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동당 노선 대변화, 한국과 ‘민족 미래’ 도모北, 중국의 ‘경제’ 통한 북한 지배 속셈 간파…노동당 “같은 민족끼리 손잡아야”북한 ‘전쟁 대신 대화’로…남북대화에 적극적, 이산가족상봉ㆍ남북경협 가속화 전망

8월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DMZ(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 놀랄만한 변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중추인 노동당이 대남 적대 노선을 수정해 궁극의 협력(교류) 대상을 남한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북한은 종래 ‘자주’노선을 기반으로 중국ㆍ 러시아와 맹방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과는 ‘전시 상황’에 따른 적대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런 북한이 ‘대변화’를 시도한 것은 중국의 대북 전략을 간파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맹방으로 여긴 중국이 ‘경제’를 앞세워 장차 북한을 지배(흡수)하려는 노림수를 알아챈 것이다.

이후 북한은 논란 끝에 ‘민족’만이 함께갈 수 있는 파트너로 결론짓고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북한이 전시 상황에서 대화 국면으로 급변한 것이나 이전과 다르게 양보를 하면서까지 남북대화에 나서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제 남북관계 향배의 상당 부분은 우리 측에 달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대변화를 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에 상응한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박근혜정부가 아직 북한의 대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듯한 행보다.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주요 행사에서의 대북 발언, 정부가 북한에 취하는 태도는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

북한 노동당의 대변화는 70년 창건 이래 초유의 일로 우리 측엔 남북관계에 새 전기를 마련할 절호의 시기이다.

북한의 대변화 배경과 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과 대북 카드에 대해 살펴봤다.

北 ‘전쟁에서 대화’로 급변

지난 8월 초 한반도엔 전운이 감돌았다. 8월 4일 DMZ(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이 발단이 됐다.

국방부는 10일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심리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은 20일 대북 확성기 부대가 있는 경기도 연천군 야산에 고사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약 1시간 뒤 북한군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내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통첩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곧바로 155mm 자주포 29발로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대응사격에 나섰고 그로부터 약 4시간 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21일 오후 5시(남한시간 5시 30분)부터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일촉즉발의 군사 충돌 상황이 고조되던 오후 4시 북한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대화를 제의해 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예고한 시점을 불과 한 시간가량 앞두고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의 통지문으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접촉을 제안했다.

북한 노동당 대변화, 그 배경은

일촉즉발의 전시 상황을 앞두고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연한 대북 원칙론’이 통했다는 평가와 한미동맹의 승리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북한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북한이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위기인 상황에서 남한이 가장 효과적인 탈출구라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북한 소식에 정통한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에서는 전혀 다른 분석이 나왔다. 한마디로 북한이 군사 충돌을 앞두고 갑자기 태도를 바꾼데는 ‘중국의 압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이 “48시간 내 군사행동”와 “준전시상태”를 거론했을 때 각각 경고 및 최후 통첩을 했다. 중국 핵심부에서는 단둥(丹東) 에서 북한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통로를 막을 수 있다는 협박성 얘기가 나왔고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군 탱크부대의 움직임도 있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이 북한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북핵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북한의 포격도발 이틀만인 21일 저녁 우리 측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현 상황과 관련해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고마움을표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건설적 역할’의 내용에 대한 동행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을 멈췄다. 나아가 예상치 못한 고위급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이 대화를 제의한 것은 예상밖의 일로 북한 내부, 노동당에 큰 변화 때문”이라고 전해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전쟁을 멈춘 것은 중국의 압력 때문일 수 있지만 대화를 제의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독자적인 결단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놀라운 얘기를 전했다. 북한 노동당은 북한 전역에서 보고되는 내부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심각한 체제 위기를 파악하고 당의 노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위기’의 본질이 중국의 북한 지배(흡수) 전략에 있다고 봤다. 북한의 최대 현안인 ‘경제’를 중국이 장악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까지 북한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노동당이 간파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중국의 북한 지배(속국화) 전략은 학술적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최초인 셈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 노동당은 궁극적으로 손을 잡을 대상이 중국이 아닌 같은 민족인 남한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북한이 기존의 대남 적대 정책을 깨고 대화로 나온 가장 큰 이유를 ‘노동당의 대변화’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측 대표를 황병서 총정치국장으로 교체해줄 것을 요구한데 대해 북한이 이전과 다르게 순수히 받아들인 것이나 무박 4일, 43시간 이상의 마라톤 협상 끝에 공동합의문에 합의한 것도 노동당의 변화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남한과 함께 ‘민족의 미래’를 함께 도모하려는 입장이다. 소식통은 북한이 같은 민족인 남한과 미래를 논의할 생각을 갖고 있고 남북대화에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박근혜정부 대북 카드는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했다면 향후 남북관계는 우리 측의 태도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에 기회와 과제가 부여된 셈이다.

최근까지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는 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박근혜정부의 부정적 대북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 크다. 특히 남북관계에 관여하고 있는 국정원과 통일부 등이 ‘민족 통합(통일)’에 소극적ㆍ부정적 입장을 취해온 것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료 등이 같은 태도를 보인 것도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돼 왔다.

북한이 대변화한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응 카드가 주목된다. 북한에 정통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종래 남북대화에 소극적ㆍ부정적인 참모나 기관의 입장을 따르기보다 자주적으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대화에 걸림돌이 돼 온 북핵 문제는 유엔이나 6자회담에 맡기고‘비정치적’분야를 매개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최대 현안이 ‘경제’인만큼 이를 중심으로 납북 교류를 지속하고 박 대통령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경원선 활용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남측이 종종 북한의 ‘자존’을 건드리거나 훼손해 남북대화를 중단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대변화를 통해 남한과 공동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현명한 결단과 실천이 주목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