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사면 직전 SK에 인사청탁 압력 의혹

손길승 대한펜싱협회장(왼쪽)이 네팔 선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모 스포츠 전문기자 특사 앞두고 최 회장 약점 잡고 인사청탁 정황도
인사청탁 거부하자 청와대 고위인사 A씨가 손 회장 사퇴 종용 소문
"손 회장 사퇴시키고 특정인물 인사청탁 하라고 요구했다" 주장 나와

최태원 SK회장 특별사면을 앞둔 시점에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대한펜싱협회 수장직에서 갑자기 물러나 이를 두고 여러 말이 무성하다.

손 회장은 한국 펜싱의 중흥기를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청와대에서도 그의 공적을 높이 산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특별히 치하하기도 했다. 그런 손 회장이 최 회장 사면 직전 돌연 사임서를 내자 일각에서는 SK 내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더구나 손 회장은 2009년 제29대 대한펜싱협회 회장을 맡아 2013년 제30대 회장까지 연임에 성공, 2016년 말까지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두고 있었다.

손 회장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어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손 회장 사퇴와 관련해 주변의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는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SK와 펜싱협회 주변에서 "정부 고위인사 A씨가 SK 고위 임원에 손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인사청탁을 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특히 펜싱협회 내부에서는 "손 회장의 사퇴가 정부 핵심 관계자에서 비롯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스포츠 4대악 척결을 위해 특별조사본부까지 설치한 상황에 이같이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반드시 진상조사를 해 사실이라면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성토하는 펜싱협회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누가 손 회장 사퇴 종용했나

대한펜싱협회는 손길승 회장이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손 회장은 사임의 변을 통해 "런던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기록해 온 한국 펜싱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협회가 조속히 후임 협회장을 선출해 1년 앞으로 다가온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준비해달라"고 밝혔다.

또 손 회장은 "내년 올림픽에서는 한국 펜싱이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믿는다"며 "7년간 애정을 쏟아온 한국 펜싱이 세계 최정상에서 우뚝 서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펜싱협회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임시총회 일정을 정하는 등 후임 회장 인선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SK 스포츠단 관계자는 "후임 회장을 SK 쪽에서 맡을지는 미정이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 급작스럽게 결정된 상황이라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손 회장의 사임과 별개로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는 당분간 SK로 유지된다. SK 스포츠단은 손 회장의 잔여 임기 중에는 대한펜싱협회를 계속 지원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 손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산하의 통일경제위원회 위원장직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한 것으로 정리된 상태다.

손 회장은 지난해 출범한 전경련 통일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통일경제위원회 활동을 위해 사퇴하는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한 펜싱협회 관계자는 "리우 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손 협회장이 두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 힘들어 사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이 사퇴 소식이 전해지면서 펜싱협회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펜싱은 메달과는 거리가 다소 먼 종목이었으나 손 회장이 취임한 2009년 이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7개,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8개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등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의 사퇴와 관련해 펜싱협회의 한 관계자는 귀를 기울일 만한 말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손 회장이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사퇴 권유를 받았다는 말이 돌고 있다"면서 "정부 고위 인사 A씨가 SK 고위 임원에게 전화해 손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말했다.

확인결과 정부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알고 있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 고위 인사 A씨가 손 회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말이 들려 이에 대해 좀더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A씨가 SK 고위 임원에게 전화해 손 회장 사퇴를 요구했는지, 그리고 사퇴하지 않을 경우 최 회장의 특별사면이 문제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실제로 했는지 진상파악을 한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장난친 사람 따로 있다" 소문 무성

그러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손 회장이 SK 내부 관계자의 말을 듣고 사퇴를 결심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SK 고위 임원이 "정부 고위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손 회장님이 펜싱협회장직에서 물러나길 바라고 있다고 한다.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 같다"고 손 회장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또 이 관계자는 "손 회장은 펜싱협회에서 물러나지 않을 경우 최 회장 사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말도 들린다. 손 회장이 펜싱협회 인사청탁을 거부하자 사퇴압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번 손 회장 사퇴와 관련해 조사해본 결과 모 스포츠신문 기자의 인사청탁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 스포츠 신문 기자가 최 회장 특사를 앞두고 SK 측에 연락해 "특정인사 2명을 펜싱협회 요직에 앉혀주지 않으면 최 회장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고 협박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SK 고위 임원이 정부 고위 인사 A씨를 내세워 손 회장에 인사청탁을 했으나 손 회장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퇴한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손 회장은 왜 타협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단호히 인사청탁을 거절했을까. 그 이유는 청탁 대상 2명이 문제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식통은 "스포츠신문 기자가 청탁한 인물은 펜싱계 관계자인 B씨와 D씨다"라며 "B씨는 과거 고가의 로렉스 시계 밀수 사건을 일으켜 문제가 된 부도덕한 인물이고 D씨는 과거 전국체전포상금 및 훈련비유용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기 때문에 손 회장이 인사청탁을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해당 스포츠신문 기자는 손 회장 사퇴 직전과 직후 펜싱협회 관련 기사를 여러 차례 보도했는데,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B씨와 D씨를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동시에 관련 기사들에는 손 회장의 전횡이 심각했다는 비판적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해당 스포츠신문 기자가 SK 측에 실제로 전화해 협박과 함께 인사청탁을 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정황만 파악하고 있을 뿐 정확한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기자가 인사청탁과 협박을 했다는데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SK라는 대기업이 스포츠신문 기자의 압력을 받아 움직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정부 고위 인사가 사면을 앞두고 SK고위 임원과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인사청탁이 있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 고위 인사 A씨는 "청탁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그 분야(스포츠)는 나와 관련도 없다"며 청탁설을 부인했다.

해당 스포츠신문의 기자는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끝내 기자와 연결이 닿지 않았다.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기는 SK 측도 마찬가지다. SK측 관계자는 "관련 고위 임원에게 그런 전화가 왔고 그로 인해 손 회장이 펜싱협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 고위 임원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고 손 회장은 여러 차례 연결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손 회장의 펜싱협회장 직 사퇴와 관련해 정부, SK, 펜싱협회의 말이 모두 달라 진위여부가 어떻게 가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