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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 통해 본 광복 70년

굴곡진 현대사 산 증인…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 돼
  • 왼쪽부터 이재오 의원, 김을동 최고위원, 문희상 의원
1945년 태어나 광복, 전쟁, 분단, 한강의 기적, 민주화 등 헤쳐나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각 분야에서 중추적으로 활동 중
'성공한 나라' 만들었다는 자부심 대단… '통일' 기원
정치, 이재오 김을동 문희상…경제, 박삼구 윤석금 윤영달
사회, 김언호 조갑제 문규현…문화, 조영남 이장호 이해인


광복되는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가 올해 70세를 맞는다.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역사인 광복, 전쟁, 분단,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등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모든 과정을 겪은 세대다. 5살 때 6ㆍ25 전쟁, 중고생 시절에는 4ㆍ19혁명과 5ㆍ16군사정변을 겪었다. 입대를 할 나이가 된 1965년에는 베트남전 파병이 시작됐다. 해방둥이들은 전쟁과 피란, 정치의 급변을 맞이했고 1970년대에는 산업화의 주역으로 고도성장을 이끌기도 했다. 해방 직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과거를 딛고 현재 세계 7대 무역대국,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굴곡의 현대사를 살아오며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돼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해방둥이 인사들을 분야별로 살펴봤다.

굴곡진 현대사 경험한 중견 정치인

해방둥이는 중고등학교 무렵 4ㆍ19와 5ㆍ16을 경험하고 70년대 민주화 물결의 선두에 섰던 '정치 세대'다. 이들 세대 중엔 정치로 진출해 크고 작은 업적을 남긴 이들이 많다.

  • 왼쪽부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현재 현역 의원으로는 새누리당 김을동 최고위원, 이재오 의원, 이한구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이 있다. 박근혜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 전 의원, '정보통'으로 유명했던 3선 출신 정형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이방호 전 의원도 해방둥이다.

이중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는 김을동 최고위원의 감회는 남다르다. 김 최고위원은 할아버지인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이 그토록 원했던 광복의 해에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두한 전 의원이 어렸을 때 김좌진 장군이 돌아가신 탓에 김 장군 일화를 할머니에게 들으며 자랐다. 재선 의원인 김 최고위원은 정계에 입문 후 꾸준히 항일과 독립 역사를 부각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에 이사장을 맡아 독립선열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김 최고위원은 "할 일이 많은 이때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한스럽다"는 할아버지 유언을 새기며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한다고 밝혔다.

5선의 이재오 의원은 대학 입학 후 1971년 민주수호 청년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정치생활을 시작해 긴 시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담으며 10년 가까이 투옥되기도 했다. 이 의원은 1996년 15대 국회에 입성해 한나라당(새누리당) 원내대표,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실세'로 꼽히며, 정치권에서 친이계(친이명박) 좌장 역할을 했고, 박근혜정부에서도 비박(비박근혜)계 대표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 의원은 올해 광복 70주년과 관련,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를 현장에서 온몸으로 겪은 만큼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데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선의 이한구 의원은 경제ㆍ정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 의원은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관료생활을 하다가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대우그룹으로 옮겨 대우 경제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이어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당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 등을 거치며 당내 정책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의원은 "70년 전에 새로운 나라의 주인으로 태어난 행운의 느낌이 있고, 70년간 한결같이 노력한 결과 훌륭하게 성공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광복 70주년을 맞는 소감을 밝히면서 "지난 70년 동안 경제위기도 몇 차례 있었지만 국민적 단결이 뒷받침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 왼쪽부터 김언호 한길사 대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문규현 신부
5선의 문희상 의원은 1970년대 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한 뒤 김대중정부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다. 노무현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담당했고, 열린우리당 의장, 국회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당이 위기에 놓일 때 '해결사'로 나서곤 했다.

