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전쟁' 檢에 수사 강화 지시… 공직비리^혈세 낭비 등 커넥션 타깃

포스코 비리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정준양전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4일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3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정 전 회장은 취재진에게“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했다”는 말만 하고 검찰청사를 떠났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급상승 여세 몰아 '전방위 개혁' 작업 속도
법무부, 검찰에 '권력형 부패사건' 집중 수사 지시… 구조개혁 병행
포스코·방산비리 '용두사미' 결과에 정치권 뒷말 '고강도 수사'로

4대개혁 작업의 일환으로 검찰 등 사정기관이 부정부패 수사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대(對) 중국 외교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여세를 몰아 전방위 개혁작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을 놓고 다양한 관측과 더불어 정치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작업이 정ㆍ관ㆍ재계 전방위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임기가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점과 20대 총선 정국이 맞물리면서 정부의 개혁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따라서 정치권을 비롯한 공직사회와 경제계에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와 함께 구조개혁 작업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직 마피아 다시 수술대에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지난달 25일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업체인 LIG넥스원등‘현궁’개발 사업과 관련된 기관 4.5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경기 성남 분당구 LIG넥스원 판교하우스R&D센터. 연합뉴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난 1일 대검찰청에 "부정부패 사범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3월 황교안 당시 장관은 검찰의 포스코 수사 본격화에 맞춰 대기업 비리 등 부정부패 척결을 지시한 바 있다. 이 점에 비춰볼 때 법무장관이 검찰에 부정부패 수사 강화를 주문한 이상 검찰은 권력형 부패사건을 집중 수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장관은 척결해야 할 부정부패 유형으로 ▦공직비리 ▦중소 기업인ㆍ상공인을 괴롭히는 국가경제 성장 저해 비리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재정 건전성 저해 비리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일부 전문직역의 구조적 비리 4가지를 지목했다.

무엇보다 김 장관은 "부정부패 척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장관은 "유관기관과 협조해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특단 조치도 강구하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이는 개혁 작업과 관련, 청와대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음을 암시는 것이어서 향후 검찰의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난 3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주도한 대기업 비리와 방위사업 비리 사정 드라이브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어 이번 사정정국은 전혀 별도의 작업이 아닌 기존 사정작업의 연장선상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헌금 등 불법자금을 챙기려는 정치권 인사들과 여야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일부 공직자들에게 '칼끝'을 겨눈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현재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소환 조사와 방산비리 수사 그리고 농협 수사 등은 결국 뇌물 등 비자금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의 정 전 회장 소환과 농협 비리 의혹 관련자 소환 및 구속 수사 이어서 방산비리 LIG넥스원 압수수색 등은 모두 그 칼끝이 모두 정치권과 관가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검찰은 어느 하나 구체적인 결과물 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어 사정기관 주변과 정치권 등에서는 검찰이 권력의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포스코 수사의 경우 압수수색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장기화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뒷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정 전 회장 시간 벌어 주는 것 아니냐"고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지경이다.

포스코 비리 의혹의 핵심인 정 전 회장은 검찰에서 16시간 가량 고강도 조사를 받고 지난 4일 귀가했다.

정 전 회장은 전날 오전 9시50분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이날 오전 2시께까지 조사받았다. 올해 3월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가 본격화한 지 약 6개월 만에 정 전 회장 소환조사가 이뤄졌다.

포스코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는 정 전 회장의 재임 기간인 2009년부터 지난해 사이 포스코그룹에서 일어난 각종 비리 의혹에 정 전 회장이 관여했는지 집중 조사했다. 수사팀은 정 전 회장을 상대로 포스코그룹이 플랜트업체 성진지오텍 지분을 인수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추궁했다.

포스코그룹은 2010년 3월 성진지오텍 주식 440만주를 시세의 배(倍)에 가까운 주당 1만6,331원에 사들였는데, 이는 대표적인 부실 인수 사례로 꼽힌다.

검찰 안팎에서는 포스코 수사가 수사기간에 비해 내용물이 없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수사 초기 정 전 회장 등 그룹 윗선과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이권개입 여부를 집중적으로 캤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에 대해 "혐의점이 상당하다"는 입장이었지만 6개월 만에 소환을 통보한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 전 회장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 전 회장은 검찰이 불러들인 참고인ㆍ피의자 등을 통해 검찰의 포스코 수사 진행 상황을 이미 상세히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진술 내용과 검찰에서 요구한 자료내역 등을 정리해 정 전 회장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불러 조사한 이들 포스코 관계자가 정 전 회장에 검찰 수사 정보를 전달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지난 6개월 간 조직적으로 정 전 회장을 비호했다"고 비난한다.

