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통준위’ 중시, 北은 적대시 … ‘제3의 길’ 찾아야

박 대통령 ‘통준위’ 선장 역할 자처…북한, 통준위 ‘흡수통일’ 언급 강력 반발
박 대통령 중국 ‘건설적 역할’ 과도한 신뢰 ‘오판’ 부를 수 있어
일부 북한 전문가 “통준위 해체하거나 역할 축소해야…박 대통령 전면 나서지 말아야”
남북 ‘신뢰’회복이 우선… 신뢰 깨지면 10월 북한 도발할 수도


‘전쟁’ 상황까지 치닫던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오랜만에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남북은 8ㆍ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의 성과를 내면서 대화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 관계에 적극성을 보이며 방중 후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갖고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입장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자신이 출범시킨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를 중심으로 대북 관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내외 정통한 북한 소식통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박 대통령이 통준위 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설 경우 북한의 공격 타깃이 될 수 있다는것이다. 또한 통준위는 과거 ‘흡수통일’ 발언으로 북한이 가장 적대시하는 기구인데 이를 중심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의 반발이 거세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모처럼 맞은 남북 화해 국면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고 그럴려면 대북관계에서 남한이 우월한 입장에 있다는 ‘오판’과 통준위를 앞세우는 ‘패착’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기 후반을 맞은 박 대통령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현명한 대북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 대북 ‘우월한 입장’ 오판 말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관계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는 지난 8월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남북 합의가 이뤄진 과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8월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DMZ(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은 대북 확성기 설치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에 북한도 20일 북한군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내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통첩하는 등 대결 국면이 조성됐다. 이어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21일 오후 5시(남한시간 5시 30분)부터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다”고 밝히면서 ‘전쟁’을 배제할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다.

김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예고한 시점을 불과 한 시간가량 앞두고 북한은 갑자기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의 통지문으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접촉을 제안했다.

이에 우리 측은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의 접촉을 역제의했고 북한은 22일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 대 남측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참석하는 고위급 접촉을 수정 제의해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판문점에서 남북 4인의 고위급회담이 시작됐다. 그리고 남북은 마라톤 협의 끝에 8월 25일 납북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선 마치 북한에 ‘승리’한 것처럼 환호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도 크게 안도하고 기뻐하며 후속 대북 정책을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주석을 만나 북한에 적극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2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지뢰사건을 거론하며 “이번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해소하는데 중국측이 우리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귀국 전 동행한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중국이 남북 긴장을 완화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대신 박 대통령은 향후 중국과 평화통일에 대해 협력관계를 논의해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러한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2일 “해외 행각에 나선 남조선 집권자가 우리를 심히 모욕하는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의 비무장지대 도발 사태’니 ‘언제라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느니 하면서 최근 조성된 사태의 진상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그 누구의 ‘건설적 역할’까지 운운했다"며 비난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이 박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8ㆍ25 합의를 한지 열흘도 안됐고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상황에 나온 것이어서 우리 정부는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남북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과 관련해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 기싸움’ ‘주도권 경쟁’ ‘북한의 상투적 수법’등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은 전혀 다른 얘기를 전해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을 자극하고 자칫 남북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중국의 전설적 역할에 감사한다’고 한 부분에 북한은 매우 격앙돼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에서 막판 대화로 나선 것은 중국의 강력한 압박 때문으로 북한은 그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고 전했다.

또한 소식통은 “북한은 대남 강경 입장을 거둔 것이 북한 경제에 미칠 중국의 영향력에다 러시아까지 북한 주재 대사를 통해 군부에 입김을 넣은 결과인데 마치 남한이 강경하게 나온 때문으로 오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감사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중국을 믿고 북한에 강경하게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보 관계자와 국제 금융 관계자들은 “중국이 대북 압박에 나선 것은 스스로에의해서가 아니라 증시 추락 등 경제 위기에 몰린 중국을 압박해 한반도 안정을 도모하려는 ‘외부의 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외부의 힘’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국제 금융과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라고 했다. 이들은 경제 위기에 처한 중국은 국제 파워그룹의 도움이 절실했고 이들의 요구에 따라 북한을 압박했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믿고 우월적 입장에서 북한을 상대할 경우 남북관계가 틀어지고 과거 경색국면으로 회귀할 수도 있는 셈이다.

北 ‘통준위’적대시, 남북관계 걸림돌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8ㆍ25 합의 이후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과정에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 대통령)를 중심에 둘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준위 출범 때부터 북한이 ‘반통일’적 인사가 다수 있다며 비판한데다 올 초 ‘흡수통일’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출범한 통준위 참여 인사들 중엔 과거 북한을 ‘주적’으로 삼거나 ‘북한붕괴론’ ‘흡수통일론’등을 거론한 인사들이 있다. 특히 지난 3월 정종욱 통준위 민간 부위원장이 언급한 ‘흡수통일’은 결정적으로 북한을 돌아서게 했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3월 10일 ROTC 중앙회 강연회에서 정부와 통준위 내에 흡수통일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는 내용으로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정 부위원장은 강연회에서 “통일 로드맵 가운데 평화적인 합의통일도 있고 동시에 비(非)합의적 통일, 그러니까 체제통일에 관한 것도 있다”며 “체제통일만 연구하는 팀이 위원회 가운데 따로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흡수통일’논란에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정 부위원장은 “작년 말에 (통일 로드맵에 관한) 1차 연구가 끝났고 이제는 그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과제 실행 단계에 들어가 있다”며 “거기에는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전제한 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연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파장을 가라앉지 않았다.

북한은 즉각 반발했고 화살은 박 대통령을 향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3월 14일 정 부위원장의 발언을 비난하며 통준위 해체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북한은 김성재 사회문화분과위원장 등이 포함된 통준위 일행 중 한 위원이 3월 25일 개성공업지구 방문 시 북한 붕괴 대응방안이 담긴 USB를 가방에 넣어갔다가 북한 측에 적발된 것을 문제삼기도 했다.

북한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것이 북의 제도붕괴를 노린 체제대결의 기구라는 것이 더욱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통준위 위원장을 겸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며 “현 집권자가 통준위 원장이니 사실상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정 부위원장과 정부는 ‘흡수통일(론)’을 부인했지만 북한은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은 해킹을 통해 통준위를 살폈고 ‘흡수통일’에 관한 내용도 파악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 대통령이 통준위를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대북 전략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베이징 소식통은 “박 대통령과 남한 정부가 과거 행태를 반복한다면 북한은 중국의 눈치를 보겠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 일부에서는 “통준위가 남북관계 개선에 계속 걸린돌이 된다면 아예 해체하거나 활동 영역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통준위 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 보듯 북한의 타깃이 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향우 남북관계 해법이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