문 의원은 광복 70년에 대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해방을 맞고, 일제 강점 기간의 두 배인 70년이 지났다. 해방둥이로서 감회가 깊다"고 했다. 지난 70년간 한국의 성장 과정에 대해 문 의원은 "대한민국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압축 성장의 그늘에서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지역ㆍ세대ㆍ계층 갈등도 커졌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성장의 동력들

해방 후 척박한 땅에서 기업을 세우고 경제를 일으킨 기업인들이 있다. 60년대에 가난과 굶주림 속에 살았지만 70년대 청년기에 큰 포부를 가지고 기업을 성장시켜나갔다. 폐허 같던 나라에서 11대 경제대국의 대한민국으로 큰 성장 동력이 된 기업인들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의 셋째 아들로 항공과 타이어를 글로벌기업으로 육성했다. 박인천 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6년 46세의 나이로 택시 두 대를 가지고 창업한 뒤 이를 육상운송과 항공운송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우리나라의 운송업의 초석을 다졌다. 박삼구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금호 대표를 거쳐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00년대 말 유동성 위기로 금호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형제의 난'을 겪었고 현재 두 그룹은 독립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 왼쪽부터 조영남, 이장호 영화감독, 이해인 수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1980년 웅진씽크빅을 설립해 기발한 아이디어와 시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으로 창립 25년만에 매출 2조원대 고성장을 기록했다. 윤 회장은 다른 분야 사업 확장과 실적 저조로 웅진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지난해 4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뒤 북클럽, 웅진에너지 등을 운영, 흑자를 내거나 정상화하면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사장은 2014년 최고의 해를 보냈다. 감자칩에 꿀을 발라 발상의 전환으로 품귀현상을 불러온 '허니버터칩'으로 대히트를 쳤다. 윤 회장은 해방 이후 70년간 먹거리 산업에 일생을 바쳐왔으며, 회사의 모태인 크라운제과는 많은 굴곡을 겪으며 성장했다. 1988년 1월 크라운제과는 부도를 맞았지만 브랜드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2005년 1월에는 맞수였던 해태제과를 전격 인수하며 도약했다. 윤 회장은 과자에 문화와 예술을 접목한 차별적 마케팅을 통해 크라운해태제과의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작년에는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삼천리 한준호 회장은 1971년 행정고시로 교통부에 입문해 동력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등 주요공직을 거친 에너지와 자원개발분야 전문가다. 2001년 중소기업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한국전력 사장 등을 거쳐 2007년 삼천리의 대표이사 부회장이 됐다.

한 회장은 도시가스 중심이던 삼천리가 지역난방 등 집단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일조했고 안산복합화력발전소를 준공해 에너지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광복 70년에 대해 "해방 당시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최빈국 짐바브웨보다 못살았다"며 "한 세대 만에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문턱에 이르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그간의 눈부신 경제 발전 과정을 회고했다.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으로 선대 운산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이용구 회장의 차남이다. 이희상 회장은 한국제분과 동아제분을 합병해 현재의 동아원으로 바꿨으며 최근 배용준과 박수진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변화 추구

해방둥이들은 굴곡진 현대사만큼이나 각각의 인생 경험을 토대로 다양하게 사회 변화를 추구했다. 언론인 조갑제는 1971년 부산 국제신보(국제신문 전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1981년 월간 '마당' 창간 멤버로 입사했으며 1983년부터 월간조선,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체제 비판적 언론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조갑제는 1991년부터 월간조선의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보수 논객의 대표자로 변신했다. 현재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시국관과 이념을 전파하고 있으며, 정치 평론 사이트 조갑제닷컴에 자신과 극우 인사, 독자들의 글을 선별해서 칼럼 형식으로 싣고 있다.

언론인 출신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파주 출판도시'를 탄생시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책 장인'이다. 김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 생활 중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펼치다가 회사 경영진과 충돌하며 해직된 뒤 또 다른 언론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위해 1976년 출판사 '한길사'를 세웠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인으로서 36년 동안 오직 책의 한길만을 걸어오며 수많은 명저를 출간했다.

김 대표는 70주년 광복에 대해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이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의지와 정신을 만들어 주는 에너지가 되었다.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 시대를 참 고맙게 생각한다"며 해방둥이로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했다.