농협 수사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농협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NH개발의 협력업체인 H건축사 사무소 등의 실소유주 정모(54)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정씨는 NH개발과 농협중앙회 등이 발주한 시설공사 20여건을 맡아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검찰은 정씨가 수의계약을 다수 체결한 정황을 토대로 농협과의 긴밀한 유착관계를 의심해 왔다. 검찰은 정씨가 경쟁입찰을 거치더라도 미리 입찰정보를 입수, 자신의 계열사가 낙찰받게 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씨의 건축사사무소에 농협 최고위층의 동생이 고문으로 일했던 점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빼돌려진 회삿돈이 농협 수뇌부로 흘러들어갔는지 추가 조사할 방침이다.

정·경 유착 비리 수사 강화할 듯

이뿐만 아니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7일 육군의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의 개발·도입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난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육군 중령 박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박 중령은 현궁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납품받은 장비가 계약사항을 충족시킬 정도가 아닌데도 허위로 확인서를 써 준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등)를 받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현궁의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2012년부터 작년까지 LIG넥스원 등으로부터 총 80억3,000만원 규모의 내부피해계측 장비와 전차자동조종모듈 등을 납품받았다. 내부피해계측 장비는 유도무기인 현궁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장치이고, 전차자동조종모듈은 현궁의 목표물인 전차에 장착해 자율 주행이나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다.

합수단은 내부피해계측 장비에 일부 부품이 빠져 작동할 수 없는데도 '양호'하다고 합격 판정을 내리고 납품사 측에 11억여원을 부당지급한 단서를 확보했다. 전차자동조종모듈 세트도 7세트를 공급받았지만 박 중령 등은 11세트를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허위 작성한 것으로 합수단은 보고 있다. 납품 단가가 부풀려진 정황이다.

합수단은 지난달 15일 체포한 박 중령의 구속영장이 군사법원에서 발부되면 국방과학연구소와 납품사 간의 부정한 금품거래 의혹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검찰은 LIG넥스원 등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 조사해 현궁 성능평가 장비 납품 비리의 '윗선' 규명에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이 정 전 회장을 마침내 소환조사하자 시각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포스코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순"이라고 보는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이제 본격화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검찰이 정 전 회장에 대한 그룹 차원의 비호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현 경영진을 상대로 "포스코가 정 전 회장을 비호하고 있다. 포스코는 검찰이 불러 조사한 포스코 관계자들을 통해 수사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정 전 회장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작심발언을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향후 포스코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됨과 동시에 현 경영진에 대해서도 무차별 수사를 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포스코 수사 역시 정 전 회장의 윗선으로 판단되는 관가 또는 정치권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포스코, 농협, 방산비리 수사 등이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의 방향을 놓고 여러 관측과 전망이 무성하다.

포스코 수사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 때 상왕으로 불렸던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 측근들이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 비리와 관련, 검찰이 조사 중인 제철소 설비 보수·관리업체 티엠테크에 이 전 의원의 측근들이 연결돼 있는 정황이 드러나 정 전 회장을 상대로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개월 가까운 수사 끝에 포스코 수뇌부와 지난 정권 실세의 부적절한 거래 단서를 확보했다. 티엠테크의 실제 주인이 이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이자 포항사무소장을 지낸 박모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씨는 2006년 울릉군수로부터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이상득 의원에게 잘 말해 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25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측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엠테크는 정 전 회장 취임 몇 달 전인 2008년 11월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됐다. 현재까지 포스코켐텍을 유일한 거래처로 두고 연 170억∼180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검찰은 특수2부 검사 전원을 투입, 티엠테크가 기존 협력업체의 납품 물량을 빼앗다시피 하며 성장한 배경에 정 전 회장이나 이 전 의원 측의 입김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소환를 통해 이 전 의원에 대한 직접 조사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이 횡령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 티엠테크 김모(54) 대표는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7월 25일 돌연 사임했다.

이들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여권의 고위 인사인 K씨와 L씨 그리고 지난 정권 실세 중 한명이었던 또 다른 L씨 등이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