 내 설비들을 인수대상에서 제외하고 매년 임차료를 지급한, 또 다른 방식의 특혜가 제공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 중이다.

검찰은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면서 공장 설비와 각종 중장비의 소유권 등을 당시 대주주였던 전정도(56·구속기소) 세화엠피 회장에게 남겨두고 매년 수십억원의 임차료를 지급한 정황을 포착, 배경을 조사 중이다.

검찰은 포스코가 지난 2010년 3월 성진지오텍 지분 40%(1,234만주)를 인수하면서 전 회장의 지분 440만주를 업계 평가액보다 2배가량 높게 평가, 1,590여억원에 사들인 것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의 공장 설비와 각종 중장비를 빌려 쓰는 형식으로 인수계약을 맺고 매년 수십억원의 임차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특혜를 제공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전체 장비와 설비의 80~90%가량을 소유하고 있던 전 회장이 매년 수십억원, 총 수백억원 대의 임차료를 챙겼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할 당시 5개 공장 가운데 가장 현대화된 공장 한 곳을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유영금속 소유로 남겨두고 매년 100억원대의 임차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고가에 인수할 당시 정준양(67) 전 회장이 보고를 받고 최종 결정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추가로 포착된 특혜 의혹에도 정 전 회장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목을 끄는 것은 특수2부가 포스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림산업과 GS건설이 불법 비자금 조성에 연결된 정황을 포착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들 업체들을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어 본격적인 조사 임박했다는 관측이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특수2부는 하도급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기초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지난 2일 알려졌다.

검찰은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흥우산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자금이 대림산업과 GS건설로 흘러들어간 내역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흥우산업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대림산업과 GS건설이 흥우산업으로부터 받은 뒷돈이 포스코건설 비자금 규모보다 더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은 흥우산업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만 100억여원이다.

검찰은 지난 5월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건설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장 박모씨에게 비자금 40억여원을 마련해 준 혐의로 흥우산업 부사장 우모(58) 부사장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아울러 검찰은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고가인수하는 과정에서 전 전 회장의 친형 전영도(62)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의 한 소식통은 "전영도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정 전 포스코 회장과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에게 동생 전정도 전 회장의 성진지오텍을 인수해 달라고 청탁한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조만간 전영도 회장을 소환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 회장이 빼돌린 자금 일부가 정 전 포스코 회장 등 윗선까지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용처를 추적하고 있다.

전씨 형제는 울산에 각각 회사를 설립해 한때 수천억원 상당의 연매출을 올린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두 회사는 10분 거리를 두고 위치했고, 매년 공동 단합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전영도 회장은 지난 1979년에 설립한 일진기계를 기반으로 올해 2월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을 거쳐 3월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가 최대주주(지분율 48%)를 맡고 있는 일진기계는 울산 남구 황성동 일대 6만6,000여㎡ 규모로 1·2공장을 구축해 각종 기계설비를 현대중공업, 두산엔진, STX 등 굴지의 기업에 납품하면서 관련 부품시장 국내 최고 점유율을 자랑했다.

전영도 회장은 한 때 일진기계와 관 이음새 전문기업 SBC벤드 등 모두 5개의 회사를 보유하며 연매출 3,000여억원을 올리기도 했다. 또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 직후 동생 전 전 회장과 함께 유영E&L·세화글로벌 등을 설립했다.

전정도 회장은 포스코플랜텍(옛 성진지오텍)의 이란 공사 대금 922억원(7,195만 유로) 중 662억원(5,420만 유로)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주변에서는 전 전 회장 형제와 정 전 회장 등이 정치권 인사들 특히 이명박 정권 당시 핵심 인사들과 연결된 정황이 적지 않다. 이에 포스코 수사와 관련, "정 전 회장 수사가 시작될 시기에 정치권 등 전방위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