해방둥이들은 광복 5년 만에 6ㆍ25 전쟁을 겪고 남북으로 나뉜 채 살아오며 어느 세대보다 '통일'에 관심이 높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 연구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실무부터 장관까지 통일 관련 업무를 경험한 유일한 통일부 장관이다. 정 전 장관은 "강보에 싸여 넘어온 38선을 되짚어, 다시 평양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을 하게 된 것이 통일 문제를 일생의 화두로 갖게 된 계기"라면서 "남은 인생도 통일의 길에 전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규현 신부는 1989년 방북했던 임수경 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손을 잡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지낸 문 신부는 민주, 인권, 평화, 통일 운동을 벌여왔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4대강 사업 반대 '오체투지 순례' 등 '현장'에서 생명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검찰총장을 지낸 박순용 변호사에게 '광복'은 특별했다. 박 전 총장은 "일제에 징용된 아버지가 남태평양으로 갈지, 만주로 갈지 기로에 섰을 때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다. 조금만 늦게 해방됐다면 아버지를 평생 뵙지 못 할 뻔했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장은 광복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과제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박 전 총장은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뤘다. 이젠 기본을 반듯이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세대 문화 이끈 해방둥이들

"해방둥이 이전 세대는 일본을 흉내 냈고, 우리 세대는 서양을 흉내 냈다."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청년문화를 해방둥이들이 이끌었다고 말했다. 1945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난 조영남은 1951년 1ㆍ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와 196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노래를 시작해 1969년 번안곡 '딜라일라'로 데뷔해 46년간 노래해 왔다. 가수뿐 아니라 화가, 작가, 방송인으로 문화계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 23년 만에 자작곡 '통일바보'를 발표하며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조영남은 "젊을 때는 태백산맥을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싸우는 게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화개장터'라는 곡을 쓴 거다. 이제 다음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통일이다. '통일바보'는 제2의 화개장터다"라고 말했다.

이장호 영화감독은 40여 년 동안 한국영화를 이끌어왔다. 작년 영상자료원에서 뽑은 영화 100선 중 베스트 10위권 안에 '별들의 고향(1974)',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3)' 3편이 뽑히기도 했다.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 감독은 광복 70년에 대해 "우리 세대는 해방, 분단, 전쟁, 혁명 등 그 어떤 세대보다 심한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왔다. 지난해에는 해방둥이 페스티벌을 해볼까도 생각해봤다"며 해방둥이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감독과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해방둥이인 고 최인호 소설가는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과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 등 '최연소'라는 기록을 비롯해 문단의 이색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1963년 서울고 2학년 시절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벽 구멍으로'로 응모해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환자'가 당선돼 등단했다. 최인호가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진 것은 신문에 연재한 소설 '별들의 고향'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부터다. 이 작품은 1974년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큰 사랑을 받았다. 이어 '고래사냥'과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등이 소설과 영화에서 성공을 거둬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간결한 문장과 감각적인 문체로 도시인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새로운 감성 혁명의 길을 걸었다.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불행하다'는 신념으로 병마에 맞서 펜을 놓는 순간까지(2013년 작고) 자신이 살아온 순간을 기록했다.

이해인 수녀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3일 만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스무 살에 수녀원에 입회했고 '민들레의 영토'로 시인 생활을 시작했다.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 시뿐 아니라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등 산문으로 넓혀져, 힘들고 지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위안을 전하고 있다. 해방둥이인 그는 스스로에 대해 "6살에 전쟁을 경험했기에 무의식적인 우울증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인생을 좀 더 깊게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를 갖고 있다. 작가 최인호와는 해방둥이인 것만으로도 서로 감정이 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판소리계 명창 조통달은 해방둥이의 힘겨운 환경을 뱃심과 예술혼으로 극복해 냈다. 그는 인간문화재 제5호로 전남 도립 남도국악단 상임 지휘를 맡고 있다. 그는 5세에 판소리를 시작해 65년째 소리를 잇고 있다. 많은 명창을 길러 내고 있는 그는 해방둥이 스스로에 대해 "해방둥이들이 이 나라를 서게 만들었다. 가장 어렵고 배고팠던 시기를 견뎠다.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고생했다. 해방둥이들이 일을 많이 해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됐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의 작사가 양인자, '가는세월'을 부른 가수 서유석, 배우 임현식, 선우용녀 등이 해방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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